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에서 리조트로 윤미영의 도전
리조트형 실버타운의 롤 모델
지자체 등 견학 요청 끊이지 않아
필자는 전국의 실버타운을 조사해 <실버타운 사용 설명서> 책에서 34곳을 분석했지만, 숫자로 정리된 정보만으로는 실버타운의 진짜 모습을 다 담을 수 없었다. 실버타운의 가치는 결국 '사람'에서 나온다. 그곳에서 생활하는 입주민들의 삶 운영자의 철학 그리고 실버타운을 둘러싼 이야기들이 모여야 비로소 한 곳의 실버타운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이 탐방기는 직접 현장을 방문해 운영 책임자나 입주민과 대화를 나누고 그들의 목소리를 통해 실버타운의 실상을 전하고자 한다. 책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이야기들과 숫자로 표현할 수 없는 실버타운의 면면을 풀어낼 계획이다.

도시 속 리조트 ‘라우어의 탄생’
국내 대부분 실버타운은 고층 건물 안에 식당, 헬스장, 수영장, 간호사실 등이 함께 있는 ‘편의시설형 레지던스’에 가깝다. 하지만 라우어는 그와는 결이 다르다. 단지 안에 정원과 산책로, 예술 공간, 커뮤니티 시설이 어우러져 하나의 작은 마을처럼 구성된 리조트형 시니어타운이다. 이곳은 단순히 머무는 공간이 아니라 걷고 바라보고 교류하는 삶의 무대다. 도시 속에서 자연과 일상이 만나는 새로운 노년의 주거 모델을 제시한 곳, 바로 라우어다. 이 리조트형 시니어타운을 기획하고 현실로 만든 주인공 윤미영 회장을 만났다.
사회복지사에서 실버타운 오너로 ‘윤미영 회장의 여정’
윤미영 회장의 경력은 실버타운 업계에서 이례적이다. 그는 기업인이 아니라 사회복지사로 출발했다. 봉사활동으로 시작해 보다 체계적인 복지를 실현하고자 2008년에 사회복지사 자격을 취득했고, 50세가 넘은 나이에 부산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에 진학했다. 그곳에서 복지의 이론적 토대를 다졌고, 이후 보다 전문적인 경영 역량을 갖추기 위해 동의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늦은 공부였지만 지금 돌아보면 인생의 전환점이었어요. 복지는 ‘현장 경험’이나 ‘이론’만으로는 완성되지 않거든요. 두 가지가 만날 때 진짜로 사람이 보입니다.”
윤 회장은 사회복지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다음 해인 2016년 사회복지법인 나온을 설립했다. 나눔의 온기라는 뜻을 가진 ‘나온’은 지자체와 공익단체로부터 복지관 운영과 사회복지사업을 위탁 받아 노인 돌봄, 가족지원, 다문화가정 프로그램 등 복합 복지사업을 추진해 왔다. 현재도 이 법인을 직접 운영하고 있다. 복지관을 위탁 받아 운영 하면서 어르신들의 식단, 안전, 응급 상황 대응까지 전 과정을 몸으로 익혔다. 그러한 경험이 지금 라우어 운영의 바탕이 됐다.

이후 윤 회장은 부산도시공사의 오시리아 관광단지 내 ‘메디타운 조성사업’ 공모에 도전했다. 의료시설과 시니어타운을 결합하는 대규모 프로젝트였다. 대부분의 기업이 수익성을 이유로 포기했지만 그는 달랐다.
“사업성보다 ‘이런 곳이 꼭 필요하다’는 신념이 더 컸어요. 어르신들이 존중받으며 살 수 있는 공간, 그것이 제가 만들고 싶었던 세상이었습니다.” 그 결단이 결국 지금의 라우어를 탄생시켰다.
라우어 시니어타운의 철학, ‘문화, 세대통합, 건강’
라우어는 1만8천 평 부지에 944세대가 거주하는 대단지로 규모뿐 아니라 다른 실버타운과 차별성을 가지고 있다. 단지 내에는 6,000평의 커뮤니티 시설과 6,000평의 조경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예술가 장 줄리앙(Jean Jullien)의 조형물과 김우일 작가의 기록 사진이 단지 곳곳에 배치되어 예술이 일상 속에 녹아 있다.

