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은미의 보석상자] (109)
역사와 함께 사라진 프랑스 왕실 보석
아폴론 갤러리에서 단 7분 만에 강탈
보석은 문화재이며 경이의 결정체
럭셔리 이면에 감춰진 보안의 허점

'유제니 황후의 왕관이 케이스에 놓인 모습'. 1855년 제작. 유일하게 되찾은 1점으로 사건 당일 박물관 밖 인근 거리에서 손상된 상태로 발견됐다. /루브르 박물관
'유제니 황후의 왕관이 케이스에 놓인 모습'. 1855년 제작. 유일하게 되찾은 1점으로 사건 당일 박물관 밖 인근 거리에서 손상된 상태로 발견됐다. /루브르 박물관

다이아몬드는 영원을 약속한다. 하지만, 보안 앞엔 영원도 무력하다. 보안은 단 한 번의 빈틈도 허락하지 않는다. 2025년 10월 19일, 파리 루브르 박물관의 아폴론 갤러리에서 일어난 7분의 도난 극은 보안을 한순간에 무너뜨렸다. 도난당한 프랑스 왕실 보석은 세계 문화사와 예술사의 산물이다. 유물 한 점의 상실은 곧 ‘역사 한 장’의 소실이다. 이번 사건을 축으로 세계를 뒤흔들었던 보석 도난 사건들을 짚어본다.

2025년 10월 19일···루브르 아폴론 갤러리, 7분의 균열

일요일 아침, 공사 인부 차림의 괴한들이 트럭 탑재 리프트와 전동 공구를 사용해 박물관 상부의 창을 통해 침입했다. 괴한들은 아폴론 갤러리의 진열장 두 곳을 열어젖혔다. 범행은 불과 몇 분, 보도에 따르면 4~7분 만에 끝났다.

괴한들은 사파이어·에메랄드·다이아몬드로 장식된 8점의 역사적 주얼리를 강탈해서 사라졌다. 범죄 목표물은 9점이었으나 도주 과정에서 나폴레옹 3세의 황후 유제니의 왕관 1점이 파손된 채 인근에서 회수되었다.

나머지의 행방은 미상이다. 대통령과 내무장관이 즉각 수사 착수를 지시했다. 루브르 박물관은 증거 보존을 위해 당일 폐관했다. 고도화된 장비를 지닌 작업복 차림의 괴한들이 보안과 운영 공백을 정확히 찔렀다.

도난품 대부분은 프랑스 왕실과 제정 시대를 상징하는 주얼리였다. 그중에는 나폴레옹 3세의 황후 유제니(Eugénie de Montijo)가 착용했던 티아라와 루브르가 소장해 온 사파이어와 에메랄드 세트가 포함되어 있었다. 미학의 정수이자 왕권과 권위의 상징인 유물이었다.

특히 유제니 황후의 티아라는 진주 212개와 다이아몬드 2000여 개가 세팅된 걸작이었다. 도난품들은 금전적 가치로는 환산할 수 없는, 한 점 한 점이 프랑스 보석 예술의 정체성 자체였다. 이에 못지않은 사건이 6년 전에 있었다. 독일 드레스덴에서였다.

'유제니 황후의 티아라' 1853년 제작 /루브르 박물관
'유제니 황후의 티아라' 1853년 제작 /루브르 박물관

2019년 11월 25일, 독일 드레스덴 ‘그린 볼트’ 박물관 강도

도난 작전은 새벽의 어둠 속에서 치밀하게 전개됐다. 도둑들은 박물관 주변 전력선을 끊어 경보 시스템을 마비시킨 뒤 철제 창살을 절단하고 도끼로 강화유리를 깨부쉈다.

단 몇 분 만에 그들은 18세기 작센 왕가의 궁정 보물, 49캐럿 다이아몬드가 세팅된 브로치와 장식 검, 백 독수리 훈장 세트 등을 통째로 탈취했다. 범죄의 정밀함은 유럽의 보물 금고라고 불리는 ‘그린 볼트(Green Vault)’를 순식간에 무력화시켰다.

사건의 여파는 오랜 시간 지속됐다. 2022년 말, 독일 당국은 범죄 조직과의 협상 끝에 도난품 31점을 회수했다고 전해졌지만, 일부는 이미 훼손되거나 분해된 상태였다. 핵심 유물인 대형 다이아몬드를 비롯한 일부 보석은 여전히 행방이 묘연하다.

