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호한 '임종 과정' 판단 기준
병원마다 제도 이행 여부 달라
연명의료 거부 기준도 제한적

국내 최초로 존엄사를 위해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했던 김모 씨. /연합뉴스
국내 최초로 존엄사를 위해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했던 김모 씨. /연합뉴스

"어머니가 요양병원으로 가면 인공호흡기를 달고 누워만 있을 텐데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의료진에게 연명의료 중단을 요청했어요. 하지만 현행법으로는 인공호흡기를 제거할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말기 암이긴 하지만 체온·심장박동 등이 정상이라고, 중환자실에서 나가도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으면 얼마 동안 시간을 더 보낼 수 있다고..그렇게 인공호흡기에만 겨우 의존하다 일주일 지나고 바로 돌아가셨어요."

웰다잉 희망자는 늘고 있지만 국내 '연명의료결정법'은 실제 효력 발휘에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행법은 환자의 '자기 결정권'과 거리가 멀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6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2018년 2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연명 의료결정 제도에선 존엄사의 핵심인 '자기 결정권'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명의료 중단 사례의 90%는 환자의 의사결정 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이뤄지고 있다.

서울대병원 임재준·유신혜 교수 연구팀이 2018~2021년 병원 내 의료기관윤리위원회 임상윤리 지원 서비스에 의뢰된 총 60개 사례를 분석한 결과, 연명의료 중단 의뢰 환자의 66.7%는 임종 과정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다수 사례에서 모호한 임종 과정 판단 기준, 의학적 불확실성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연명의료 중단 의뢰 환자의 90% 이상은 의사결정 능력이 결여된 상태라는 점도 확인됐다. 이들 중 26.7%만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 혹은 연명의료 계획서 등으로 연명의료에 대한 본인 의사를 밝힌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제도는 제3자인 의사가 임종 과정이라고 판단해야 연명의료 중단이 가능하다. 최종범 아주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는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현행법상 의료진 2인 이상이 임종 과정이라고 판단해야하니 연명의료 중단을 위해선 의료진의 의견일치가 필요한 상황이다"라며 "환자 본인이 연명의료 거부 의사를 밝혀도 (의료진들이) '임종 과정'이라고 판단 내리지 않으면 법적 효력이 발동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말기와 임종 과정으로 구분된 현행 법률에 대한 지적이 제기됐다. 말기는 근원적인 회복 가능성이 없고 수개월 이내 사망이 예상된다는 진단이 나온 환자를 말한다. 임종 과정은 회생 가능성이 없고 증상이 악화해 사망이 임박한 상태다. 말기 환자는 호스피스·완화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고 연명의료 계획서를 작성할 수 있지만 연명의료 ‘결정’은 할 수 없다. 연명의료 결정은 임종 환자일 때만 가능하다.

임종 과정에서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고 미리 서약한 사람들이 200만명을 넘어섰다. /연합뉴스
임종 과정에서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고 미리 서약한 사람들이 200만명을 넘어섰다. /연합뉴스

최영숙 대한웰다잉협회 회장은 본지에 "'웰다잉'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관심도도 높아졌지만 관련한 교육은 부족한 상태다"라며 "대부분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면 다 해결되는 줄 알지만 연명 의료결정 제도엔 여러 조건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의사 2명이 '임종 과정'이라고 진단해야 하고, 또 그렇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환자 가족들이 반발한다면 연명의료 계획서는 사실 법적인 효력이 없어진다"며 "임종 과정의 판단 기준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그는 신생아 건강 측정 지표인 '아프가 점수(Apgar score)'를 예로 들며 임종 과정 판단에 대한 체크 리스트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예를 들어 '아프가 점수'는 아기가 태어났을 때 피부색이나 우는 소리 등 평가 기준에 따라 점수를 매긴다. 아주 건강한 신생아는 전체 수치의 합이 10점이고 6점 이하이면 집중 관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등 건강을 측정하는 리스트"라며 "임종 과정에 있다는 판단을 환자 보호자가 충분히 납득할 만한 '객관적인 평가 지표'로 해야 한다. 보호자 입장에선 의사들의 주관적 판단이라고 여길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행법상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는 병원은 '의료기관윤리위원회'가 설치돼 있거나 기관이 설치된 병원과 협력 관계에 있어야 한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도 해당 조건에만 열람할 수 있다.

의료기관윤리위원회는 연명의료의 유보·중단의 결정 및 이행에 관한 업무를 수행한다. 위원회는 연명의료 결정 과정에서 윤리적 문제에 대해 심의·자문·교육·상담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정작 상당수가 임종을 맞는 요양병원 내 위원회 설치 비율은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에 따르면 지난 1월 기준 상급종합병원의 의료기관윤리위원회 등록 비율은 100%지만 종합병원은 61.1%, 요양병원은 9.6%에 그친다.

병원마다 연명의료결정제도의 이행 여부는 다르다. /연합뉴스
병원마다 연명의료결정제도의 이행 여부는 다르다. /연합뉴스

최영숙 회장은 연명의료에 대한 자기 결정권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는 원인 중 하나로 제도 이행에 대한 병원들의 일관성 부재를 말했다. 그는 "요양병원은 연명 의료결정 제도를 이행하지 않는 곳도 많다. 국립병원이 아니라면 병원 입장에서는 환자가 오래 있는 게 경영에 유익하기 때문에 안 하는 곳이 많을 수밖에 없다"라며 "환자 입장에선 '우리 (요양)병원에선 연명 의료결정 제도를 취급하지 않으니 큰 병원 가라'라고 하면 거기서 혼란이 발생한다. 환자가 연명 의료 거부를 사전에 밝혔어도 의식 없는 상태에서 병원을 여기저기 옮겨 다니다 결국 중환자실에서 처치 받는 상황이 발생하는 거다. 의사결정이 지켜지기 힘든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연명 의료를 거부할 수 있는 기준‧범위도 모호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최 회장은 "'영양'은 연명의료(거부)범위에 관여되지 않는다. 환자가 의식도 없고 호흡이 곤란해서 산소마스크를 달고 있는 상황에도 영양은 공급해야 한다"며 "유연한 제도 이행을 위해 전반적으로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연명 의료결정 제도가 시행된 지 이제 5~6년 지났다. 조금씩 개선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원혜영 웰다잉문화운동 대표도 "현재 무의미한 연명 의료를 거부할 수 있도록 허용된 범위가 너무 좁다. 예를 들어 인공호흡기 착용 여부는 환자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이 죽음에 다가갈수록 호흡만 어려워지는 것이 아니지 않나. 음식을 먹는 것도 어려워진다. 영양 공급과 관련해서는 여전히 환자가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며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환자가 먹는 것을 중단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도 병원 입장에서는 강제로 영양을 공급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최종범 교수는 "현실적으로 '심플한 프로세스'로 (연명의료결정제도를) 진행하기는 어려운 점이 있다"며 "존엄사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고는 있으나 '제도적으로 웰다잉을 뒷받침'한다는 것은 어려운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존엄사를 쉽게 허용한다는 의미가 되면 안되기 때문이다. (의료진 입장에선) 회복가능한 환자를 연명의료 포기의사를 밝혔다고 해서 쉽게 포기해서는 안된다"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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