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튜버 특유의 '세계관 존중' 문화
이세계아이돌 '빨간약' 영상 논란
단순 유행 아닌 산업이자 생태계

버추얼 아이돌 그룹 '이세계아이돌' 사진.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버추얼 아이돌 그룹 '이세계아이돌' 사진.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캐릭터가 등장해 시청자와 소통하고 리액션을 주고받는다. 채팅에 따라 웃고, 울고, 공감도 건넨다. 국내 버튜버(VTuber, Virtual YouTuber) 시장은 2021년 말부터 2022년 초 본격적인 성장 궤도에 올랐다.

기존 인터넷 방송은 뛰어난 외모나 게임 실력 등 사람들이 선호하는 '시각적 호감'이 필요했다. 일부는 마스크를 쓰거나 신상을 감추기도 했지만 비주류에 머물렀다. 

그런 흐름 속에서 버튜버의 등장은 방송 생태계를 새롭게 재편했다. 단순한 외모적 부담이 아니라 2D 또는 3D로 구현된 버추얼 아바타는 개인의 신상 정보를 완전히 가릴 수 있다는 점에서 방송을 꿈꾸는 이들에게 새로운 무대를 열었다. 유니크한 목소리, 재치 있는 입담, 매력적인 세계관 등을 통해 시청자와 교감하며 '방송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매개체가 된 것이다.

2024년 1분기 기준 한국은 글로벌 버튜버 시장에서 점유율 4.9%를 기록하며 일본과 미국에 이어 세 번째로 큰 시장이 됐다. /StreamsCharts 통계자료 캡처
2024년 1분기 기준 한국은 글로벌 버튜버 시장에서 점유율 4.9%를 기록하며 일본과 미국에 이어 세 번째로 큰 시장이 됐다. /StreamsCharts 통계자료 캡처

2024년 1분기 기준 한국은 글로벌 버튜버 시장에서 점유율 4.9%를 기록하며 일본과 미국에 이어 세 번째로 큰 시장이 됐다. 캐릭터 제작에만 초기 자본이 투입되면 진입 장벽이 낮다는 점에서 시장은 빠르게 포화 상태인 '레드오션'으로 접어들었다. 현재는 애니메이션풍 캐릭터를 넘어 고양이, 펭귄 등 동물 형상의 스트리머도 흔히 볼 수 있다.

이 같은 성장 이면에는 버튜버 특유의 '세계관 존중 문화'가 존재한다. 팬들은 크리에이터를 '캐릭터 그 자체'로 받아들이며 그 속의 현실을 굳이 파헤치려 하지 않는다. 그들만의 암묵적 룰이 존재하며 이를 상호 존중한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현실을 직시하게 만드는 '불편한 진실'을 뜻하는 '빨간약(Redpill)'에 빗대어 이들은 실제 인물 정보를 빨간약으로 부른다. 일본에서는 버튜버의 과거 방송 이력을 '전생'이라 지칭하기도 한다. 스트리머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빨간약의 공개는 세계관 붕괴로 받아들여진다. 이 세계의 암묵적 룰은 '모른 척해주는 것'이며 이를 깨뜨리는 행위는 곧 비매너로 여겨진다.

최근에는 국내 탑급 버튜버 그룹 '이세계아이돌(이세돌)' 관련 '빨간약 영상'이 온라인에서 퍼지며 논란이 일었다. 해당 영상이 실제 인물이라는 주장과 이를 부정하는 의견이 맞서며 팬덤 사이에 큰 균열을 불러왔다. 진위는 확인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공개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국내 스트리밍 플랫폼 '치치직' 버튜버 방송인들이 실시간 라이브 방송을 진행 중 이다. /치치직 캡처
국내 스트리밍 플랫폼 '치치직' 버튜버 방송인들이 실시간 라이브 방송을 진행 중 이다. /치치직 캡처

상호 신뢰와 약속 위에 세워진 그들만의 문화다. 이 세계에선 현실을 들이밀지 않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존중이다. 팬들은 자신이 몰입한 세계관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경계를 세우고 그 안에서 캐릭터와 교감한다. 현실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알지 않기로' 선택한 것이다.

콘텐츠의 형식과 의미는 끊임없이 진화한다. 버튜버 팬덤은 단지 이를 조금 더 철저하게 받아들이는 방식일 뿐이다. 우리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것을 함부로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다.

최근 급부상한 '플레이브(PLAVE)'와 이세돌 등은 음원을 발매하고 뮤직비디오를 제작하며 무대에서 춤추고 노래한다. 심지어 콘서트까지 연다. 그저 하나의 아티스트와 팬으로서 화면 너머의 캐릭터와 소통하며 환호하고 응원한다.

버튜버는 더 이상 일시적 유행이 아니다. 이는 관습에 도전하며 새로운 창작 방식과 소비 문화를 만들어가는 하나의 산업이자 고유한 생태계다. 이들이 구축한 세계관과 그 안에서의 관계 맺음은 단순한 캐릭터 콘텐츠를 넘어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서사로 자리 잡고 있다.

여성경제신문 김성하 기자 lysf@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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