인슐린 변질 등 긴급 처방 필수
대리 처방·환자 간 공유 제약에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유일 대안
초진·지역 제한 논의에 불안 확산

1형 당뇨 환자에게 비대면 진료는 단순한 편의가 아니라 생명 유지 수단으로 꼽힌다. 하지만 제도화 논의가 초진과 지역 제한 중심으로 흘러가면서 환자 접근권이 오히려 후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1형 당뇨 환자에게 비대면 진료는 단순한 편의가 아니라 생명 유지 수단으로 꼽힌다. 하지만 제도화 논의가 초진과 지역 제한 중심으로 흘러가면서 환자 접근권이 오히려 후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 대학병원 진료를 위해 주기적으로 서울을 오가야 하는 1형 당뇨 환자 A씨. 지방에 거주해 급할 땐 가족이 대신 처방받았지만 몇 년 전 대리 처방이 금지되면서 불편이 커졌다. 때마침 코로나19로 비대면 진료가 허용돼 플랫폼을 통해 처방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 제도화를 앞두고 ‘지역 제한’이 논의되면서 다시금 불안에 떨고 있다.

1형 당뇨 환자에게 비대면 진료는 단순한 편의가 아니라 생명 유지 수단으로 꼽힌다. 하지만 제도화 논의가 초진과 지역 제한 중심으로 흘러가면서 환자 접근권이 오히려 후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0일 정부는 보건의료 위기경보 ‘심각’ 단계와 비상진료체계를 해제했지만 코로나19 시기 한시적으로 허용된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은 유지하며 제도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논의 과정에서 ‘안전성’과 ‘남용 방지’가 핵심 논리로 부각되면서 이를 생존 수단으로 의존해 온 난치·만성질환 환자들의 현실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특히 지역 제한은 지방 거주 환자의 선택권을 사실상 차단한다는 지적이다.

현재 국회에는 비대면 진료 제도화를 추진하는 여러 의료법 개정안이 상정돼 있다. 그중 8월 이후 발의된 권칠승·김윤·서영석 민주당 의원의 법안 모두 비대면 진료의 법적 근거를 신설하면서도 초진 및 지역 제한을 포함한 규제형 방향을 취하고 있다.

권칠승 의원 안은 복지부 장관이 비대면 진료의 대상, 절차, 방법, 기준 등을 고시로 정할 수 있도록 위임해 향후 시행령·고시 단계에서 초진 제한을 포함한 세부 통제가 가능한 구조다. 김윤 의원 안은 ‘비대면 진료권역’을 신설해 권역 밖 의료기관의 진료를 금지하도록 규정했다. 서영석 의원 안은 대면 진료 이력이 있는 경우에만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는 내용이다.

이처럼 안전성 확보를 명분으로 접근 범위를 좁히는 구조는 지방 거주 만성질환자나 희귀·난치질환자처럼 정기적 진료가 필요한 환자층에는 장벽이 높아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1형 당뇨병처럼 인슐린 처방이 끊기면 생명과 직결되는 질환의 경우 초진·지역 제한은 곧 치료 중단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1형당뇨병환우회는 지난 18일 성명서를 내고 “비대면 진료 제도화 과정에서 초진·지역 제한이 유지되면 만성질환자와 희귀질환자는 의료 사각지대로 내몰릴 수 있다”며 “질환 특성을 반영한 접근권 중심의 제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특히 ‘초진’ 개념 자체가 불명확해 동일 질환으로 반복 진료를 받는 환자에게까지 적용될 경우 행정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미영 한국1형당뇨병환우회 대표는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비대면 진료 제도화에서 지역 제한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방에는 비대면 진료를 제공하는 병원이 거의 없기 때문에 지역 제한이 생기면 환자들이 실제로 진료받을 수 있는 선택지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는 “시범사업 당시에는 지역 제한이 없어서 플랫폼을 통해 다른 지역 병원과 연결돼 진료받을 수 있었지만 제도화 과정에서 제한이 생기면 지방 환자들은 사실상 이용이 불가능해진다”고 토로했다.

비대면 진료는 1형 당뇨 환자가 질병을 가지고도 교육·직장·가정생활을 유지하며 건강을 관리할 수 있는 필수 인프라로 작동했다는 설명이다. 특히 대리 처방 금지 등 제약이 잇따르면서 환자 긴급 상황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이 됐다.

김 대표는 “2020년 2월 대리 처방이 전면 금지된 이후 긴급 상황에서도 환자 본인이 직접 병원에 가지 않으면 약을 받을 수 없게 됐다. 인슐린은 변질·분실·고장이 잦은데 즉시 처방이 안 되면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다”며 “예전에는 가족이 대신 병원에 가서 동일 처방을 받아오거나 펌프 고장 혹은 주사기가 화장실에 떨어지는 등 돌발 상황에서도 대리 처방으로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고 했다.

환자 간 자율적 도움도 막혔다. 식약처가 환자 간의 단순한 인슐린 공유 글까지 거래로 간주해 모니터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재작년부터는 출장 중 인슐린을 두고 왔는데 급히 빌려줄 사람을 찾는 글조차도 거래 행위로 간주돼 식약처에서 삭제하도록 했다”며 “환자끼리 긴급히 도움을 주고받는 통로까지 막힌 셈”이라고 했다.

대리 처방과 환자 간 교류까지 모두 차단된 상황에서 비대면 진료가 사실상 유일한 대안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시범사업 이후 제도화 과정에서 초진·지역 제한이 추가된다면 코로나 이전보다 더 불편하고 위험한 환경으로 후퇴하게 된다는 우려가 나온다.

김 대표는 “(1형 당뇨의 경우) 비대면 진료는 환자의 건강 데이터를 기반으로 이뤄지는 체계적 진료 방식으로 동일·반복 처방이 필요한 질환의 경우 오남용 위험도 거의 없다”며 “질환별 특성과 치료의 연속성을 고려하지 않은 일괄적 규제는 환자 불편만 키운다”고 말했다. 결국 “예외 없이 제한하기보다 질환 단위로 세분화된 기준이 필요하다”며 “의료 접근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제도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성경제신문 김정수 기자 essence@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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