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팅 협박·몸캠 유포, 디지털 성범죄 반복
익명 만남 플랫폼, 제2의 N번방 온상 우려
사전 예방 장치·통합 지원 체계 도입 시급

키와 몸무게는 몇인지 동성애 성향은 어떻게 되는지, 유사 성행위 혹은 일반 성행위는 어떤 방식을 선호하는지 글을 올리면 수십 건의 쪽지가 날아든다. 개인 카카오톡이나 전화번호는 공개하지 않고 오픈 카카오톡 채팅 혹은 사이트 내 쪽지를 활용해 만남을 가진다. 성행위를 목적으로 한 만남 요청 글은 동성애 전용 사이트에서 하루에도 수백~수천 건씩 공유된다. 모텔과 호텔, 자택을 가리지 않고 성행위를 이어간다는 것.
익명성을 기반으로 한 온라인 만남이 ‘아우팅(성정체성 폭로)’ 협박과 불법 촬영물(몸캠) 유포와 결합할 때 N번방과 유사한 범죄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4일 여성경제신문이 확인 가능한 판결문, 공식 자료, 언론 보도를 토대로 동성 간 만남 플랫폼을 포함한 익명 구조가 어떻게 ‘제2의 N번방’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 짚었다.
이미 벌어진 사건들
① 아우팅 협박 갈취 사건
2023년 7월 울산지방법원(이대로 부장판사)은 성소수자 데이팅 앱을 악용해 금품을 갈취한 30대 남성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그는 앱을 통해 피해자 7명에게 접근한 뒤 “성정체성을 폭로하겠다”는 협박을 반복하며 총 2900만원을 뜯어냈다. 피해자 대부분은 ‘아우팅’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신고를 망설였고 그 공포가 범행의 지속성을 가능하게 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피해자들의 사회적 약점을 악용했고 범행 수법이 조직적이었다”고 봤다. 성소수자의 취약한 위치와 익명성이 결합할 경우, 어떻게 범죄 구조가 고착화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② ‘남자 N번방’ 몸캠 사건(김영준 사건)
2013년 11월부터 2021년 6월까지 약 8년 동안 이어진 김영준 사건은 언론에서 ‘남성판 N번방’이라 불렸다. 당시 경찰은 ‘남자 N번방’ 사건의 주범 김영준(30)으로부터 불법 촬영물을 구매한 남성 19명을 성폭력범죄처벌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이들은 남성 아동·청소년 성착취 영상을 구입한 혐의를 받았다.
‘남자 n번방’ 사건의 피고인 김영준(30)으로부터 불법촬영물을 구매한 19명을 검찰에 넘겼다. ‘남성 몸캠’ 영상 구매자들 또한 모두 남성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법원은 김영준에게 항소심에서 징역 10년을 확정했다.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수법은 ‘유인→촬영→수집→유포’라는 전형적인 N번방형 범죄 구조였다. 익명 채팅과 외부 메신저, 불법 유통망이 결합하면 얼마나 빠르게 피해가 확산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기존 N번방 사건이 ‘특수 사례’가 아닌 반복 가능한 범죄 모델임을 입증한 셈이 됐다.

③ 대흥동 '게이' 사칭 만남 유도 사건
여성경제신문이 지난 2일 보도한 '[김현우의 핫스팟] "새벽 낮선 남자가 아버지 성기 만지고 도주"···익명 게시글이 불러온 참사'에 따르면 서울 마포구 에서 50대 남성의 집 주소가 동성애자 만남 사이트에 허위로 올라가면서 낯선 남성이 침입해 성추행을 시도한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자는 글을 올린 적이 없었지만 익명 게시글에 속은 남성이 주소를 따라 들어와 범행이 벌어진 것이다. 사건 이후에도 같은 주소가 반복 게시돼 추가 침입 시도가 있었으나 범인은 특정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이 익명성이 보장된 플랫폼 구조적 허점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한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사이버범죄 건수는 비슷하지만 검거율은 2020년 67.5%에서 2024년 53.0%로 급감했다. 인터넷 실명제는 위헌 결정으로 폐지됐지만 국민 69.5%가 찬성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있다. 전문가들은 디지털 성범죄 피해가 10~20대 여성뿐 아니라 남성에게도 확산되고 있다며 제도적 대응의 시급성을 경고했다.
성소수자 커뮤니티를 매개로 한 몸캠 피싱·협박은 꾸준히 보고된다. 한데 ‘아우팅’ 공포 때문에 피해 신고가 지연되거나 축소되는 경우가 많다는 게 현실이다. 범죄가 은폐·지속되는 환경이 구조적으로 형성되는 셈이다.
가해자(익명) ↔ 피해자(아우팅 공포)의 구조가 형성될 경우, N번방과 동일한 범죄 공정 유인 → 촬영·수집 → 유포·갈취 방식이 그대로 재현된다.

