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른골트의 '죽음의 도시'
국립오페라단 5월 23~26일
<죽음의 도시>는 로덴바흐의 소설 <죽음의 브뤼주>를 원작으로 1920년에 초연한 작품이다. 3막 오페라이며 아름다운 멜로디와 거대한 오케스트라가 뿜어내는 장대한 연주가 돋보인다.
<죽음의 도시>를 작곡할 당시는 12음 기법과 무조음악 등 난해한 현대음악이 유행하던 시기였고, 오페라도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살로메>와 <엘렉트라> 등이 비평가들의 찬사를 누리고 있었다. 하지만 괴기하기까지 한 그들의 음악에 청중은 등을 돌렸고, 청중의 변심을 눈치챈 코른골트는 신음악에 동참하지 않고 <죽음의 도시>에 편하고 아름다운 느낌의 선율을 담았다.
이번 공연에서 드라마투르그를 맡아 휴일도 반납하고 준비에 여념 없는 이용숙 씨를 예술의 전당에서 만났다. 그는 학업을 위해 유학한 독일에서 '오페라와 바람’을 피우고, 결국 서울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연구에 천착하는 국내 몇 안 되는 오페라 전문 연구자다. (이 인터뷰에는 작품에 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음 : 편집자 주)
—‘드라마투르그’란 어떤 역할을 하는가.
“드라마투르그는 대개 세 가지 역할을 하게 된다. 우선, 연출자를 도와 공연의 콘셉트를 설정한다. 그다음 가수와 스태프들에게 작품의 정보를 제공한다. 마지막으로 제작자와 관객 사이의 소통을 돕는 역할을 한다.”
그는 공연의 조력자일 뿐이라며 극히 조심스러워했지만, 이번 공연처럼 지휘자와 연출자가 외국인인 경우에는 더욱 드라마투르그의 역할이 막중하다. 국내 관례에 낯선 연출자에 대해 한국문화의 특수성을 세밀히 설명하고 연출자와 출연진의 의견을 서로에게 전하고 중재하는 것은 물론 국내 가수의 딕션(발음) 교정에도 관여한다. 관객을 위해 공연의 정확한 시놉시스(개요)를 제공하는 것도 그의 역할이며, 심지어 공연 전에 관객들에게 직접 작품 설명에 나서는 것도 그의 몫이다.

—낯선 작곡가의 초연 작품이라 독자들은 스토리가 궁금할 것 같다.
“이 오페라는 죽은 아내인 마리를 그리워하며 과거 속에서 살아가는 주인공 파울의 이야기다. 종교심이 강한 그는 아내가 죽은 후 그녀가 남긴 머리채를 간직한다. 몸은 썩어도 머리카락은 남지 않는가? 파울의 친구 프랑크가 오랜만에 그를 방문하자 파울은 그에게 죽은 마리와 꼭 닮은 여성을 봤다고 말한다. 파울은 서서히 현실인 듯 환각인 듯 그녀에게 빠져들고 죽은 아내와 닮은 마리에타가 집에 나타난다.
그녀는 그 집에서 마리의 초상화를 발견하고, 자신이 마리와 꼭 닮았다는 사실에 놀란다. 마리에타가 자신이 출연하는 극중극을 연습하기 위해 유랑극장으로 떠난 후, 죽은 부인의 환영을 본 파울은 마리를 향한 일편단심과 마리에타를 향한 욕망 사이에서 갈등한다.”
—전 부인이 죽은 뒤에도 그녀를 잊지 못하는 순정남의 이야기이고, 파울이 조금 갈등은 하지만 아직은 제정신인 것 같다.
“마음을 놓지는 말라. 잔잔하게 진행되던 극이 무용수인 마리에타가 나타나면서 긴장이 흐른다. 그리고 그가 제정신인지 환각에 빠졌는지는 공연이 끝나야 알게 된다.”
—2막에서는 파울이 마리에타를 사랑하게 되는가.