윤 회장은 “건축은 단지 공간이 아니라 삶을 담는 그릇”이라 표현한다.
“라우어의 설계 단계에서부터 저희는 ‘조경이 곧 복지’라는 관점을 세웠어요. 어르신들이 자연 속에서 걸을 수 있고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도록 아치형 회랑을 설계했습니다. 청명원 중앙 정원에도 올해로 300살이 된 팽나무가 든든하게 자리하며 잔잔한 수면과 조화를 이루어 사계절의 변화를 그대로 담아냈어요.”

라우어의 또 하나의 특징은 ‘개방성’이다. 입주민 전용 주거동 외의 정원과 상가는 외부에 열려 있다. 인접한 오시리아 관광단지를 찾은 젊은 부부와 아이들이 라우어 정원을 산책하며 입주 어르신과 자연스럽게 마주친다.
“저는 노년이 세상과 단절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이 뛰어노는 정원, 그걸 바라보는 어르신의 미소, 이런 장면이 라우어가 만들어내는 세대 통합이에요.”
세대 내부에서도 자연과 일상이 연결된다. 모든 세대에 테라스가 설계되어 송정해수욕장이나 오시리아 단지를 조망할 수 있다. 어르신들이 굳이 헬스장에 가지 않아도 테라스에서 아침운동 겸 햇볕을 쬐고 화초를 가꾸며 하루를 시작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수영장을 비롯하여 사우나와 라티브 세대에는 지하에서 끌어올린 천연 광천수가 공급된다. 나트륨·칼슘·마그네슘·스트론튬 성분이 풍부해 피부 진정과 근육 이완에 좋다. 입주민분들이 피부가 좋아졌다고 한다. 라우어의 사우나는 단순히 씻는 게 아니라 몸이 쉬고 마음이 회복되는 시간이다.

사람이 중심인 조직, ‘가족 같은 팀워크와 서비스 선투입 원칙’
라우어의 실무진은 윤 회장과 부산대 사회복지대학원에서 인연을 맺은 동기·후배들, 그리고 복지법인 ‘나온’ 출신 직원들이 함께 하고 있다. 시니어타운은 결국 ‘사람의 일’이다. 사회복지를 전공한 사람은 기본적으로 봉사와 어르신에 대한 공감이 몸에 배어 있고 그 진정성이 서비스의 품격을 결정한다.
윤 회장은 라우어에서 일하고 있는 임직원들을 “자동차의 기어”에 비유한다. “기어는 작지만 정확히 맞물려야 자동차가 움직이죠. 우리 임직원들도 마찬가지예요. 자기 몸이 깎이는 어려움이 있더라도 서로 맞물려 돌아가야 큰 자동차인 라우어가 굴러갑니다.” 주말에도 자발적으로 나와 일손을 돕는 사람들, 1인 3역을 감당하며 현장을 지탱하는 사람들이다.
또 하나의 원칙은 “닭이 먼저”, 즉 서비스 선투입이다. 입주가 완전히 완료되기 전부터 240명의 전 직원을 모두 채용해 운영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최소 인원만 고용한 후 입주율이 높아지면 직원을 늘리는 게 일반적이지만 라우어는 반대로 했다. 서비스가 먼저 준비돼야 신뢰가 생긴다는 믿음에서다.
인건비 부담은 컸지만 윤회장은 그것이 ‘라우어다운 방식’이라고 말한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라면, 우리는 닭(서비스)을 먼저 선택합니다. 서비스의 끊김이 없어야 입주민이 처음부터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고 초반의 진정성이 결국 브랜드의 신뢰로 쌓입니다.”


