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 칼럼]
오남용할 경우 권위주의로 변질
정치인 사면 국민통합 기여 안 해
국민들 법 감정 어떠한지 살펴야

2024년 8월 조국 대표를 예방한 이재명 대표 /연합뉴스
2024년 8월 조국 대표를 예방한 이재명 대표 /연합뉴스

사면의 역사는 생각보다 상당히 오래되어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 아테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당시 아테네에서는 6000명가량의 시민들이 비밀투표로 사면권을 행사했으니 이는 제왕의 권력 행사가 아니었다. 근대에 들어 16세기 헨리 7세가 사면권을 갖게 됐었는데 이 역시 제왕의 권력이라기보다는 사법권과 입법권을 모두 의회가 장악하자 이를 견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면권을 국왕에게 부여한 것이었다. 

이런 역사를 가진 사면권은 결국 제왕의 권력 행사라기보다는 권력 독점을 견제하는 역할을 담당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후 미국 연방헌법이 대통령의 권한으로 사면권을 보장함으로써 오늘에 이르게 되었는데 이러한 사면권의 역사적 전개 과정은 사면권 행사가 비록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 하더라도 견제와 균형을 위해 사용되어야 하며 자의적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만일 대통령의 권한이라는 이유로 사면권을 마음대로 행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사법권을 침해하고 사법적 판단을 형해화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사면권을 오남용할 경우 사법권을 견제하는 것이 아니라 행정 권력이 사법 권력을 압도해 또 다른 형태의 권위주의로 변질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사면 대상자가 자신의 죄를 인정하거나 반성하고 있어 사면 대상이 됐는가 하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사면 대상 정치인들은 과거나 지금이나 죄를 인정하지도 않고 반성한다는 발언도 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인을 사면해 주는 것은 사법적 형평성 즉 법 앞에서의 평등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특정 범죄를 저지른 정치인을 사면해 주려면 동종의 범죄를 저지른 모든 이들을 사면해 주어야 공정한 사면권 행사가 될 것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죄를 인정하지도 않고 반성도 하지 않는 정치인들에게만 국한하여 사면권을 행사한다면 이는 법 앞에서의 평등권을 심각히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국민들의 법치에 대한 확신도 훼손할 수밖에 없다.

과거 역사를 보면 정치인에 대해 사면권을 행사할 때 대통령은 국민 화합 혹은 통합을 위해 사면을 실시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다. 이번 광복절 사면을 실시할 때 대통령실은 "이 대통령은 국민 통합이라는 시대 요구에 부응하고 민생경제에 온기를 불어넣기 위한 법무부의 사면안에 공감했다"라고 밝혔다. 그런데 과거의 많은 사례를 보면 정치인에 대한 사면이 국민통합에 기여한 적은 거의 없었다. 

아마도 대통령실은 이번 사면 대상에 포함된 정치인들의 면면을 보면 친명 인사들은 포함되지 않았고 야당 인사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주장을 했을지 모른다. 그런데 이런 주장에 여론이 공감하기는 힘들 것이다. 대통령실은 조국혁신당을 야당이라고 주장하지만 여론은 '여권의 일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대통령실의 이런 주장이 크게 틀린 것은 아니다. 여당의 사전적 개념은 '대통령이 속한 정당'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사전적 정의일 뿐 여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 중요하다. 또한 여론은 각종 비리 혐의로 사법적 처벌을 받았거나 현재 사법적 처벌이 진행 중인 정치인들이 왜 대거 사면 대상에 포함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갖는다는 점도 중요하다. 여론이 이렇다는 것은 여론조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15일 발표된 한국갤럽의 정례 여론조사(8월 12일부터 14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1007명을 대상으로 전화 면접 조사를 실시.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지지율은 직전 조사 대비 무려 5%P나 하락했는데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부정 평가 이유 1위는 '사면'이었다. 이는 현재 여론이 어떠한지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민주주의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법에 대한 신뢰를 키워 법치를 확립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재명 정부는 현재 국민들의 법 감정이 어떠한지부터 살펴야 한다. 우리 국민들은 비상계엄이라는 위헌적 불법 앞에서 용감히 저항했는데 그 이유 역시 법치를 위해서였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법의 공평한 지배 그리고 자의적이 아닌 공정한 법치의 실현이라는 것이다.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한국국제정치학회 부회장
한국세계지역학회 부회장
한국국제정치학회 총무이사
통일부 정책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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