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 한계 속 '새 성장동력' 필요
OECD 최하위권 생산성에 돌파구
'의료 민영화' 쟁점에 번번이 좌초

서비스산업 /연합뉴스
서비스산업 /연합뉴스

한국의 제조업 중심 성장 전략의 한계가 뚜렷해지면서 10년 넘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서발법)' 제정 요구가 다시 거세지고 있다. 22대 국회에서 여야가 법안을 발의하며 논의에 불을 지폈지만 해묵은 쟁점이 재현될 조짐을 보여 이번에도 엉킨 실타래를 풀 수 있을지 주목된다.

11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서발법 논의가 더딘 상태다. 송언석 국민의힘 의원과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한 법은 서비스산업의 경쟁력 강화와 생산성 향상을 위한 정부의 지원책, 세제 감면 등의 내용을 담았다.

핵심 쟁점에서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송언석 의원안은 기재부에 '서비스산업발전위원회'를 설치하는 등 포괄적인 지원책을 담았지만 논란이 됐던 보건·의료 분야 제외 규정은 포함하지 않았다. 반면 윤준병 의원안은 의료 민영화 우려를 차단하기 위해 "의료법, 약사법, 국민건강보험법 등에서 규정한 사항은 법을 적용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경제계에선 저성장의 늪에서 벗어나기 위해 서비스산업 육성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과거 한국 경제를 이끌었던 제조업 중심의 수출 주도 성장이 한계에 봉착했다는 진단이다.

실제로 서비스산업의 양적 성장에 비해 질적 수준은 낮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서비스산업은 국내총생산(GDP)의 44%, 전체 취업자의 65%를 차지할 만큼 몸집이 커졌다. 하지만 생산성은 20년째 제자리걸음이다. 제조업 대비 서비스산업의 노동생산성은 2005년 40%대에서 지난해 39.4%로 오히려 뒷걸음질 쳤다.

글로벌 경쟁력은 더욱 초라하다. 미국의 생산성을 100으로 봤을 때 한국 서비스산업의 생산성은 51.1(2021년 기준)에 불과하다. 이는 OECD 평균(59.9)은 물론, 제조업 강국인 독일(59.2)과 일본(56.0)에도 뒤처지는 수준이다.

이러한 생산성 격차는 한국의 잠재성장률 하락과 소득 정체의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2001년 5.5%에 달했던 잠재성장률은 계속 하락해 2%대마저 위협받고 있다. 2012년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달성했지만, 12년째 4만 달러의 벽을 넘지 못하는 것 역시 서비스산업의 부진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미국과 영국이 정보통신, 금융 등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을 발판 삼아 3만 달러 진입 후 수년 내에 4만 달러 시대를 연 것과 대조적이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은 여성경제신문에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의 제정 추진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의료 영리화 등을 비롯한 공공성 저해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므로, 정부는 서비스산업의 경쟁력과 생산력을 향상시킨다는 이유로 서비스산업의 공공성을 훼손시키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 서비스산업의 저생산성은 △부가가치가 낮은 업종 편중 △'공짜'라는 사회적 인식과 과도한 규제 △만성적인 투자 부족이라는 '3중고'에 기인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도소매·음식숙박업 등 상대적으로 부가가치가 낮은 생계형 자영업 비중이 높아 산업 전체의 영세성을 고착화시켰다. 또한 ‘서비스는 공공재’라는 인식 탓에 강력한 규제가 뒤따랐고 이는 산업 활력을 떨어뜨렸다. 그 결과 민간자본의 서비스산업 투자율은 2000년 26%에서 2022년 18%로 급감했다. 투자가 없으니 혁신 기업이 나오기 어렵고, 인재는 떠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서비스산업 육성의 컨트롤타워를 세우자는 취지의 서발법은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1년 처음 국회에 제출됐다. 하지만 18대 국회부터 21대 국회까지 발의와 폐기를 거듭하며 표류했다.

발목을 잡은 것은 '의료 민영화' 논란이었다. 법안이 통과되면 의료 부문에도 적용돼 공공성이 훼손되고 병원비가 폭등할 것이라는 시민사회와 의료계의 반발이 거셌다. 이 때문에 법안 심사 과정에서는 늘 보건·의료 분야를 적용 대상에서 제외할지를 두고 여야가 첨예하게 맞섰다. 21대 국회에서는 주무 부처를 기획재정부로 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논란까지 더해지며 결국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한국경제인협회 서비스산업위원회 김상현 위원장은 “부가가치와 일자리 창출 효과가 큰 서비스산업을 미래 신성장동력으로 육성·발전시켜야 한다”면서 “서비스산업에 대한 정책지원을 제조업 수준으로 강화하고, 규제를 선진국 수준으로 완화해 기업투자를 촉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성경제신문 이상무 기자 sewoen@seoulmedia.co.kr

저작권자 © 여성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