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수·이재명 모두 치매 공약 쏟아냈지만
일본·대만은 바꾼 ‘치매’ 병명, 한국 그대로

15일 대구 중구 남산동에서 한 유권자가 제21대 대통령 선거 벽보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15일 대구 중구 남산동에서 한 유권자가 제21대 대통령 선거 벽보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김문수, 이재명 후보 모두 앞다퉈 치매 간병비 경감, 자산관리 보호, 의료·돌봄 통합 등을 약속했다. 그런데 공약들 사이엔 10년 넘게 이어진 하나의 정책 과제가 빠져 있다. ‘치매’라는 병명 자체를 바꾸겠다는 의지다.

치매 간병은 보험으로, 자산은 신탁으로… 병명이 빠졌다

20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김문수 후보는 문재인 정부의 ‘치매국가책임제’를 계승하겠다고 밝혔고 이재명 후보는 윤석열 정부의 ‘공공신탁제도’를 치매노인까지 확대하겠다고 공약했다. 

두 후보 모두 치매로 인한 가족 부담, 간병 비용, 자산 침해 문제를 두루 짚었지만, 정작 가장 낙인적인 요소인 병명 ‘치매’(癡呆)에 대한 입장은 한 줄도 없다.

치매는 한자로 ‘어리석을 치(癡), 어두울 매(呆)’를 쓴다. 고령 환자 당사자와 가족은 “치료보다 먼저 바꿔야 할 건 병명”이라고 말해왔다. 특히 환자의 판단력이 줄어든다는 이유로 사회적 능력이 송두리째 부정되는 듯한 낙인 효과는 ‘병보다 단어가 더 무섭다’는 말까지 나온다.

국회에선 이미 10년 전부터 병명을 ‘인지장애증’, ‘인지증’ 등으로 바꾸자는 내용을 골자로 한 법안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왔다. 한자권 국가인 일본은 2004년, 대만은 2012년 이미 공식 병명을 바꿨다. 한국만 2025년에도 여전히 ‘치매’다.

김문수 후보는 “치매가족을 위한 코디네이션 확대”를 이재명 후보는 “공공신탁제도로 재산 분쟁 예방”을 내세웠지만, 인식 개선의 핵심인 병명 개정에 대한 입장은 찾기 어렵다. 결국 치매를 ‘복지비용 문제’로만 접근하는 행정적 시야에 갇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치매전문의는 여성경제신문에 “간병비 지원도, 신탁제도 확대도 중요하지만, 환자가 ‘나는 치매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조차 수치심이 든다면 모든 지원은 반쪽짜리”라고 지적한다. 이어 "진료를 받으러 오는 환자에게조차 사실 '치매 걸렸다'는 말은 피하는 편"이라고 했다. 

보건복지부는 치매용어변경TF를 만들어 한 차례 회의를 가진 게 전부다. 제도적 근거가 없어 공론화도 불가능했고 정치권은 이를 정책 이슈로 다룬 적도 없다. 

여성경제신문이 지난달 9일 보도한 치매는 낙인이라더니···병명 개정, 복지부 왜 멈췄나를 보면 학계에서의 치매 용어의 부정적 의미를 완화하기 위한 명칭 개정 논의는 사실상 중단됐다. 대체 용어 선정과 행정·의학 용어의 일치 여부를 둘러싼 의견 차이로 인해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정신의학과 의사 단체는 "단순히 좋지 않은 단어의 이미지에 기인하여 용어 변경을 하는 것은 무의미하고, 의학용어로 사용되는 치매 대신 '뇌인지저하증' 등 대체단어로 변경 시 '경도인지장애'와 중증도 여부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등 오히려 환자의 조기발견과 적극적인 치료에 있어 혼선을 야기할 수 있다"며 신중한 접근을 촉구했다. ​

여성경제신문 김현우 기자 hyunoo9372@seoulmedia.co.kr

관련기사

저작권자 © 여성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