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정서적 안정 위한 공공 돌봄 인형
지자체서 대여·계약 종료 후 회수하는 식
어르신 상실감 커···지속 가능한 돌봄 돼야
사람 중심 관계·과학적 관리 체계 구축 必

더운 날씨가 이어진 지난 2023년 7월 종로구 쪽방촌에 한 노인이 방 안에서 선풍기를 튼 채 앉아 있다. /연합뉴스
더운 날씨가 이어진 지난 2023년 7월 종로구 쪽방촌에 한 노인이 방 안에서 선풍기를 튼 채 앉아 있다. /연합뉴스

“내 인형 돌려주세요. 희순이 없이 어떻게 살라고.” 전남에서 홀로 거주하는 80세 김모 씨는 눈물을 보이며 호소했다. 지자체에서 보급된 AI 돌봄 인형 ‘희순이’와 정든 지 어느덧 3년. 대여 기간이 종료돼 인형은 회수됐다. 유일한 말벗이 사라지고 김씨의 외로움은 2배가 됐다.

노인의 정서적 안정과 치매 예방을 위해 보급되는 공공 AI 돌봄 인형이 오히려 ‘줬다 뺏는’ 사업으로 상실감을 안긴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여 기간 종료 후 인형 회수 과정에서 정서적 의존도가 높았던 어르신들이 큰 심리적 공백을 겪는 것이다.

5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지자체에서 보급하는 공공 돌봄 인형 사업은 대부분 약 3년 단위의 단기 계약으로 운영된다. 계약 종료 후 회수하는 방식으로 ‘보여주기식 성과’에 집중한 돌봄 정책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공공 돌봄 인형 사업은 치매 예방과 정서적 지원을 위해 지자체별로 다양한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고령화율이 높거나 돌봄 사각지대가 발생하기 쉬운 지역은 특히 돌봄 인형이 고립감 해소에 효과적일 것으로 기대된다. 전북특별자치도는 도내 14개 시군의 치매 노인들을 대상으로 AI 돌봄 인형을 보급해 사회적 고립 해소와 정서적 건강 증진을 목표로 하고 있다. 홍성군 등도 독거노인 및 경증 치매 환자를 대상으로 비대면 정서 지원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충북 괴산군에 거주하는 한 어르신이 AI 돌봄 로봇을 보급받아 사용하고 있다. /미스터마인드
충북 괴산군에 거주하는 한 어르신이 AI 돌봄 로봇을 보급받아 사용하고 있다. /미스터마인드

다만 이러한 사업들은 대부분 단기 계약 후 인형을 회수하는 구조로 운영돼 사업 종료 후 어르신들에게 상실감을 유발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수도권 A 치매안심센터 관계자는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지자체 지원으로 보급되는 돌봄 인형은 대부분 3년 정도의 단기 계약 후 회수하는 방식”이라며 “어르신들이 인형에 옷을 뜨개질해 입히고 이름까지 지어주는 데 몇 년 뒤 예산이 끝났다고 인형을 회수하면 어르신들이 울며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 처음부터 대여 사업으로 기획된 만큼 회수는 불가피하다. 이 과정에서 어르신들이 겪는 정서적 상처가 크다”라고 지적했다.

사업의 구조적 한계로는 단기성 예산 편성과 성과 중심 행정이 꼽힌다. A 치매안심센터 관계자는 “애초에 지자체가 연속성을 고려하지 않고 단기성 사업으로 예산을 편성했다. 가시적인 성과에 집중해 인형 보급이 이뤄진 후에는 관심이 사라진다”며 “장기적으로 운영되는 돌봄 로봇 사업은 대부분 인형을 구매해 요양시설 등에서 공동으로 사용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또 “개인형 보급 사업은 단가가 높아 지속하기 어렵다. 대여 방식은 예산 대비 홍보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함”이라며 “공공사업은 더 많은 시민이 혜택을 받는 것이 목표다 보니 제한된 예산으로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보급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런 방식은 결국 어르신들에게 상실감만 남기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이 같은 문제에 대해 인형을 공급하는 업체 역시 예산 편성의 한계와 제도적 미비를 원인으로 꼽았다. 익명을 요구한 B 돌봄 로봇 기업 대표는 여성경제신문에 “지자체가 예산만 편성하면 사업 지속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관리 부담 등을 이유로 예산 편성이 적극적으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조례 제정이 필요하다. 현재 경기도와 전라남도에서 도의원들과 함께 관련 조례를 마련 중”이라며 “조례가 제정되면 대여·구매 관계없이 사업이 의무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 현재 전국 시군구당 평균 3000명의 어르신 중 10%도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조례를 통해 일정 비율 이상의 어르신이 디지털 기기를 활용한 돌봄 서비스를 받도록 하면 지속성이 강화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업의 단기성 운영에는 정부의 예산 삭감도 영향을 미쳤다. B 기업 대표는 “보건복지 분야 예산이 상당히 많이 줄어들었고 인건비 외에는 사업 예산이 거의 배정되지 않았다”며 “지역 보건소나 치매안심센터 같은 보건 전문 기관들이 사업비 부족으로 돌봄 인형 사업을 지속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지속 가능한 돌봄을 위해 사람 중심의 관계망 구축과 과학적 관리 체계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A 치매안심센터 관계자는 “돌봄의 본질은 사람 간의 관계다. 로봇은 어디까지나 보조 매개체일 뿐 사람을 대체할 수 없다”며 “서로 이웃 간 안부를 확인하고 관심을 나누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돌봄 방식”이라고 했다.

B 기업 대표는 “초고령화 시대에는 예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국내 보건복지는 치료 위주의 사업이 중심으로, 선진국과는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사람 위주의 대면 사업에서 인공지능 돌봄 로봇 및 디지털 센서 등의 스마트 기계를 통해 이상징후를 조기에 발견·대응하는 보건복지 사업으로 전환해야 많은 인원을 적은 비용으로, 과학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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