왜 익명 만남 플랫폼이 취약한가
익명·가명 기반 1:1 연결은 신원 검증 없는 상태에서 초면 만남이 빠르게 성사된다. 모텔·자취방·사우나 등 제3자 개입이 어려운 장소에서 접촉이 이뤄진다. 앱 DM에서 텔레그램·트위터 등 외부 메신저로 옮겨가면서 불법 촬영물 유통망과 닿기 쉽다.
특정 플랫폼을 범죄 조장으로 규정할 수는 없다. 다만 국내 주요 성소수자 커뮤니티 앱이 ‘게시글(지역별)·만남(사람찾기)’ 등 빠른 매칭 메뉴를 제공하는 것은 공개된 사실이다. 고속 매칭 구조가 위험과 예방 모두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것.
정부도 예방에 나섰다. 2020년 유통방지 의무 강화법(전기통신사업법 개정, 일명 ‘N번방 방지법’) 개정으로 플랫폼 사업자는 디지털 성범죄물 삭제·차단, 기술적·관리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러나 이는 사후 차단 중심이다. 성인 간 만남 단계의 사전 위험까지 포괄하지는 않는다.
동의 없는 촬영·유포는 물론 사후 동의 없는 유포까지 불법촬영물 처벌 강화법(성폭력처벌법 제14조)에 따라 형사처벌 대상이다. N번방 사건 재판에서 핵심 적용 조문이 됐다.
그런데 정작 성인 대상 익명 만남에서 사전 예방을 어떻게 요구·평가할지에 관한 구체 규정과 가이드는 없다.
교토대학교 사회학연구과 이토 나오코 교수는 여성경제신문에 “일본에서도 전기통신사업법(電気通信事業法)은 불법 촬영물의 차단과 삭제 같은 사후 대응에 머물러 있다”며 “플랫폼이 고위험 상호작용 이전 단계에서 안전 장치를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특히 아우팅 협박 전용 신고 창구와 증거 자동 보존 시스템, 만남 전 경고 배너를 통한 범죄 예방 안내가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고 했다.

이어 “성소수자 성인 피해자는 일본에서도 여러 법률 조항으로 흩어져 지원을 받아야 한다”며 “삭제·법률·심리 지원을 한곳에서 제공하는 지원 체계’가 필요하다"면서 "성소수자 피해자도 디지털 성범죄 피해 범주에 명확히 포함해야 사각지대를 줄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성소수자 만남 사이트 사업자가 자율적으로 안전 규칙을 두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도 제언했다. 이토 교수는 “외부 평가와 공시를 통해 ‘안전 배지’나 ‘신뢰 지표’를 제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영국·호주처럼 앱 내에서 HIV 검사 안내를 제공했을 뿐인데 검사율이 눈에 띄게 높아진 사례가 있다”며 “예방적 개입을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아울러 “성소수자 온라인 만남 자체는 다양성의 표현이지만 익명성과 즉시성, 아우팅 공포가 결합하면 범죄자에겐 완벽한 무대가 된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N번방 사건에서 확인된 것처럼 피해는 순식간에 확산되고 삭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성적 지향을 문제 삼을 게 아니라, 익명 구조가 낳는 범죄와 보건 리스크를 제도적으로 다루지 않으면 범죄는 충분히 재현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여성경제신문 김현우 기자 hyunoo9372@seoulmedi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