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율은 OECD 최고
‘최후의 복지’가 무너진다

기초생활보장제도. 생계를 보장하기 위한 급여라기보다는 ‘극단적 빈곤 상태’를 간신히 유지하게 하는 수준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연합뉴스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생계를 보장하기 위한 급여라기보다는 ‘극단적 빈곤 상태’를 간신히 유지하게 하는 수준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연합뉴스

"딱 한 끼만 해결되면 좋겠어요."

서울 금천구 반지하에 거주 중인 윤모 씨(63)는 최근 기초생활보장 신청에서 탈락했다. 폐기능 저하로 더는 일하지 못하는 그는 "살 수 있는 기준은 아니라는데 그렇다고 죽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했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생계, 의료, 주거, 교육 등 최소한의 삶을 정부가 보장하는 제도다. 2000년 '생활보호법'을 대체해 제정됐고 헌법 제34조 1항의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는 조항을 구체화한 대표적 공공부조다. 무엇보다 이 제도는 '법률상 권리'로 규정된 복지급여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한데 제도가 현실에서 본연의 기능을 다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4년 기초생활보장제도 예산 자료’에 따르면 올해 제도 총 예산은 약 12조6000억원이다. 2023년 대비 6.2% 증가한 수치지만 수급자 수 증가와 물가 상승에 따른 자연 증가분이 대부분이다. 생계급여는 약 4조6000억원, 의료급여는 약 4조9000억원, 주거급여는 2조원, 교육급여는 3000억원 수준으로 집행되고 있다.

이 같은 예산 증가가 빈곤율 감소로 이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한국의 사회지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상대적 빈곤율은 약 15.3%로 OECD 평균(약 11.6%)을 상회한다. 같은 해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는 약 215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4%에 불과하다.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접근 가능한 빈곤층의 일부만을 포괄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제도의 구조적 한계는 현장 곳곳에서 드러난다. 급여 수준이 현실 생활비에 비해 낮다. 2024년 1인 가구 생계급여는 월 약 69만원이지만, 서울시가 산출한 '1인 가구 기준 적정 생계비'는 약 120만 원에 이른다. 생계를 보장하기 위한 급여라기보다는 ‘극단적 빈곤 상태’를 간신히 유지하게 하는 수준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주거급여 역시 충분하지 않다. 2023년 기준 민간임대 평균 월세가 60만원을 넘어선 상황에서 기초생활수급자의 주거급여는 가구 유형과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월 20만~30만원 수준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기준의 엄격성도 문제로 지적된다. 2021년부터 부양의무자 기준 일부가 폐지됐지만, 여전히 가구의 소득과 재산 기준은 정량적으로 산정된다. 현실과 괴리된 사례도 많다. 예컨대 생계급여는 기준 중위소득 30% 이하, 주거급여는 47% 이하 가구만 해당된다. 실제 소득이 불안정하거나 지출이 많은 저소득층이더라도 형식적으로 기준을 넘기면 탈락하는 구조다.

김미림 한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여성경제신문에 "기초생활보장은 생존을 보장하는 최소 제도이지만 현실에서는 제도에 접근조차 어려운 이들이 많다"며 "소득과 지출, 지역 생활비 등 다양한 변수를 반영하는 정교한 설계가 필요하다"고 했다.

긴급복지제도와의 연계 부족도 빈번히 지적된다. 갑작스러운 실직이나 질병, 가족 해체 등 위기 상황에서 지원받을 수 있는 제도는 별도로 마련돼 있으나 부처 간 시스템이 통합되지 않아 실질적 연계가 어려운 구조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지난해 보고서를 통해 “긴급복지제도와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연계될 수 있는 데이터 연동과 통합 운영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제안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제도의 보완 방향으로 ▲국고보조율 확대를 통한 지방정부의 재정 부담 완화 ▲지역별 생계비와 임대료를 반영한 급여 현실화 ▲복지 사각지대 조기 발견을 위한 데이터 기반 감지 시스템 고도화 등을 공통적으로 언급한다.

조민규 한국빈곤사회연구소 부연구위원은 여성경제신문에 “기초생활보장은 복지의 시작이 아니라 사회가 더는 외면할 수 없는 마지막 선”이라며 “그 문턱에서 떨어져 나가는 사람이 없도록 기준보다 삶을 먼저 보는 복지가 돼야 한다”고 했다.

여성경제신문 김현우 기자 hyunoo9372@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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