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보험사들 눈독 들이는 사업 '장기요양'
기존 업계 "무분별한 자본 유입, 질적 하락"
수급자들 "비싸더라도 질 높은 요양원 선호"

KB라이프생명이 운영하는 KB골든라이프케어 강동센터 내부 모습. /KB라이프생명
KB라이프생명이 운영하는 KB골든라이프케어 강동센터 내부 모습. /KB라이프생명

"난 모아둔 돈이 있으니 수백만원이 들더라도 지불하고 민간 보험사가 운영하는 요양원에 입소할 거에요. 그런데 대기자만 수천 명이라네요. 그럴만한 이유가 있으니 입소 지원자가 줄을 섰겠죠."

월 이용료만 200~300만원 수준, 그래도 기꺼이 지불하고 요양 서비스를 받겠다는 입소 대기자가 5000여 명에 달하는 이 요양원은 KB라이프생명이 운영하는 KB골든라이프케어다. 

KB골든라이프케어 관계자는 "서초 지점은 정원이 80명인데 이마저도 꽉 차서 지난해 2072명이 대기자로 등록했다"며 "위례신도시에 위치한 위례 빌리지까지 합치면 대기자만 5000여 명에 이른다"고 했다. 

KB골든라이프케어 서초 지점에 친모를 모신 A 씨는 "일반 요양원에도 가봤지만 인력에서 차이가 났다. 간호인력과 요양보호사뿐만 아니라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사회복지사를 법정 인력보다 충분히 확보했다. 한 달 거주비가 200만~300만원 선이긴 하지만 누구나 입소하고 싶을 만큼 깨끗하고 체계적이었다"고 전했다. 

KB라이프케어를 포함한 민간 기업이 장기요양산업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고령층을 중심으로 장기요양보험의 요양서비스에 대한 관심 높으나 기존 요양시설은 양질의 서비스는 제공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대부분 요양시설은 소규모 개인사업자 중심으로 시설투자나 우수인력 확보가 미흡한 등 서비스 관리에 한계가 있다. 노인 계층 니즈가 변화하고 있으나 이에 부합하는 맞춤형 서비스 제공은 미흡한데 이를 민간 자본이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고 전했다.

민간 보험사 요양원 설립 걸림돌 '임차허용'
정부 "일정 조건 하에 임차 허용 방안 제시"
기존 업계 "영리 수단·투자 대상 변질 우려"

보험 업계의 요양산업 진출을 두고 기존 장기요양 업계는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논란은 지난해 보건복지부가 '제3차 장기요양 기본계획’을 발표하면서 시작됐다. 여기엔 '임차 허용'이란 항목이 포함됐는데, 민간 보험사가 건물 임차를 통해 요양원을 설립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게 골자다.

복지부는 "도심 등 공급이 부족한 일부 지역에 대한 시설 진입제도 개선을 검토하겠다"면서 일정 조건에 임차를 허용하는 방안을 예시로 거론했다. 현행 노인복지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사업자가 직접 토지 및 건물을 소유해야만 10인 이상의 노인요양시설을 설립할 수 있다.

이기일 보건복지부 1차관이 지난해 8월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제3차 장기 요양 기본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기일 보건복지부 1차관이 지난해 8월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제3차 장기 요양 기본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현재도 KB손해보험이 요양 서비스 전문 자회사를 설립해 시설 4곳을 운영하고 있지만 다른 보험사들에는 부동산을 직접 소유해야 한다는 시행규칙이 진입장벽으로 작용하는 상황이다. 규제가 풀리면 사업 진출을 고려하는 업체들이 일부 있다는 것이 손해보험 업계의 관측이다.

하지만 임차 요양원을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정부가 손해보험업계의 요구를 사실상 수용한 것이라고 비판한다. 정부가 민간 기업 자본의 요양시설 설립을 위한 임차 허용을 늘리면 요양원을 영리 수단과 투자 대상으로 만들 것이라는 게 기존 업계의 지적이다.

