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당국의 허수사업자 솎아내기에도
3년 이상 중단된 사업 아직 5GW 달해
적극 사업 의지 가진 진성 사업자 고충
그물망 피하는 사각지대 규제 개선 절실

정부가 재생에너지 보급을 확대하기 위해 인허가 기준을 완화한 틈을 타 전력망을 선점만 하고 사업을 이행하지 않는 이른바 ‘알 박기’ 편법 사업자가 속출하고 있다. 적극적인 사업 의지를 가진 진성 사업자들만 어려움을 겪고 있다.
뒤늦게 전력 당국이 솎아내기에 돌입했지만 이미 선착순 방식으로 접속 신청을 내고 사실상 기득권을 행사하는 물량이 적지 않아 탄소중립 목표설정과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상향 조정으로 다급해진 재생에너지 확충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2일 여성경제신문이 산업통상자원부(이하 산업부)에 문의한 결과 지난해 전국에 전력계통만 선점하고 장기간 발전사업을 추진하지 않는 전력망 알 박기 물량은 1.6GW 이상에 달했다.
현재 발전설비 송·배전 전기설비 이용 규정에 따르면 최대 송전용량 기준 20MW 이하 사업은 22.9kV 배전선로, 20MW 초과 500MW 이하는 154kV 송전선로, 500MW 초과 1000MW 이하 사업은 154kV나 345kV 송전선로에 각각 접속할 수 있다.
다만 한전은 불가피하게 발전사업 용량에 맞는 접속점(Bay)이 없는 상황을 감안해 ‘고객이 희망하고, 계통 여건상 문제점이 없을 경우 상위(154kV나 345kV) 전압에 접속할 수 있다’는 예외 조항을 두고 있다. 계통용량 선점을 노린 소규모 사업자의 알 박기가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에 산업부는 용량만 차지하고 있던 태양광, 풍력, 연료전지 허수 사업자들을 솎아내기 위해 사업 준비 기간이 만료돼 취소 요건에 해당하는 사업들을 취소 처분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해당 계통 접속 물량은 연결한 계통망이 없어 대기 중인 발전사업자에 우선 배분하고 남은 용량은 신청 발전사업자에도 배정해 줬다”며 “무한정 접속을 대기하던 발전 사업자들에게 기회가 주어져 적체 물량이 해소되고 재생에너지 설치량을 제고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입지 제약을 받는 화력발전, 원자력발전 등 전통에너지와 다르게 햇빛, 바람, 물 등을 연료를 사용하는 재생에너지는 수요지와 가까운 지역에서 소규모로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분산형 전원이다.
다만 한국은 재생에너지 보급이 이미 호남과 영남 등 남부권에 집중되고 있어 전국의 해안과 중부 이남에서 생산한 전력을 수도권으로 이송하는 전력망 구축이 발전소 건설 못지않게 중요한 상황이다.
정부는 ‘제10차 장기 송변전 설비계획’을 통해 2036년까지 전력망 투자에 56조원을 투입하겠다는 계획이지만 수용성 저하고 적기 건설이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아직 전력망 구축이 빈약한데 전력망을 선점하고 실제 발전사업을 하지 않는 허수 사업자가 많아지게 되면 재생에너지 보급 속도를 더디게 만드는 요소가 된다.
산업부가 솎아내기를 하고 있음에도 아직 알 박기 사업자 비중은 해소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산업부에 따르면 발전 사업 허가를 취득하고도 3년 이상 사업을 추진하지 않는 해상풍력 프로젝트 규모는 5GW를 웃돈다. 원전 5기 규모와 맞먹는 수준이다.
이 중 다수 프로젝트가 발전 사업 허가를 받고도 환경영향평가를 비롯한 다음 인허가 절차를 밟고 있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발전 사업 허가를 받을 경우 사용하게 될 계통 용량을 분배받기 때문에 사업을 추진하지 않으면 허수로 계통만 차지하게 된다. 이들로 인해 적극적인 투자 의지를 가진 진성 사업자들이 시장 진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업자 중 다수는 해상풍력 단지의 부동산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발전 사업 허가를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공유수면 점사용 허가 이후 단지 개발권에 웃돈을 얹어 매각하는 수법으로 큰 차익을 남긴 사례가 다수 있었기 때문에 이를 노린 가성 사업자들이 다수 시장에 참여한 것이다.
정부는 2023년 발전 사업 세부 허가 기준을 통해 발전사업자의 역량 기준을 강화했지만 기준 강화 이전에 발전 사업 허가를 받은 용량이 전체의 65%에 달해 실상 규제가 적용되지 않는 사각지대라는 비판이 나온다.
한 전력 업계 전문가는 “계통의 문제는 실제 여유 용량이 부족하기도 하지만 이와 같은 허수로 인해 더욱 부풀려진 측면도 있다”며 “사업 추진이 늦어지는 현장은 계통 접속 순위를 후순위로 미루든지, 일정 부분 사업을 착수하고 재논의하는 등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성경제신문 유준상 기자 lostem_bass@seoulmedi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