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영의 부국강병]
모험하고 도전하는 스페인인이 정복하고
실용적이고 정직한 독일인들이 발전 이뤄
칠레는 한국의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나라이다. 남북으로 4300km, 동서의 폭 평균 175km로 세계에서 가장 길쭉한 나라이다. 서로는 남태평양, 동으로는 안데스산맥이다. 칠레는 마푸체 원주민어로 ‘땅끝’이라는 뜻으로 남극해까지 길게 늘어진 탓에 그들은 세상의 끝으로 믿었다.
칠레는 안데스 산맥이라는 자연 장애물 탓에 남미에서 가장 늦게 스페인 정복자들이 찾았다. 제일 먼저 발을 디딘 것은 세계 최초로 세계를 일주한 마젤란이다. 1519년 9월 20일, 5척의 배에 270명의 선원을 태운 마젤란이 스페인 세비야를 출발한다.

대서양을 끼고 위에서 아래로 남미를 탐험하다가 1520년 10월 그 끝에 있는 좁고 험한 해협을 통과한다. 그곳이 마젤란 해협이다. 1540년 잉카제국의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Francisco Pizarro)의 부관, 페드로 데 발디비아(Pedro de Valdivia)가 칠레를 정복하고 1541년 2월 12일 산티아고 시를 건설한다.
칠레 국토 면적은 한반도의 약 3.4배에 인구는 2000만명에 조금 못 미친다. 1인당 GNP는 1만5000달러로 남미 국가 중 최상위에 속한다. 남미의 대국 브라질이 약 9000달러, 아르헨티나가 1만2000달러 정도이다. 우루과이가 더 부유하나 인구 300만명으로 비교 가치가 없다.
이런 칠레가 남미 경제의 최강자이다. 예를 들면, 칠레 국적 항공기 라탐(LATAM)이 남미 항공노선의 최고 점유율을 자랑한다. 나머지는 미국 항공사와 콜롬비아의 아비앙카(Avianca)가 조금씩 나누어 점유한다.
칠레 경제가 강한 이유는 다른 남미국가와 달리 상대적으로 많은 독일계 이민자(약 50만명으로 추산)가 실용적인 독일 DNA를 칠레에 접목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유력한 설이다.

1818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 후, 19세기 초에 칠레는 독일에 이민 사무국을 설치한다. 우수한 인종만을 위한 선택적 이민정책을 실시한 것이다. 이때 농부, 상인, 장인이었던 독일인들이 들어와 칠레 남부를 개척한다. 발디비아(Valdivia)와 오소르노(Osorno)에서 그들의 신기술과 노하우로 칠레의 초기 농업과 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지금도 그 지역은 독일풍의 건축물에 독일어를 쓰는 후손들이 많다.
새로운 땅에 정착한 독일인들은 “우리는 이 땅에서 가장 정직하고 근면한 사람들이 될 것이며 새로운 국민들의 대열에 합류하여 이 나라를 지키고 외국(스페인)의 모든 억압에 맞서 싸울 것”이라고 각오를 밝힌다.
남미 정치와 재계 권력은 소수의 백인이 독점하고 있다. 인디오와의 혼혈 메스티소(Mestizo)와 흑인과의 혼혈 물라토(Mulato)는 사회적 계층의 중하층에 있다. 이런 탓에 남미는 빈부 격차가 매우 심하다.
칠레가 남미 경제의 강자가 된 이유는 또 있다. 무엇보다도 먼저, 정치적인 안정을 들 수 있다. 다른 남미국가가 독재정치에 오랫동안 시달렸는데 반해 칠레는 피노체트 이후 민주적인 정치체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다음은 시장경제 체제에 뿌리를 두고 기업 친화적인 경제개혁이 성공, 많은 외국인 투자를 유치했다.
또 변동환율제, 재정건전성, 낮은 인플레율 등 거시경제 시스템이 개방적이고 건강하다. 천연자원도 풍부하다. 구리와 리튬 매장량이 세계 1~2위를 다툰다. 여기에 더하여 농업, 임산물, 관광산업도 활성화하여 다방면으로 경제발전을 추구하였다

교육과 인적 인프라 확충으로 숙련 노동자를 양성하여 외국인 투자 유치와 경제성장의 동력으로 삼았다. 대부분 남미국가가 미국과의 교역에 치중하였으나, 칠레는 한중일 등 아시아 국가와 자유무역 협정을 체결하여 무역 장벽을 낮추고 경제 활성화를 하는 남다른 선택을 하였다.
한국과는 2002년 자유무역 협정을 체결했다. 한국의 칠레 주요 수입품은 구리 등 광물, 펄프, 돼지고기와 포도이다. 대 칠레 수출품은 자동차와 기계류가 대종을 이룬다.
최근에는 전기차 소재인 2차전지 핵심 광물인 리튬 광산 개발을 위해 우리 기업들이 칠레와의 자원개발에 열심이다. 칠레는 북쪽 아타카마 사막이 있으나, 남쪽은 호수, 빙하와 피오르가 있는 매우 아름다운 나라이다.
500년 전 스페인의 선조들은 열정적인 민족이었다. 돛단배 같은 배를 타고 험한 바다에 목숨을 걸고 미지의 세계를 찾아 탐험했다. 그리하여 그 큰 땅 남미대륙을 정복했다. 비슷한 시기의 한반도는 어땠을까.
선조가 임금이었다. 지배계층은 사림과 훈구로 나뉘어서 1년상, 3년상 하며 공허한 논쟁과 당쟁으로 밤낮으로 허송세월하고 있었다. 이런 탓에 왜적이 침입하자 힘 한번 못 쓰고, 임금은 백성들을 버리고 압록강 변까지 도망, 일신의 안위를 지키기에 급급하였다. 그 얼마 후 그의 손자인 인조는 청 태종 누르하치에게 삼전도의 굴욕을 당했다.
21세기의 한국인들, 정신 차리자. 먼 곳이지만 용맹스러운 스페니어드들이 500년 전에 개척한 땅을 한번 가보기를 바란다. 얼마나 광활하고 풍요로운지 느껴질 것이다. 도전하지 못하고 모험하지 못하는 민족은 예외 없이 남의 지배를 받고 살 수밖에 없다.
그것이 역사가 증명하는 냉엄한 현실이다. 강하고 담대한 민족으로 거듭나야 하는 이유이다. 남의 나라를 정복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사실은 조금도 자랑할 일이 못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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