박원 한국노인장기요양기관협회 회장은 지난 22일 국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장기요양시설 임차허용 위험에 대한 토론회에서 "정부는 노인요양시설 인허가 시 건물 임차를 일부 지역에 허용해 시설 공급을 확대하는 방안을 발표했다"면서 "정부가 폐기한 제도를 도입하게 되면서 보험사 등 금융권이 장기요양에 진입해 산업화, 영리화를 추구하고 사회서비스의 시장화 금융화의 문제가 발생하는 명백한 상황으로 노인들의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이미진 건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장기요양보험시장에서 수익을 극대화하려는 대규모 금융자본은 임차허용 방식으로 손쉽게 요양원을 단기간에 개설 확장할 수 있고 대도시지역에만 시설을 설치하거나 기존 시설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시장지배력을 확대할 것"이라며 "이윤극대화를 추구하는 전략으로 장기적으로 서비스 품질이 저하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보험업계 "자본 통한 질적 개선 기대"

보험 업계에서는 임차 허용을 통해 보험사의 요양업 진출이 확대되면 장기요양서비스 질적 개선, 대도심 요양시설 공급 부족 해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보험사와 같은 대기업 자본이 들어오는 것은 오히려 서비스 질 향상 측면에서 바람직한 일”이라며 “정부가 시장 안정성을 담보할 안전장치를 마련해 책임감 있게 사업하도록 유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건강보험연구원이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장기 요양 서비스 이용자는 2023년 기준 93만 1000여 명에서 2027년 122만 7000여 명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같은 기간 노인 요양시설을 통해 장기요양서비스를 이용하는 인구는 21만 1000여 명에서 27만 8000여 명으로 증가한다.

보고서는 "국내는 요양원의 공급이 부족함에 따라 질 높은 요양 서비스를 제공하는 요양원에 대기자가 몰려서 입소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짚었다. 이어 "한국의 요양원 병상수는 평균 24.8개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하위권"이라며 "선진국들은 불필요한 의료행위를 최소화해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을 높이고자 요양병원보다는 요양원 병상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고 전했다.

2006년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은 요양시설 설립을 위한 토지·건물 소유권 규제가 없다. 따라서 소유와 운영 분리가 가능하다. KB경영연구소의 '일본 보험사의 요양업 진출 동향과 대응 방향' 보고서를 보면 일본 대형보험사인 솜포홀딩스는 주요 요양 사업자 인수 및 자회사 통합을 통해 2016년 업계 2위 규모의 ‘솜포케어’를 설립했다. 시설요양뿐 아니라 재택요양 등 종합적인 요양서비스와 함께, 보험 계열사를 통한 간병보험과 요양 서비스 보험 계열사를 통한 간병보험과 요양 서비스 상담 등 부가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손보홀딩스는 요양 자회사 손보케어(SOMPO Care)를 설립해 현재 매출 2위(1500억 엔, 약 1조 3354억 원), 객실 수(2만8500객실) 전국 1위를 차지했다. 2016년 당시 적자로 시작했으나 입소율 개선 등을 통해 1년 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매출액과 이익도 확대했다. 영업이익률은 6~8% 수준으로 동종업계 평균 이익률(3~5%) 대비 높은 수준이다. 자기자본이익률(ROE)은 지난 2022년 10.7%로 그룹사 연결 ROE(5.5%)를 상회했다.

복지부는 임차 허용이 아직 확정된 방침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다만 규제를 풀더라도 안정성을 보장할 각종 설립 기준 및 장치를 마련하겠단 계획이다. 어린이집, 의료기관 등 다른 사회복지시설도 자금조달계획서를 제출토록 하는 등의 조건에 임차를 허용하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여성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임차 허용은 노인 인구가 빠르게 늘어나는 상황에서 공공이 시설을 확충하기에는 너무 큰 비용이 들어가니 민간 시설을 늘릴 방법으로 검토 중인 사안"이라며 "허용하더라도 일부 지역, 비영리 법인에만 임대 방식을 허용한 일본 등 해외 사례를 면밀히 참고해 시설 난립 우려를 불식시키는 방향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관련 업계를 두루 만나 의견을 청취하겠다"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여성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