보석은 하나의 이야기이자 정체성을 가진 예술품이다. 범인들은 세트를 해체해 각각의 보석을 되팔기 쉽게 만들었고 그 과정에서 작품의 본질은 사라졌다. 유물의 가치는 가격표로 측정되지 않는다. 스미스소니언 매거진이 지적했듯 문화재 도난의 진짜 피해는 금전이 아니라 ‘정체성의 소멸’이다. 한 점의 보석이 아니라 한 시대가 사라지는 것이다.

2008년 12월 4일, 해리 윈스턴 파리 부티크 권총 강도

2008년 12월 4일 저녁, 파리 중심가 몽테뉴 거리의 해리 윈스턴(Harry Winston) 부티크는 평소처럼 영업을 마무리하던 참이었다. 그때, 화려한 외투와 가발로 여장을 한 범인들이 매장 안으로 들어섰다.

겉보기엔 고객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들은 곧바로 수류탄과 총기를 꺼내 들고 직원들을 위협했다. 범인들은 매장 구조와 금고 위치 그리고 쇼케이스 동선까지 완벽히 파악하고 있었다. 내부 사정을 알고 있던 공모자가 있었음이 이후 수사에서 확인되었다.

범행은 2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들은 해리 윈스턴의 하이 주얼리와 시계 약 400점을 순식간에 쓸어 담았다. 피해 추정액은 약 1억 달러(약 1420억원)로, 당시 파리에서 최대 피해로 기록되었다.

사건 이후 대대적인 수사가 진행되었고, 2015년에 드디어 일당 8명이 검거되어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도난품 대부분은 회수되지 않았다. 2011년 파리 교외의 하수구에서 일부 주얼리가 발견되었을 뿐이다. 사라진 보석의 80%는 흔적조차 남지 않고 사라졌다.

이 사건은 ‘럭셔리 부티크’라는 공간의 역설을 드러냈다. 고가품을 판매하는 공간은 필연적으로 범죄의 목표물로 노출되어 있다. 특히 내부자의 정보 유출, 일정한 영업 루틴(개·폐점 시간, 진열품 교체) 등은 도둑들에게 ‘예측 가능한 틈’을 제공한다.

따라서 초고가 매장은 물리적 경비뿐 아니라 시나리오에 기반한 모의 훈련과 내부 리스크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 보석은 금고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동선 속에서도 있다는 사실을 이 사건은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스타 오브 인디아’, 563.35캐럿 스타사파이어 /Public Domain
’스타 오브 인디아’, 563.35캐럿 스타사파이어 /Public Domain

1964년 10월 29일, 뉴욕 맨해튼 미국 자연사박물관 절도

1964년 10월 29일 밤, 뉴욕 맨해튼의 미국 자연사박물관(American Museum of Natural History)에 세 명의 젊은 절도범들이 침입했다. 그들은 미국 역사상 가장 대담한 보석 절도를 감행했다.

범인들은 외벽의 창문이 잠기지 않은 틈을 이용해 박물관 내부로 들어왔다. 그들은 경보 장치의 배터리가 방전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들은 손전등 하나와 간단한 도구만으로 전시 케이스를 열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보석들을 집어 들었다.

스타 오브 인디아(Star of India, 563.35캐럿 스타사파이어), 드롱 스타루비(DeLong Star Ruby, 100.32캐럿), 미드나이트 스타(Midnight Star, 116캐럿 블랙 사파이어), 세 점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날 밤 사라진 것들이야말로 보석계의 별들이었다. 이들은 지구 지질학의 신비와 인류의 보석 문화를 상징하는 유물이었다. FBI와 뉴욕 경찰이 합동 수사에 나섰고, 범인들은 불과 며칠 만에 플로리다에서 체포되었다.

그러나 모든 보석이 바로 돌아온 것은 아니었다. 몇몇은 끝내 행방이 묘연했다. 이 사건은 미국 사회에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 보석도 ‘문화재’이며 문명사의 증거물이라는 점을 상기시켰다. 스미스소니언 매거진은 이 사건을 두고 ‘절도범들이 훔친 것은 단순한 보석이 아니라, 인간이 지구로부터 채굴해 낸 경이의 역사였다’고 평했다.

결국 이 도난 극은 범인들이 체포되면서 막을 내렸지만 그것이 남긴 상처는 깊었고, 흉터는 끝내 아물지 않았다. 박물관의 보석은 유리를 통해 우리를 바라보지만, 그 유리가 깨지는 순간 역사는 산산이 부서진다.

여성경제신문 민은미 주얼리 칼럼니스트 mia.min1230@gmail.com

관련기사

저작권자 © 여성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