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의 탁구야! 놀자 ]
개 때문에 달리기를 잘하게 된 시골 소녀가
어렵게 대학을 졸업, 서울 특별 시민이 되다
특별시는 나를 여러 면에서 업그레이드했다
(지난 회에서 이어짐)
지난 회에 어린 시절 시골에서 자전거 타기와 줄넘기, 개헤엄을 치고 놀았던 일들을 말하면서 끝부분에 재미난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하겠다고 했다. 그 에피소드는 달리기에 관한 것이다. 난 달리기를 잘했다. 누가 가르쳐 주었느냐고? No. 그런데 어떻게 달리기를 잘하게 되었느냐고?
내가 자란 시골에는 개를 기르는 집들이 많았다. 집에서 묶어놓고 기르기도 하지만 집 밖에서 놀다가 어두워지면 확실하게 제 집을 찾아오는 개의 영특함 때문에 풀어놓고 키우는 집도 있었다. (지금처럼 방 안에서 키우는 애완동물이 아니라 낯선 방문객을 정확히 알려주는 알림이 역할로 마당 한 귀퉁이에 묶어두고 키웠다.)
가끔 귀갓길에, 논밭으로 일하러 나가는 주인 옆에서 발맞추어 동행하는 개를 마주치곤 했다. 그럴 때면 몸을 웅크리고 서서 개가 지나갈 때까지 서 있었다. 짧은 순간, 꽉 쥔 두 손에서 땀이 날 정도로 나는 개를 무서워했다. 아주 무서워했다. 시커먼 털도 무섭고 검은 눈도 무섭고 빤히 쳐다보면서 으르렁거리는 그 소리를 들으면 뒤로 자빠질 정도로 무서웠다. 그런데 그 무서운 개를 나 홀로 하굣길에 만난 것이다.
어디서? 우리 집에서 족히 2km나 떨어진 공동묘지 입구에서. 순간 머리가 쭈뼛 섰다.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공동묘지라는 그 섬뜩한 장소도 무서운데 엎친 데 덮친 격도 유분수지, 거기서 시커먼 개를 만났으니···.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삼십육계 줄행랑이었다. 뭘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온 힘을 다해 도망을 쳤다. 그놈의 개도 나와 동시에 달리기를 시작했다. 나는 개가 무서워 도망가기 위해 뛰었고, 그 개는 뛰는 나를 따라잡으려고 뛰었다. 둘 다 필사적으로 뛰었다.

숨을 헉헉거리며 뒤돌아보면 시커먼 개가 바로 내 엉덩이 뒤에서 헐떡거리며 따라오고 있었다.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였다. 나는 직선으로 뛰다가 지그재그로 뛰다가 다시 직선으로 뛰었다. 내가 뛰는 코스 그대로 개도 따라 뛰었다. 나는 두 발로 개는 네 발로. 컹컹거리는 소리가 가까이 들리면 발이 땅에 닿지 않을 정도로 정신없이 내달렸다.
그것이 원인이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나는 달리기 선수가 되었다. 초등학교 운동회 때 달리기 출발선에서 '탕' 총소리가 나면 내 머리에는 그 개가 떠올랐다. 그놈의 개 생각만 하면 발이 어찌나 빨리 움직이던지···. 내가 매일 하굣길에 검은 개를 만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올림픽 경기장 단상 위에 올라 애국가를 들으면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떨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우사인 볼트도 이런 경험이 있어서 세계적인 육상 선수가 되지 않았을까?
각설하고, 나는 시골에서 중학교까지 졸업하고 고등학교는 조그마한 소도시에서 자취 생활을 했다. 대학교는 우여곡절 끝에 광역시까지 진출했지만, 공부와 아르바이트로 바쁘게 지냈다. 가난한 시골 출신의 나는 한 학기가 끝날 때마다 다음 학기 등록금을 어떻게 마련할 수 있을까? 그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했다.
친구들은 미팅도 하고 삼삼오오 짝을 지어 놀러도 가고 나이트클럽에 춤도 추러 갔지만 난 오로지 학교, 일터, 학교, 일터를 오가는 생활을 반복했다. 스스로 걷기 어려운 지체 장애 학생 귀갓길을 동행하면서 학비를 벌었고, 그리 유명하지 않은 서예가의 작품을 팔기도 했다. 방학 때는 번잡한 사거리에서 교통안전 캠페인을 했다.
대학 생활 4년 동안 내가 한 운동이라곤 힘들 때마다 깊게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뱉는 호흡 운동과 아르바이트로 이리저리 바쁘게 뛰어다닌 것 정도였다. 가끔 성적우수장학금으로 학비를 감당하며 용케 4년 만에 대학교를 졸업했다. 그리고, 취업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서울특별시 교육공무원이 되었다.
그때 직장에서 만난 나의 상사는 고향이 어디냐고 묻더니 “개천에서 용 났네”라고 했다. 맞다. 개천에서 물장구치고 물고기 잡던 어린 소녀는 어엿한 숙녀가 되어 굽 높은 구두를 신고 서울특별시를 활보하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도시인 서울특별시. 서울특별시는 하루하루가 흥분의 도가니였다. 이제껏 접해 보지 못한 다양한 문화, 화려한 사람들, 봐도 봐도 처음 보는 다양한 물건, 등등. 그중에서도 나를 놀라게 한 으뜸은, 문화적 충격이었다.
(다음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