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연출가의 섬세한 무대
다양한 음악 오케스트라 압권

국립오페라단은 코른골트의 <죽음의 도시>를 예술의 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5월 23일부터 26일까지 국내 초연한다. 국립오페라단 최상호 단장은 이 작품을 ‘한 편의 아름다운 영화 같은 오페라’라고 추천했다. 비교 감상을 위해 23일과 24일의 더블캐스팅 첫 공연을 모두 관람했다.

죽은 아내의 옷, 신발 그리고 머리 타래에 집착하는 파울의 모습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죽은 아내의 옷, 신발 그리고 머리 타래에 집착하는 파울의 모습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연출자(줄리앙 샤바스)의 무대는 에곤 실레의 작품 '죽은 도시, 또는 푸른 강변의 도시’(1911)처럼 무겁고 창백하다. 무대 위 여기저기에 주인공 파울의 죽은 아내가 남긴 머리 타래와 옷들이 있고, 쇼윈도 부스에는 그녀의 옷을 걸친 마네킹과 구두, 부츠 등을 진열해 놓았다. 이는 현실과 꿈을 오가는 주인공의 상황을 상징하는데 죽은 아내를 잊지 못하고 그녀를 그리워하는 남자가 죽음과 삶 사이의 경계를 헤매는 것으로 보였다.

긴장을 시키되 암울하거나 무겁지 않은 전주가 짧게 흐르고 막이 올랐다. 파울이 친구 프랑크와 대화하는 1막의 전반부는 다소 밋밋했고, 마리에타가 등장하면서 긴장도가 서서히 높아졌다.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가 연주한 음악(로타 쾨닉스 지휘)은 무대 위 출연진의 동선과 호흡을 이끌었다. 지휘자는 무대 위의 가수들과 꽁냥꽁냥 소곤거리듯 눈짓을 주고받으며 리드했다. 때로는 감미로운 서정미로, 때로는 격정의 폭풍우가 몰아치듯 연주하는데 특히 금관악기의 울림이 좋았다. 

섬세한 지휘를 들려준 로타 쾨닉스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섬세한 지휘를 들려준 로타 쾨닉스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기자와 서면 인터뷰에서 연출자는 시네마틱 오페라인 이 작품에서 영화화하기 좋은 장면은 1막 마지막 장면이라고 했다. 그의 말처럼 아내를 닮은 미모의 무용수를 만나 흔들리는 주인공의 머릿속을 보여주듯이 죽은 부인의 목소리가 들리고, 부스 속의 마네킹이 살아나 파울과 대화하는 장면도 연출했다. 마네킹인 줄 알았는데 움직이는 것을 보고 일부 관객들이 깜짝 놀랐는데, 영화 같은 장면을 연출해서 보는 재미를 주었다. 

마리에타(소프라노)역의 레이첼 니콜스의 노래는 안정적이었다. 폭발하는 듯한 성량으로 무대를 오가며 지침 없이 노래했다. 다만 파울을 유혹하는 관능의 장면에서는 오히려 달달한 가창력이 필요했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오미선의 마리에타는 이 오페라의 대표 명곡인 ‘마리에타의 노래’를 조금 더 서정미를 담아 불렀다. 특히 그가 밑바닥에서 멸시와 모멸을 받은 과거사를 애절하게 노래할 때는 더욱 가슴을 울렸다.

환상에 사로잡혀 죽은 전 부인을 닮은 마리에타를 사랑하기도 하는 파울 역(테너)의 로베르토 사카는 흔들림 없이 시원한 가창력을 보여주었다. 기교 없는 발성으로 고음을 부르며 파울의 고뇌와 번민을 표현했다. 외국인 두 주역 모두 공연 시작 5주 전부터 입국하여 연습했다고 하는데, 전 출연진과의 호흡도 자연스러웠다.  

죽은 부인의 환영과 현실의 여인 사이에 선 남자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죽은 부인의 환영과 현실의 여인 사이에 선 남자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프랑크 역의 양준모(바리톤)가 특유의 매력인 저음으로 부른 아리아 '나의 갈망이여, 나의 망상이여'는 묵직한 감동을 주었다. 잠시 출연하지만 임은경(브리기타)도 존재감을 뽐냈으며 마네킹 모습으로 쇼윈도 부스 안에서 그리고 무대 위에서 다양한 동작으로 죽은 부인 역할을 한 김채희도 관객의 큰 박수를 받았다.

이 작품은 1차 세계대전으로 전쟁의 상흔을 간직한 사람들이 아픔을 딛고 일어서 현실의 삶을 영위하도록 용기와 희망을 준 작품이다.

작품의 진짜 메시지는 파울의 마지막 가사에 응축되어 전해진다. “내 진실한 사랑이여, 이제는 안녕. 삶과 죽음의 세계는 갈라져 있어.” 사랑하는 이를 먼저 보내고 남은 사람들. 차마 꿈에서라도 잊을까마는 그래도 예술로써 남은 이들을 격려하여 현실을 살게 한 것이다. 오히려 ‘죽음의 도시’는 백 수십명의 젊은이가 죽었음에도 책임지는 자 하나 없고 제대로 위로도 받지 못하는, 지금 우리가 사는 이곳이 아닐까?

화창한 날씨와 어울리지 않는 제목의 작품이었으나 음악만큼은 너무나 아름답고 힘을 주는 작품이었다. 국립오페라단이 올해 여러 가지 시도를 하며 우리 사회 오페라의 스펙트럼을 넓히고 있어 다음 작품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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