공동체가 피어나는 시니어타운, ‘변화와 좋은 영향력의 확산’
입주 6개월이 지난 지금 라우어는 활기를 띄고 있다. 60~70대 초반의 입주민들이 수영과 송정해수욕장의 맨발 걷기를 일상처럼 이어가며 건강을 되찾고 있다.
여성 입주민들로 구성된 ‘매그놀리아 클럽’은 윤미영 회장에게 손편지와 함께 작은 간식을 전했다. 편지에는 “힘내세요, 회장님 덕분에 행복합니다”라는 짧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윤 회장은 그 글을 읽으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고 한다. 화려한 언어나 형식이 아니었지만 자신이 걸어온 길의 의미를 다시금 일깨워준 고마운 마음이었다.

입주민들은 공동체의 의미를 직접 만들어 가고 있다. ‘메그놀리아 부녀회’는 바자회를 열어 얻은 수익금을 어려운 이웃에게 기부하며 나눔의 문화를 이어가고 있다. 윤 회장은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시설이 아무리 좋아도 결국 사람의 마음이 공간을 완성한다”는 확신을 더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라우어는 리조트형 시설로서의 아름다움뿐 아니라 입주민들의 자발적 참여와 나눔을 통해 행복한 공동체로 성장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자연스럽게 외부로 알려져 라우어의 시니어타운 모델은 전국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라우어 다움, ‘공존의 철학’
지금까지 대기업과 건설사, 지자체, 국토부, LH, 관광공사 등 100여 곳이 라우어를 직접 찾아 견학했다. 그중에는 이미 실버타운을 운영 중이거나 새롭게 준비 중인 곳들도 적지 않다. 일반적으로라면 경쟁 관계로 볼 수도 있지만 윤 회장은 오히려 그 상황을 따뜻하게 바라본다.
윤 회장은 “경쟁사라도 괜찮다”고 말한다. 좋은 실버타운이 더 많이 생기고 서로가 선의의 경쟁을 통해 서비스의 수준이 높아진다면 그것 역시 결국 어르신들을 위한 일이라는 것이다. 라우어의 출발점이 ‘노년의 삶을 더 존중받게 하자’는 마음이었던 만큼 다른 곳이 그 뜻을 이어간다면 오히려 반가운 일이라 여긴다.
윤 회장은 라우어가 가진 차별성을 경쟁이 아닌 ‘공존의 철학’으로 설명한다. 부산 오시리아 관광단지라는 입지, 자연과 어우러진 리조트형 구조, 그리고 단지 안에서 피어나는 공동체의 문화가 라우어만의 색을 만든다는 것이다. 그는 “좋은 시설이 늘어나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이로운 일”이라며, “라우어는 그중에서도 라우어답게 사람 중심의 철학을 지켜가며 나아가면 된다”고 덧붙였다.
다음 여정, ‘의료 인프라와 공동체’
라우어의 다음 단계는 의료 인프라 확충이다. 당초 폭넓은 의료 서비스를 목표로 했지만, 병상 총량제 등 강화된 법적 기준으로 인해 현재는 재활의학과와 한방 중심의 의료시설을 준비하고 있다. 윤 회장은 “병원은 여전히 큰 과제예요. 하지만 포기하지 않습니다. 어르신의 건강을 지키는 일은 시니어타운의 기본이니까요. 내년 초 개원을 목표로 행정 절차를 진행 중입니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윤 회장은 라우어를 “어르신들 인생의 두 번째 무대를 위한 타운”이라고 정의한다.
“라우어는 좋은 시설을 넘어 좋은 사람이 있는 곳입니다. 나이, 출신, 배경에 상관없이 서로를 존중하고 어울릴 수 있는 공동체죠. 혼자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노년, 그게 라우어의 가치입니다.”
여성경제신문 이한세 객원기자·숙명여대 실버비즈니스학과 외래교수 justin.lee@spireresearch.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