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성 뒤에 숨은 ‘즉석 만남’의 실태
20·30 중심, HIV·매독 확산 경고음
자유·공중보건 사이, 제도적 균형 필요

“키 178㎝, 몸무게 78㎏, 나이 26세. 성향은 바텀(동성애에서 여성 역할). 구강 성교 가능하신 분 찾아요.”
약 2억명의 누적 방문자를 기록한 동성애 사이트에 올라온 게시글이다. 성행위를 목적으로 즉석 만남을 요구하는 글이다. 사이트는 서울·경기·충북 등 지역별로 카테고리를 나누고 있다. 특정 지역을 선택하면 누적 글만 27만여 건에 달한다.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동성애자 만남 커뮤니티에서 이른바 ‘무차별 성행위’를 목적으로 한 즉석 만남이 국내에서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성인 간 합의하에 발생하는 성행위 자체는 자유이지만 성병 예방 조치 없이 이뤄지는 무분별한 만남은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4일 오후 4시 기준 실시간 접속 인원이 8912명에 달한 A 동성애 만남 사이트는 지금까지 누적 방문자가 2억4000만명에 이른다. 즉석 성행위를 목적으로 만나는 사례만 해도 수십만 건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종로 건장 탑’, ‘종로 ○○ ○○ 받으실 분’, ‘건장근끼리 만날 분’ 등 각종 동성애 용어를 활용한 성행위 제안 글이 하루에도 수백 건씩 게시되고 있다.
실제 해당 사이트를 통해 만남을 가졌던 동성애자 A씨(29·남)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만남 글이 올라오면 우선 성향을 본다. 대개 바텀과 탑으로 나뉘는데 각각 여성 역할과 남성 역할을 뜻한다. 실제로 만나보면 결혼을 한 사람들, 바이 즉 여성 애인이 있는 사람들도 많다”고 설명했다.
이어 “만남 장소는 자취방이나 모텔, 남성 전용 사우나가 대표적이다. 대부분 초면이라 카카오톡 같은 SNS는 잘 쓰지 않고 개인정보 유출 우려 때문에 사이트 내 쪽지를 활용한다”고 했다.
A씨는 또 “만남 이후 얼굴을 확인해 호감이 있으면 즉석에서 성관계가 이뤄진다”며 “삽입을 원하는 경우엔 에이즈 검사 결과를 공유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구강 성교로 대신한다. 다만 실제로는 항문 삽입 성행위를 요구하거나 선호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했다.

동성 간 특히 남성의 경우 성행위는 항문 삽입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항문은 각종 세균과 미생물에 노출된 부위다. 괄약근이 조여 있는 상태여서 물리적 진입 시 수축 반응이 일어나며 이 과정에서 점막 손상이 쉽게 발생한다.
직장 점막은 한 층의 얇은 원주세포로 이뤄져 있어 마찰만으로도 손상되기 쉽다. 점막 아래에는 모세혈관이 촘촘하게 분포돼 있어 출혈도 빈번하다. 이때 정액 속 병원체가 혈류로 유입되면 감염이 일어날 수 있다.
연세대 의대 김준명 교수는 기고문에서 “항문 성교와 관련해 가장 심각한 감염병은 에이즈(HIV/AIDS)”라고 지적한 바 있다.
국내 HIV 신규 감염자는 2013년 이후 대체로 연간 1000명 안팎이다. 2019년에는 1222명이었다. 다만 2021년에는 975명으로 1000명 미만을 기록했다. 2023년 말 기준 내국인 누적 신고는 1만9745명이다.
질병관리청은 '2024년 HIV/AIDS 신고 현황 연보'를 발간하고 지난해 신규 HIV 감염인이 975명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전년(1005명) 대비 30명, 약 3% 감소한 수치다. 내국인은 714명(73.2%), 외국인은 261명(26.8%)이었으며 남성 감염자의 다수는 내국인(78.9%)이었지만 여성 감염자 중 외국인 비중은 71.8%로 높게 나타났다.

연령대별로는 30대가 360명(36.9%), 20대가 291명(29.8%)으로 20~30대가 전체 신규 감염인의 66.8%를 차지했다. 감염 경로를 밝힌 503명 중 502명(99.8%)이 성접촉이라 답했고 이 가운데 동성 간 접촉은 63.7%였다. 검사 동기는 ‘자발적 검사’가 30.1%, ‘질병 원인 확인’이 25.1%였다.
2024년 기준 생존 HIV 감염인은 1만7015명으로 전년보다 556명(3.4%) 증가했다. 특히 60세 이상 감염인 비중이 20.5%로 늘고 있어 고령화가 뚜렷하다. 질병관리청은 '제2차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관리대책(2024~2028)'에 따라 2030년까지 신규 감염을 50% 줄이는 것을 목표로 PrEP 지원, HIV 검사 활성화, 치료 유지 지원 사업을 지속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익명성의 덫
동성애 만남 플랫폼은 불법이 아니다. 성인 간 합의에 따른 만남은 법적으로 규제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익명성과 즉시성에 기반한 구조는 위험을 키운다. 상대방의 건강 상태를 확인할 방법이 없고 콘돔 사용이나 예방약(PrEP) 복용 여부도 알 수 없다.
익명을 요구한 감염병 전문의는 여성경제신문에 “동성 간 접촉에서 콘돔 사용률이 낮아지면 감염 위험이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진다”며 “SNS와 지역 커뮤니티를 통한 무분별한 만남은 공중보건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익명성을 전제로 만남이 이뤄지기 때문에 성병이 발생했을 때 역추적이 어렵다”고 덧붙였다.
영국과 호주는 일정 규모 이상의 만남 플랫폼에 안전 가이드라인 제공을 의무화했다. 일부는 HIV 자가검사 키트를 앱과 연동해 무료 배포하고 검사 예약을 ‘원클릭’으로 연결한다. 런던에서는 앱 광고를 통해 실제 검사 참여율을 높였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반면 한국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불법·유해 정보만 제한할 뿐 보건 목적의 선제적 가이드라인은 부족하다. 전문가들은 “성적 지향 자체를 문제 삼기보다 플랫폼 구조가 감염병 확산과 연결되는 현실을 제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한 감염병 전문가는 “플랫폼에서 성적 만남을 찾는 행위는 사회적 다양성의 일부”라면서도 “반복되는 통계와 추세는 성적 자유와 사회적 안전 사이의 균형을 요구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자유로운 만남 자체를 막을 수는 없지만, 최소한 콘돔·PrEP·PEP 같은 안전장치 사용을 앱 안에서 적극적으로 안내하고 검사·치료 연계를 체계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편 해당 감염병 전문가는 동시에 이 같은 플랫폼이 성소수자들에게 중요한 소통 창구 역할을 해왔다는 점도 지적한다. 그는 "사회적 낙인과 차별로 인해 공개적으로 정체성을 드러내기 어려운 이들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익명성을 보장받으며 교류하는 것은 정신적 지지와 연대감 형성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특히 HIV 예방약(PrEP) 복용 경험이나 성병 검사 정보를 서로 공유하는 사례도 있어 제도적 안전망이 미비한 현실에서 정보 교환과 사회적 지지망으로 기능해 온 측면은 분명 존재한다"고 덧붙였다.
여성경제신문 김현우 기자 hyunoo9372@seoulmedi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