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표현 명료하다면 '개인정보자기결정권' 존중해야

홈캠 /연합뉴스
홈캠 /연합뉴스

# 경증 치매를 앓고 있는 어머니가 걱정되어서 집에 홈캠을 설치했어요. 제가 출근하면 그 시간 동안 방문 요양보호사가 와서 돌봐주거나 잠깐 혼자 계셔야 하거든요. 그런데 얼핏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명백히 어머니 집이고 어머니께 동의를 구하지 않았거든요. 입장을 바꾸어서 생각해 보면 기분이 나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치매 부모님 댁에 동의 없이 홈캠을 설치하는 것, 괜찮은 걸까요?

치매를 앓는 부모님 집에 홈캠 등 감시용 장비를 당사자의 동의 없이 설치하면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행위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31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부모님 명의의 집에 당사자의 동의 없이 홈캠 등 감시용 장비를 설치하면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자칫 불법 행위가 될 수 있다. 

치매를 앓는 부모님을 둔 자녀는 부모님이 혼자 집에 남겨질 경우를 대비해 홈캠을 주로 설치한다. 자녀가 외출해도 스마트폰 앱으로 실시간 부모님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라이프케어 업체 관계자는 본지에 "방문요양을 이용하는 어르신의 자녀분들이 홈캠을 설치하는 사례가 기타 제품 판매량 중 60%를 차지한다"면서 "세상이 워낙 흉흉하다 보니 부모님 안전 동향을 살피는 목적이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홈캠 설치와 관련 부모님에게 상의하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라는 점이다. 치매 노모를 돌보고 있는 A씨(여·53)는 "어머니는 본인이 치매에 걸렸다는 사실조차 인정하려 하지 않으시는데 홈캠까지 설치하겠다고 한다면 부모님의 자존감을 더욱 무너뜨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렇다고 홈캠을 설치하지 않으면 외출 시 아무것도 확인할 수도 없지 않느냐"며 "홈캠이라도 있어야 만일의 상황에 대비할 수 있는 여지라도 있다"고 전했다. 

다만 전문가는 치매 환자라고 할지라도 인식 수준이 명료하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침해해선 안 된다고 제언한다. 

장덕규 법무법인 반우 변호사는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보통 CCTV 설치와 관련해 문제 되는 기본권은 개인정보자기결정권, 사생활의 자유"라며 "구체적인 관련 조항은 개인정보보호법 제25조인데 시설의 안전 및 관리, 화재 예방을 위하여 정당한 권한을 가진 자가 설치·운영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고정형 영상정보처리기기(CCTV)를 설치ㆍ운영할 수 없도록 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치매 부모님의 거부 의사가 확고하고 인식 수준이 명료하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그 의사에 반하는 설치는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의 침해로 볼 수 있다"며 "다만 의사 결정 및 표현이 불가능할 정도의 치매를 앓는 부모님 자택에 홈캠을 설치하는 경우 부모님의 묵시적인 동의가 있다고 봐야 할 수 있다. 건강이나 생명에 관한 기본권이 개인정보자기결정권보다는 우선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르면 몇 가지 상황을 비춰봤을 때 치매를 앓는 부모님 집에 홈캠을 설치하는 행위는 정당할 수 있다. 자녀가 자기 집에 부모님을 모시고 있거나 부모님이 의사 결정을 할 수 없는 상황인 경우, 혹은 행동 장애로 인해 생명에 위협이 될 수 있는 환경인 경우엔 홈캠 설치를 정당하다고 볼 수 있다는 것. 

다만 장덕규 변호사는 "부모님의 안전과 건강에 대한 염려에서 설치하는 홈캠이지만 기본적으로 홈캠은 개인정보자기결정권 및 사생활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장비라는 점과 치매 부모님에게도 같은 기본권이 있다는 점을 충분히 인식해야 한다"며 "설치에 앞서 협의나 대안적 방법 등을 충분히 찾아볼 필요는 있다. 치매 판정을 받은 직후 조금이라도 의사 표현이 가능할 때 홈캠 설치 등 법적인 문제가 따르는 부분은 충분히 당사자와 상의하는 것이 좋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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