“아내 외에 다른 여자는 거들떠보지 않겠다던 파울은 마리에타의 추파를 받아들인다. 그러면서도 그녀를 사랑한 적이 없으며 오직 자기에겐 마리뿐이라며 그녀를 외면한다. 이에 마리에타는 더더욱 육체를 들이밀며 파울을 유혹하여 그의 마음을 얻고자 한다. 마리에타는 마리의 혼령을 이길 작정으로 그의 집에 들어가 정사를 나누고, 결국 파울은 마리에타를 받아들이며 두 사람의 긴장은 클라이맥스로 치닫는다. 이 장면에서 웅장한 음악이 연주되며 그 둘의 영혼이 결합하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결국 남자의 순정이 무너졌단 말인가. 그를 잡아줄 강한 버팀목이 있을 것 같은데…
“3막에 반전이 있다. 파울이 ‘성체성혈대축일’의 전례를 행하는 문밖 퍼레이드를 보는데, 수십 명의 대합창단이 등장하는 그 엄숙한 행렬이 집안으로 이어진다. 행렬이 집으로 들어오다니? 이 장면에서 관객은 그가 환각 상태임을 눈치챌 수 있다.
엄숙한 종교적 기운에 감동하여 파울은 무릎을 꿇는다. 마리에타가 그를 다시 유혹하려고 하지만, 이는 양심의 가책을 느껴 괴로워하는 파울의 의지를 더욱 공고히 할 뿐이다. 그러자 이를 본 마리에타는 그의 미신을 조롱하고, 위선을 비난한다. 그리고 비웃기라도 하듯 그가 쥐고 있는 마리의 머리채를 가로챈다. 격노한 파울은 다시 그 머리채를 빼앗아 그것으로 마리에타의 목을 졸라 죽인다.”
—파울은 끝내 마리에타를 죽여 옛 부인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지키는가.
“결정적인 반전이 있다. 파울이 정신을 차리자, 마리에타의 시체는 보이지 않고 마리의 머리채는 있던 자리에 그대로 놓여있다. 마리에타를 죽인 파울은 당황스럽다. 그때 마리에타가 파울이 선물한 장미꽃과 우산을 깜박했다며 그것을 가지러 집에 돌아온다. 이제 관객은 마리에타가 나타날 때부터 그녀를 죽이는 순간까지, 모든 것이 파울의 꿈 또는 뇌피셜임을 알아차릴 수 있다.
환상에서 빠져나온 파울은 죽은 이와의 재결합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친구 프랑크는 파울에게 함께 이 도시를 떠나 여행하자고 제안한다. 파울은 이 죽음의 도시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연출자 샤바스는 기자와 서면 인터뷰에서 이 오페라가 ‘시네마틱 오페라’라며 영화 같은 장면들을 소개하던데, 이렇게 흥미로운 작품이 왜 국내에서 초연인가.
“이 작품이 아름다운 음악의 오페라임에도 성악가들에게 고음과 체력이 요구되는 매우 어려운 작품이기 때문이다.”
-공연 전까지 만 5주 동안 공연 준비에 여념이 없으신데, 애로사항이나 보람을 느끼는 점을 밝혀달라.
“국내외 출연진 및 제작진 간에 문화적 차이로 오해가 발생하거나 감정적 충돌이 있을 때 힘들기도 하지만 어려운 작품이나 한국 초연 작품 공연 시 사전 강의나 프로그램 북 원고를 통해 관객의 작품 이해를 도울 때 보람을 느낀다.”
스토리를 모르고 공연을 본다면 파울의 정신세계를 따라가기 힘들 것 같은 작품이다. 차라리 이 기사를 스포일러 삼아 독자가 내용을 알고 본다면, 현실로 돌아온 파울이 망연자실한 상태로 문을 나서는 장면에 관객의 시선이 한참이나 머물 것 같다. 마침내 사랑하는 이와 영원히 이별하는 것이 아닌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