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진 성과 보상 10년 늘려온 게 핵심
국내 빌드업 정책은 백화점식 짜집기

윤석열 정부가 올해 들어 추진 중인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프로그램)이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근본 원인은 기업의 낮은 수익성과 성장성인데 백화점 식으로 외국 제도를 차용한 나머지 본질을 놓쳤다는 것이다.
25일 재계에 따르면 정부가 지난 2월 26일 발표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은 일본·미국·독일·홍공·싱가포르의 사례를 벤치마크한 것이다.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기업 스스로 수립해 한국거래소에 자율 공시하도록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내용이다.
해외 국가 중 가장 성공적인 일본의 사례는 10년 이상 장기간에 걸쳐 종합적이고 지속적인 노력을 해온 결과다. 반면 금융당국은 외국 제도를 모방하는 과정에서 환경·사회·지배구조(ESG) 등 비재무적 요소가 자기자본이익률(ROE) 등 기업가치를 높인다는 실증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내용을 대거 끌어다썼다.
강원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국민연금 등) 투자기관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통해 어떻게 기업이 ROE를 높이는데 도움을 줄지 불투명하다"며 "ROE 제고를 위해 더욱 중요한 것은 기업이 제대로 투자와 영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일본의 성공 사례에 대한 이해도도 부족했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분석에 따르면 일본 정부가 2014년 일본재흥(再興)전략을 마련할 당시 기업 임원에 대한 공격적 경영을 주문하고 기업법제 정비를 병행한 것이 금융·자본시장 활성화에 실질적으로 기여했다.
지난 2012년 12월 출범한 일본의 아베정권은 아베노믹스 일환으로 2013년 6월 14일 일본재흥(再興)전략(JAPAN is BACK)을 발표하며 경제성장을 위한 산업경쟁력 강화와 새로운 시장 창조 및 해외진출 촉진을 위한 전략과 시책방향을 제시했다.
일본 정부는 기존 고정형 금전 보수 체계가 아닌 주식 보수를 권장하는 동시에 2016년과 2017년 세법 개정으로 모든 주식 보수에 대해 ‘손금 산입’을 인정했다. 이 결과 도쿄증권거래소 프라임시장 상장회사의 31% 정도가 임원에게 중장기 실적 향상을 위한 인센티브를 부여할 목적으로 자사 주식을 교부하는 양도제한조건부주식(RSU)을 도입하기에 이르렀다.
이와 함께 회사법을 개정해 '주식무상발행제도'를 도입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성과 보상 수단으로 주식을 부여하는 경우 이를 위해 자기주식을 취득해 교부해야만 하는 한국과 달리, 일본은 회사가 직접 신주를 발행해 임원에게 교부할 수 있게 했다.
BOJ-연기금까지 증시부양 나선 日
한국은 지배구조와 분배에만 집착
잃어버린 20년에 빠진 일본 경제가 성장동력을 되찾아 부흥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성장이 먼저이고 그 결과가 주가 상승으로 이어진다는 판단에 프로그램명도 '지속성장 및 중장기 기업가치 향상 노력'이라고 명명했다.
최 교수는 "회사의 성공과 임원 개인의 성공을 연동하는 정책을 펼친 결과 2만선에 머물던 닛케이225지수는 4만선을 돌파했는데, 한국 정부는 밸류업을 앞세우면서도 거꾸로 가는 모습"이라며 "최근 공정거래위원회는 RSU 지급 기업에 공시의무를 부과해 감시를 강화하는 조치를 내놨다. 임직원 성과 보상까지 공정위가 들여다봐 무얼 하려고 하는가"라고 되물었다.
일본 재흥 전략을 주요 내용을 보면 상장기업에 대해 사외이사 도입을 촉진해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도록 하는 조치도 포함돼 있다. 기업경영이 외부에 공개되도록 해 성장분야로의 투자와 채산성이 낮은 사업의 정리 등을 신속히 이뤄지도록 한다는 취지다.

공적연기금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130조엔에 달하는 공적연금을 운용하고 있는 연금적립금관리운용 독립행정법인(GPIF)가 쓰는 단어 가운데 'β(베타) 향상'이라는 말이 있다. 전반적인 시장 전체의 레벨 업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를 목표로 국내주식 보유 규모를 꾸준히 확대했다.
2014년 재흥전략 발표 당시 12% 비중이던 GPIF 투자 국내 주식 비중은 2023년말 기준 24.7%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또 이 같은 국내 주식 투자엔 일본은행(BOJ)까지 참여해 주주가치 제고 경영에 가중치를 둔 ETF를 35~40조엔 가량 매입하며 현재 보유가치가 70조에 달한다고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장은 분석했다.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여성경제신문에 "단순히 해외 경험을 벤치마킹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국적이면서도 기본적인 문제점 해결에 노력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며 "기업들마다 성장이 더 중요한 기업들도 상당히 많은데 밸류업 프로그램을 보면 분배에 초점이 맞춰진 듯해 좀 더 보편적이고 다원적인 프로그램으로의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고 제언했다.
관련기사
- 밸류업 위해 리밸런싱···SK그룹 지정학 리스크 점검 회의
- 與 총선 참패에 87조 적자까지···법인‧상속세 감세 정책 동력 상실
- 장·차관 영입으로 기업 밸류업···임채민 발탁에 삼성생명 11%↑
- '코리아 디스카운트' 없앤다···최상목 “상반기 세제 지원안 확정"
- 저PBR 기업 밸류업 ‘일본은 대성공’ 해운·철강·은행주 ‘68% 빅점프’
- ‘임기 3주 남았는데’ 연금특위 5박 7일 유럽 출장 간다
- 李 소득대체율 44% 전격 수용 역공···진퇴양난 빠진 정부·여당
- 작년 유니콘 탄생 못 시킨 尹···벤처 혁신 저하→잠재성장률 추락
- 부동산 몰린 자금 깨야 기업 밸류업 “가계자산→자본시장 유입이 첫 단추”
- 텍사스에서 승기 올린 머스크의 델라웨어州 왕따 만들기 작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