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도발에 中 H20 주문 자제 지시
中 정부 엔비디아 칩 '백도어' 의심
삼성 등 부품 업체 생산 중단 요청
"B30A, 미국 정부 결정에 따를 것"

엔비디아 'H20'의 수출 통제 해제 직후 미국 상무부의 발언이 중국 지도부의 자존심을 자극하면서 파장이 확산하고 있다. /바이두 캡처
엔비디아 'H20'의 수출 통제 해제 직후 미국 상무부의 발언이 중국 지도부의 자존심을 자극하면서 파장이 확산하고 있다. /바이두 캡처

엔비디아가 중국 수출용으로 설계한 인공지능(AI) 칩 'H20'의 수출 통제 해제 직후 미국 상무부의 발언이 중국 지도부의 자존심을 자극하면서 파장이 확산하고 있다. 양국 간 갈등 속에 '백도어' 논란까지 불거지며 H20에 부품을 공급하는 삼성전자 역시 단기적인 불확실성에 직면할 전망이다.

22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달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이 H20 수출 통제 해제 직후 CNBC 인터뷰에서 "중국 개발자들을 미국 기술에 중독시키는 것이 전략"이라고 발언한 내용이 중국 지도부에 모욕으로 받아들여지며 H20의 대중 수출이 사실상 중단된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규제당국인 중앙인터넷정책판공실(CAC), 국가발전개혁위원회(NDRC), 공업정보화부(MIIT)는 알리바바, 바이트댄스 등 주요 IT 기업에 H20 신규 주문을 자제하라는 비공식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정부는 H20에 위치추적과 원격 차단 기능이 내장돼 있다는 의혹을 규제의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으며 AI용 반도체의 50% 이상을 자국산으로 조달할 것을 의무화하는 지침도 도입했다.

이에 대해 엔비디아는 "H20 칩에는 백도어, 감시 소프트웨어, 원격 차단 등 기능이 존재하지 않는다"라며 의혹을 부인했지만 중국 관영매체 위위안탄티엔(玉渊谭天) 등 현지 언론은 "미국 정부는 과거 AI 칩에 백도어 설치를 체계적으로 논의한 적이 있다"라며 "엔비디아도 예외일 수 없다"라고 반박했다. 백도어는 외부에서 기기에 접근해 데이터를 수집하거나 작동을 통제할 수 있는 기능으로 보안상 최대 민감 이슈 중 하나다.

규제 기조가 강화되자 중국 주요 IT 기업들은 화웨이, 캠브리콘 등 자국산 AI 칩 채택 비중을 늘리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당국이 관련 기업 임원들과 비공식적으로 대화를 가진 것으로 안다"라고 전했다.

대만을 방문한 젠슨 황 엔비디아 CEO. /대만 중앙통신사(CNA) 캡처
대만을 방문한 젠슨 황 엔비디아 CEO. /대만 중앙통신사(CNA) 캡처

양국 간 갈등이 이어지자 엔비디아는 H20 공급망 조정에 착수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 IT 매체 디인포메이션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삼성전자와 앰코테크놀로지 등 주요 부품 공급업체에 H20 관련 부품 생산 중단을 요청했다. 

H20에는 4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인 'HBM3'가 탑재돼 있다. 초기에는 SK하이닉스가 공급을 주도했지만 지난해 하반기부터는 삼성전자가 HBM3 공급 계약을 체결하며 중국향 AI 칩 생산을 사실상 전담하게 됐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도 이번 사태의 여파를 피하긴 어려울 전망이다.

엔비디아는 "시장 상황에 따라 공급망을 지속적으로 조정하고 있다"라고만 언급했으며 이번 요청이 기존 생산의 중단인지 향후 계획의 철회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주목할 점은 엔비디아가 중국 시장을 겨냥한 차세대 AI 칩 'B30A'를 개발 중이라는 것이다. B30A는 최신 블랙웰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플래그십 듀얼 칩 'B300'의 약 50% 수준의 성능을 갖춘 제품으로 오는 9월부터 중국 고객에게 샘플이 제공될 예정이었다.

이날 TSMC와의 회의를 위해 타이베이를 방문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공항에서 열린 즉석 기자회견에서 "H20 후속 제품 출시 여부는 우리만의 결정 사안이 아니며 현재 미국 정부와 협의 중"이라며 "지금 단계에서 확답을 내리긴 이르다"고 말했다.

중국 현지 매체인 IT즈자를 비롯한 언론들도 이번 사태를 잇따라 보도하며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바이두 캡처
중국 현지 매체인 IT즈자를 비롯한 언론들도 이번 사태를 잇따라 보도하며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바이두 캡처

중국 현지 매체인 IT즈자를 비롯한 언론들도 이번 사태를 잇따라 보도하며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앞서 이들 매체는 엔비디아 H20에 대한 백도어 의혹과 함께 화웨이를 포함한 자국 AI 칩의 자립 역량 부족 문제도 지속적으로 지적해 왔다.

업계에선 중국 정부의 이번 조치가 오히려 자국 반도체 산업의 혁신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현재 중국산 반도체는 AI 추론 수준에서는 일정 부분 대응 가능하지만 엔비디아나 AMD GPU 수준의 고성능 AI 학습 처리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한편 중국 AI 스타트업 딥시크 R2는 최근 베이징 당국의 요청에 따라 엔비디아 대신 화웨이 하드웨어를 사용했지만 심각한 구동 지연이 발생한 것으로 전해졌다. 딥시크 측은 공식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자사 AI 모델 업그레이드 버전인 '딥시크 V3.1'이 "곧 배포될 차세대 국산 칩에 맞춰 설계됐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칩 종류는 공개하지 않았다.

여성경제신문 김성하 기자 lysf@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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