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용 대비 비싸
선거철 표심 의식

한국 산업 경쟁력의 근간이었던 값싼 전기와 물 공급이 흔들리고 있다. 철강·반도체·석유화학 등 ‘전기 다소비 업종’이 세계를 선도할 수 있었던 배경이 무너지는 가운데, 산업계는 투자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산업용 전기요금은 ㎾h(킬로와트시)당 179.23원이다. 이는 가정용 대비 15% 높은 가격으로, 미국(80.5달러)과 중국(6~80달러)보다 50% 이상 높다.
요금 인상에는 한국전력의 적자가 원인으로 작용한다. 한전 적자는 2분기 말 기준 28조8000억원, 부채는 206조2000억원에 달한다. 더불어 대규모 설비투자와 송전망 구축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산업용 전기 요금 논란에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10% 낮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산업계 시각은 다르다. 지난 2021년 105.5원에서 4년 만에 전기료가 70% 가까이 오른 현실에서 “절대 수준보다 폭등 속도가 더 치명적”이라는 지적이다. 같은 기간 가정용 전기료 상승률은 절반 정도다.
실제 동국제강은 지난해 전력비만 2998억원을 지출해 전체 비용의 9%를 차지했다. 현대제철은 전력·연료비로 총 2조5890억원을 지출했고 이중 전력비만 약 1조원에 달했다. 현대제철이 미국 루이지애나주로 이전하기로 결정한 것은 값싼 전기요금이 핵심 이유로 알려져 있다.
물 사정도 심각하다. 울산시는 2023년부터 3년간 매년 12%씩, 광주광역시는 2024년부터 4년간 매년 11.5%씩 상수도 요금을 올리기로 했다. 산업계에서는 “전기·물값 이중고로 생존을 위협받는다”고 비판이 나온다.
문제의 핵심은 왜곡된 요금 구조다. 일반적으로 산업용 전기는 대량 구매 혜택이 반영돼 가정용보다 저렴하다. 그러나 정치권이 가정용 요금 인상을 억제하며 표심을 의식해온 탓에 오히려 산업계가 추가 부담을 떠안는 구조다. OECD 평균 산업용 전기요금은 가정용보다 약 25% 저렴한 것과 반대다.
전기요금은 물가 인상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선거철에는 표심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이로 인해 이전 정부들은 전기요금을 섣불리 올리지 못했다.
전기 요금 조정 절차를 보면, 한전이 원가를 계산해 산업통상자원부에 요금 조정안을 제출한다. 산업부는 기획재정부와 협의 후 전기위원회 심의를 거쳐 요금을 고지한다. 하지만 실제로 결정권은 대통령실에 있다는 것이 정치권의 지배적인 관측이다.
정치권의 무책임한 ‘요금 정치’가 산업 기반을 흔들고 있다는 비판은 여야를 가리지 않는다. 원전 정책, 에너지 믹스, 수도 요금 조정 등 현안마다 이해관계가 얽혀있어 합의점 도출은 쉽지 않다.
최근 독일 영국, 중국 등은 자국의 산업 보화와 수출경쟁력 강화를 위해 전기요금의 보조금 및 인하 등 정책 지원을 시행하고 있다.
글로벌 패트롤 프라이스에 따르면 중국의 2023~2025년 평균 산업용 전기요금은 ㎾h당 0.094달러(약 127원)로 한국(0.116달러)보다 저렴하다. 중국은 국가전력망공사, 남방전력망공사 등 국유기업이 전기 생산을 독점해 전기료를 결정할 때 정부의 입김이 들어간다. 일반 전기료에 비해 산업용 전기료를 우대한다는 것이 한국과 다른 점이다. 올해 초 장쑤성, 안후이성, 광둥성 등 주요 지방정부가 산업용 전기료를 최대 16% 내렸다.
산업계 안팎에서 “시장 원리에 입각한 정상화 없이는 한국 제조업의 미래가 없다. 해외로 공장을 옮길 것”이라는 경고가 거세지고 있다. 이 때문에 전력 자립률이나 발전소와의 거리 등을 고려해 서울과 지역의 전기요금을 다르게 하는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분산법) 규정을 시행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박경원 대한상공회의소 연구위원은 여성경제신문에 "산업계 부담 완화를 위한 전력기반기금의 활용을 검토할 수 있다. 저탄소 전환 투자를 지원한다면 전기요금제도 개편 과정에서 발생하는 단기적 비용 부담을 줄이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며 "전력망 건설에 국내 기업의 참여를 허용할 수 있는 법적 기반을 마련하고, 민간 기업의 투자금에 대해 전력망 운영과 사용 과정에서 적절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여성경제신문 이상무 기자 sewoen@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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