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년 만의 조선·청 부채 예술 재조명
추사 김정희에서부터 근대 거장까지
간송 컬렉션 선면서화 54점 최초 공개

서울 간송미술관은 부채 서화를 조명하는 봄 기획전 <선우풍월(扇友風月): 부채, 바람과 달을 함께 나누는 벗>을 개최한다. /간송미술문화재단
서울 간송미술관은 부채 서화를 조명하는 봄 기획전 <선우풍월(扇友風月): 부채, 바람과 달을 함께 나누는 벗>을 개최한다. /간송미술문화재단

유홍준 작가의 둥근 부채인 단선(團扇)에 메모를 적어 내려가는 독특한 글쓰기 습관은 단순한 필기법이 아니다. 알고 보면 조선 문인들의 ‘선면(扇面) 서화’ 전통과 깊은 연관이 있다. 부채의 또 다른 형태인 접선(接扇)은 접었다 펼 수 있는 쥘부채로 조선 후기 문인들이 시와 그림을 담은 예술적 매체로 활용했다.

서울 간송미술관은 부채 서화를 조명하는 봄 기획전 <선우풍월(扇友風月): 부채, 바람과 달을 함께 나누는 벗>을 개최한다. 2024년 재개관 이후 시작한 3개년 계획전의 세 번째 기획전이다.

추사 김정희 지란병분  /간송미술문화재단
추사 김정희, <지란병분> /간송미술문화재단

김영욱 전시교육팀장은 “2024년 전시에서는 간송 컬렉션의 정체성을 들여다봤다면 2025년 봄과 가을의 전시 주제는 ‘유형’이다. 간송미술관의 소장품은 국보와 보물에 집중된 평가에서 벗어나 유형(형식)에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번 <선우풍월>은 1977년 이후 48년 만에 선면 서화를 주제로 한 특별전으로 총 133점 중 엄선된 54점이 전시된다. 전시는 크게 세 가지 섹션으로 나뉜다. 조선 후기 선면 서화, 청대 문인들의 선면 작품, 그리고 근대 한국 서화가들의 작품이다. 2층 전시실에는 조선과 청대의 선면화 총 24건 25점을 만날 수 있다.

간송미술관 전인건 관장은 2층 조선 시대 작품 중 난생유분(蘭生有芬)과 분분청란(芬芬靑蘭)을 소개했다. /최영은 기자
간송미술관 전인건 관장은 2층 조선 시대 작품 중 난생유분(蘭生有芬)과 분분청란(芬芬靑蘭)을 소개했다. /최영은 기자

간송미술관 전인건 관장은 2층 조선 시대 작품 중 난생유분(蘭生有芬)과 분분청란(芬芬靑蘭)을 소개했다. 이번 전시회에 선보인 작품 중에서 전 관장이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라 했다. 난생유분과 분분청란은 조선 말기 중인 출신 화가이자 추사의 제자 우봉 조희룡의 작품이다. 두 작품은 조희룡의 임자도 유배를 기점으로 화풍을 달리한다.

난생유분에서는 추사 김정희의 영향을 짙게 풍기는 묵란화를 그렸다면 유배 이후에는 가슴에 쌓인 울분과 격동하는 감정에 따랐다. 전 관장은 이 외에도 조선의 선면 서화를 설명하며 "다양한 형태와 크기의 부채 위에 그려진 그림과 글씨에 대한 것들을 색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는 형식이 선면화"라며 "당대 최고 예술가의 선면 서화 부채를 지녔다는 건 요즘으로 치면 최고의 명품을 걸친 거나 다름 없었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함께 전시되는 중국의 선면 서화는 대부분 추사학파에 속하는 문인들과 묵연(墨緣)을 맺은 청나라 문사들 간 증답(贈答)의 목적으로 제작된 것이다. 청나라 여인들이 부채를 통해 서로의 시사(詩詞) 문학을 공유하는 규방 문화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작품들도 있다.

1층에서는 근대 서화계의 기반을 다진 서화미술회와 서화협회 작품이 전시되며 간송 전형필과 교유했던 김태석, 백윤문, 배렴, 이기우가 선물한 4건 4점의 작품도 함께 소개된다.

청나라 규방 문화를 보여주는 선면 서화를 통해 동아시아적 시각을 확장하며 부채라는 소재가 지닌 풍부한 미학적 잠재력을 탐구한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갖는다. /간송미술문화재단
청나라 규방 문화를 보여주는 선면 서화를 통해 동아시아적 시각을 확장하며 부채라는 소재가 지닌 풍부한 미학적 잠재력을 탐구한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갖는다. /간송미술문화재단

이번 전시는 단순히 부채를 예술적 매체로만 바라보는 것을 넘어 조선 문인들의 철학과 정서를 함축한 문화적 상징으로서 부채를 재해석한다. 청나라 규방 문화를 보여주는 선면 서화를 통해 동아시아적 시각을 확장하며 부채라는 소재가 지닌 풍부한 미학적 잠재력을 탐구한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갖는다. 또한 2024년 봄 보화각 조성 발표와 가을 위창 오세창 감식 주제 전시에 이어 간송 컬렉션의 역사적 맥락을 잇는 중요한 행보이기도 하다.

김영욱 전시교육팀장은 앞으로 간송 컬렉션에 대해 “2026년 봄과 가을의 전시 주제는 '수장(收藏)'이다. 말 그대로 간송 컬렉션을 가리킨다. 봄 전시 '경성미술구락부'에서 구입한 국보, 보물 및 여러 유물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도자와 서화 두 부분으로 나누어 선보인다. 가을 전시 '상서'에서는 간송 컬렉션을 대표하는 국보, 보물 및 여러 유물들을 오동나무 상자들과 함께 대중에게 최초로 공개할 예정이다. 3개년 도록에 게재한 모든 원고들과 새롭게 발견된 유물 및 자료를 집대성하여 간송 컬렉션의 전모를 살펴볼 수 있는 원고를 도록에 수록하고 순차적으로 학계에 발표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전시는 오는 9일부터 5월 25일까지 간송미술관에서 관람 가능하다. 이번 전시부터는 매일 2회 운영되어 온 사전 도슨트 프로그램을 3회로 확대하여 운영한다.

여성경제신문 최영은 기자 ourcye@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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