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은미의 보석상자] (107)
가을하늘을 닮은 블루 사파이어
시·예술·역사를 품은 파랑의 결정체
파란색의 본능적인 매혹
인간의 정신세계와도 연결

’더 리젠트 카슈미르 사파이어 반지' 카슈미르 산, 35.09캐럿. 2025년 5월 27일,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약 956만 달러(132억원)에 낙찰되었다. /© CHRISTIE’S IMAGES LTD. 2025
’더 리젠트 카슈미르 사파이어 반지' 카슈미르 산, 35.09캐럿. 2025년 5월 27일,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약 956만 달러(132억원)에 낙찰되었다. /© CHRISTIE’S IMAGES LTD. 2025

가을 하늘은 시와 그림이 된다. 하늘의 이미지가 곧 계절의 상징이다. 화가들에게도 이 계절의 하늘은 특별하다. 클로드 모네는 '아르장퇴유의 가을 풍경'에서 황금빛 들판 위로 펼쳐지는 가을 하늘을 그려내며 빛과 색의 교향곡을 완성했다. 높고 맑은 하늘의 청명함, 그 속에 깃든 고요함과 순수함은 보는 이의 마음을 맑게 한다. 그 청명한 푸른색을 가장 완벽히 간직한 보석이 바로 블루 사파이어다.

'아르장퇴유의 가을 효과' 1873년, 클로드 모네 /Public Domain
'아르장퇴유의 가을 효과' 1873년, 클로드 모네 /Public Domain

블루 사파이어, 파랑의 결정체

사파이어는 커런덤(Corundum)이라는 광물의 한 종류로, 미량의 철과 티타늄이 섞여 깊은 파란색을 낸다. 다이아몬드(10) 다음으로 단단한 모스 경도 9를 지닌 강한 보석이다. 투명도와 색감의 조화로 인해 고대부터 왕실과 성직자에게 ‘신의 보석’이라 불렸다.

블루 사파이어의 매력은 파란색에 그치지 않는다. 산지에 따라 로열(Royal) 블루, 콘플라워(Cornflower) 블루, 벨벳(Velvet) 블루 등 미묘하게 다른 색을 드러내면서 그 오묘한 스펙트럼이 보는 이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특히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카슈미르(Kashmir) 사파이어는 19세기 후반 히말라야산맥에서 발견된 이후 ‘벨벳 블루’라 불려 왔다. 은은하고 안개 낀 듯한 푸른 색조로 전설적인 지위를 얻었다.

오늘날 카슈미르 사파이어는 더 이상 산출되지 않아 경매 시장에서 다이아몬드를 능가하는 가격에 거래되기도 한다. 스리랑카(실론), 미얀마(버마), 마다가스카르 등에서도 고품질 사파이어가 산출되는데, 각각 묘하게 다른 색을 지녀 컬렉터들에게 특별한 매력을 선사한다.

‘아르장퇴유의 센강의 가을 풍경’ 1873년, 클로드 모네 /Public Domain
‘아르장퇴유의 센강의 가을 풍경’ 1873년, 클로드 모네 /Public Domain

인간은 왜 파랑에 매혹되는가

인류의 역사에서 파란색은 언제나 특별했다. 고대 이집트에서 파란색은 신의 색으로 여겨져 파라오의 왕관과 장신구에 장식되었고, 중세 유럽의 화가들은 성모 마리아의 옷을 짙은 푸른빛으로 그려 경건함과 숭고함을 표현했다. 바다와 하늘이 보여주는 무한한 파랑은 인간에게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며 그 색을 담은 보석인 블루 사파이어는 곧 우주의 질서와 영원성의 상징이 되었다.

파랑이 주는 심리적 울림

심리학적으로 파랑은 안정, 평온, 신뢰를 상징한다. 빨강이 본능적 열정과 생명을 자극한다면, 파랑은 사색과 집중을 이끌며 인간의 내면을 깊이 고요하게 만든다. 그래서 사람들은 파란색 앞에서 본능적으로 매혹된다. 특히 블루 사파이어의 깊은 푸름은 단순한 시각적 자극을 넘어 마음의 균형과 정화를 끌어내는 힘을 지닌다.

‘기도하는 성모 마리아’ 1654년경, 사소페라토. 성모 마리아의 파란색 망토는 청금석에서 추출한 울트라마린으로 그려졌다. /Public Domain
‘기도하는 성모 마리아’ 1654년경, 사소페라토. 성모 마리아의 파란색 망토는 청금석에서 추출한 울트라마린으로 그려졌다. /Public Domain

드문 파란색, 욕망의 상징

자연에서 완벽한 파란색은 극히 드물다. 꽃과 새의 깃털 그리고 하늘과 바다를 제외하면 파랑은 인간이 쉽게 손에 넣을 수 없는 색이었다. 그래서 오랫동안 청금석(라피스라줄리)이나 인디고 염료가 황금보다 값비싼 자원으로 거래되었다. 블루 사파이어가 ‘왕의 보석’으로 자리매김한 것도 이 희소성 때문이다. 인간은 결핍된 색을 갈망하며 손에 쥘 수 없는 하늘의 파랑을 보석으로 구현하고자 했다.

모네 같은 예술가와 사상가들이 그토록 파랑을 탐구한 이유는 이 색이 이처럼 우주의 질서와 영원성을 상징하며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늘의 무한함, 바다의 깊이, 영혼의 고요를 응축해 한 점 안에 담아내는 보석인 블루 사파이어. 블루 사파이어는 하나의 아름다운 보석이 아니라 인간이 본능적으로 그리워하는 색을 영원히 간직할 수 있는 결정체다. 계절을 담은 작은 우주다.

여성경제신문 민은미 주얼리 칼럼니스트 mia.min12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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