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현장서 일하더라도
책임, 숙련도, 근속 달라

물류센터 근로자들 /연합뉴스
물류센터 근로자들 /연합뉴스

정부가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근로기준법에 명시하는 법 개정에 나섰다. 고용 형태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고 2024년부터 2027년까지 실태 조사, 정보 제공 시스템 개선,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확대 등을 단계적으로 추진한다는 구상이다.

14일 대통령 직속 국정기획위원회에 따르면 이재명 정부의 국정 청사진인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 이같은 내용이 담겼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입법적 노력은 국회에서 해야 한다”면서도 “대통령실도 정책적인 제안이나 법률적인 개정안이 나올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에서는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근로기준법에 포괄적·보편적 '동일 가치 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명문화하는 개정안을 지난해 10월 발의했다. 올해 1월 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에 상정돼 처리 대기 중이다.

제도 시행까지는 난관이 적지 않다. ‘동일가치’를 어떻게 정의하고 객관적 평가 기준을 세우느냐가 관건이다. 같은 현장에서 일하더라도 직무 책임, 숙련도, 근속연수에 따라 직무 가치가 달라질 수 있어 사회적 합의가 불가피하다.

국회 환노위 관계자는 여성경제신문에 "현장의 다양한 업무에 대해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판단 기준을 마련하기 어렵고, 기준이 마련된 경우에도 직무의 복잡성과 성과 등에 대한 구체적인 판단이 어려워 노·사간 다양한 분쟁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며 "그로 인해 임금격차 해소의 실효성을 담보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직무급제 도입도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직무급제는 개인의 경력이나 능력이 아닌 직무 가치에 따라 임금을 책정하는 방식으로,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의 취지에 부합한다. 하지만 직무 분석과 평가의 객관성 확보가 쉽지 않고 노사 간 이견도 예상된다. 

근로자 1000인 이상 기업 중 호봉제를 적용하는 비율은 63.0%에 달한다. 기존 호봉제에 익숙한 고령 근로자들 사이에서는 임금 삭감 우려로 반발이 거셀 수 있다.

해외에서도 완전한 성공 사례는 드물다. 영국 NHS(국민보건서비스)는 동일가치 평가를 도입했지만 관리자와 가까운 직원이 높은 점수를 받는다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캐나다 공공기관 역시 공식 평가표가 있어도 실제 점수 부여 과정에서 친분이나 내부 정치가 작용했다는 증언이 있었다.

유럽 일부 국가는 동일노동 동일임금 제도가 자리잡았지만 그들은 노동시장 유연성과 복지 시스템이 탄탄하다는 점이 있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경직된 고용 구조와 낮은 사회 안전망이 문제인데 그대로 제도를 이식하면 충격이 클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권오성 성신여대 법학부 교수는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이라는 가치를 실현하려면 사회적 합의를 통해 직무의 가치를 평가하는 ‘사회적 직무급’이 더 적절하다”며 “사회적 직무급 실현을 위한 노조 조직률 확대, 초기업단위 교섭 및 단협 적용범위 확대를 통한 협약임금 적용 확대가 직접적인 대응책”이라고 말했다.

여성경제신문 이상무 기자 sewoen@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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