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개 성과 뽑기식 정부 지원 사업 논란
실력 있는 기업 떠날 수밖에 없는 구조
표절 및 오용 방지책 단 한 줄 언급 없어

정부가 인공지능(AI) 콘텐츠 산업 육성을 명분으로 2025년 1차 추경 165억 원을 투입하는 'AI 콘텐츠 제작 지원사업' 공모에 착수했다. 하지만 편당 2000만~2억원 지원이라는 비현실적 단가, 총 54편을 찍어내듯 뽑는 성과주의 구조가 퍼주기성 포퓰리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유인촌)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은 22일 ‘AI 콘텐츠 실증 제작’ 36편, ‘AI 영상 제작’ 18편 등 총 54개 과제를 선정해 최대 7억 원까지 지원한다는 추가 공모 계획을 발표했다. 이번 사업은 음악, 웹툰, 게임, 엔터테인먼트 등 신기술 융합형 콘텐츠의 상용화를 목적으로 하는 실증 제작과, 영화·방송·애니메이션 기반 AI 영상 제작 지원으로 구성된다.
지원 유형은 △초기 기업 중심 ‘진입형’ △시장 확장형 ‘선도형’ △기업 간 협업 구조인 ‘협력형’ 등 세 갈래로 나뉘, 유형별로 2억~7억 원이 차등 지급된다. 영상 부문에선 60분 이상 장편 8편에 최대 2억 원, 20분 이내 단편 10편에 최대 2000만 원이 각각 배정됐다.
그러나 콘텐츠 업계에선 영상 단가 책정부터 문제가 있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한 제작사는 “AI 영상 제작은 생성형 엔진, 후반 작업, 합성 툴 비용을 고려하면 단순 디지털 영상보다 더 많은 리소스를 요구한다”며 “2000만 원은 단편 한 편도 제작 불가능한 액수”라고 지적했다. 장편도 예산이 2억 원 수준이면 시나리오 기획, 제작, 후반 렌더링까지 일괄 수행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평가다.
실제 생성형 AI 영상은 아직 국내에서 안정적 프로덕션 파이프라인이 정착되지 못한 상태다.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이 이를 실증할 경우, 일정 수준의 그래픽처리장치(GPU) 인프라 확보와 툴셋 라이선스만으로도 수천만 원이 들어간다. 여기에 장면 조정, 윤리 검수, 저작권 필터링까지 고려하면 콘진원이 제시한 제작 단가는 산업 현장의 요구와 괴리돼 있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더 큰 문제는 ‘54편 뽑기’ 중심의 과제 구조가 성과 관리에는 편하더라도 시장성과 지속 가능성에는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증, 검증, 상용화라는 표현은 그럴싸하지만 실제로는 수년째 반복돼 온 파일럿 프로젝트의 반복일 가능성이 크다는 회의론도 있다.
정부가 오히려 '출처 미표기 AI 콘텐츠' 양산을 독려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구글조차 딥마인드(DeepMind)가 개발한 AI 생성 콘텐츠 식별 기술(SynthID)을 통해 출처 표기 원칙을 앞세우고 유럽연합(EU)은 'AI가 만든 콘텐츠는 반드시 표시하라'는 법안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문체부의 이 사업은 출처 표절 및 오용 방지책에 대해 단 한 줄도 언급하지 않았다.
콘텐츠업계 한 관계자는 여성경제신문에 “AI 영상 제작은 단순히 콘텐츠 한 편을 만들어내는 문제가 아니라, 데이터 축적–윤리 검수–인력 양성–저작권 리스크 관리가 맞물려 돌아가는 생태계 구조”라며 “이걸 단기 실증 프로젝트로 나눠 찍어내면 결국 실력 있는 기업은 떠나고 의미 없는 결과물만 쌓이게 된다”고 말했다.
여성경제신문 이상헌 기자 liberty@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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