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장기요양보험 복지용구 급여
품목·제품 등재 일원화·법령 개정
소프트웨어 품목 제도권 진입 예상
새로운 가격결정 체계 필요성 대두

보행기·전동침대·휠체어 등 장비 중심이던 복지용구 급여 체계가 변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소프트웨어·앱 등 기술 기반 제품도 복지용구로 인정하는 제도 개편을 추진 중이다. 지금까지는 생산 단가를 기준으로 가격을 책정하는 ‘고시가’ 구조 탓에 이런 제품은 진입이 어려웠지만 앞으로는 ‘기능’ 중심 평가로 전환해 급여 범위를 넓히겠다는 계획이다.
31일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8월 18일부터 제조·수입업체를 대상으로 복지용구 신규 품목·제품 지정을 위한 공모가 진행될 예정이다. 공단은 “올해부터는 품목·제품 동시 심사체계를 도입해 신제품 공급 속도를 높이고 있다”며 “장기요양 수급자의 급여 선택권 강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공모 방식이 개편되면서 소프트웨어 등 기존 체계에서 급여화가 어려웠던 제품군이 제도권 진입을 시도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에 맞춰 공단은 최근 ‘복지용구 가격결정 및 전달체계 개선’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연구 제안서에서는 “품목·제품 등재 일원화 및 법령 개정으로 소프트웨어 품목 등 다양한 제품이 제도권 내로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기존 원가 기반의 가격 산출 방식과 다른 새로운 가격결정 체계가 필요하다”고 했다.
복지용구는 장기요양 수급자의 이동, 식사, 배설, 인지훈련 등 일상생활을 돕는 도구다. 65세 이상이거나 노인성 질환 등으로 일상생활이 어려운 이들이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급여를 받을 수 있다. 현재는 침대, 휠체어, 목욕 의자 등 물리적 구조가 명확한 제품 위주로 구성돼 있으며 제품 가격은 제조원가에 따라 고정된 ‘고시가’ 체계로 운영됐다.
이 구조는 단순 장비에는 적합하지만 인지훈련 앱, 돌봄로봇 같은 기술 기반 제품에는 적용이 어렵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기능이나 성능이 핵심인 제품의 경우 원가만으로 가치를 산정하기 어렵고 기술 발전 속도에 맞춰 빠르게 제품을 반영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건보공단은 2022년부터 일부 스마트 복지용구를 대상으로 시범 사업을 운영해 왔다. 이번 연구용역을 통해 기술 기반 제품에 대한 급여 평가 체계와 가격 결정 방식을 정비하겠다는 방침이다. 앱·디지털 플랫폼 등도 제도 안으로 편입할 수 있도록 구조를 개편하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현행 고시가 중심의 가격 결정 방식이 기술 진입 장벽이 되고 있다고 지적해 왔다. 지난해 12월 본지가 보도한 ''노인 돌봄 필수품' 복지용구, 수급자 80% "사용 안 해"' 기사에 따르면 복지 용구 유통·수입사 관계자는 “일본은 개호보험 체계 내에서 복지용구 가격을 자율경쟁에 맡기지만 한국은 공단이 정한 고시가에 따라 공급하는 구조라 기능이나 기술이 다양화되기 어렵다”며 “연간 사용 한도 160만원도 그대로여서 일정 수준 이상의 고기능 제품은 등록 자체가 어렵다”고 말했다.
해외 사례에서는 기술 기반 제품의 급여화가 이미 진행 중이다. 일본은 개호보험 제도를 통해 돌봄로봇, 인지훈련 장비 등 ICT 기반 제품에도 급여를 적용하고 있다. 실제 한국의 돌봄로봇 기업도 일본의 개호보험 적용은 받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적용받지 못해 일본 매출 비중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복지용구 급여제도 개편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데 공감하면서도 기술 중심의 정책이 실제 수급자의 활용 가능성과 연결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정은 숭실사이버대 요양복지학과 교수는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에이지테크 시장이 확대되고 AI 돌봄 기술도 발전하고 있는 만큼 복지용구 품목의 다양화는 제도적으로 필요한 방향일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현장에는 고도의 기술보다 실제 사용에 적합한 맞춤형 기술이 더 중요하다”며 “요양시설에서도 아직 널리 활용되지 않는 기술을 수급자 개인이 정보 습득부터 사용까지 집에서 직접 적용하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여성경제신문 김정수 기자 essence@seoulmedi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