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 관여 사실이라도 직권남용 적용 못해
'무리한 수사' 비판받는 檢 상고 여부 촉각

이른바 '사법농단' 재판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이른바 '사법농단' 재판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대법원이 행정부와 시국 재판을 거래했다는 이른바 '사법농단' 의혹으로 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47개 혐의에 대해 재판부가 모두 무죄라고 판단했다.

2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1부(부장판사 이종민 임정택 민소영)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양 전 대법원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장에겐 재판에 개입할 직무상 권한이 없어 직권남용 혐의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취지다.

양 전 대법원장은 상고법원을 도입하는 데 박근혜 정부 당시 청와대 도움을 받고자 일제 강제징용 재상고 사건,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사건, 옛 통합진보당 의원 지위 확인 소송 등 재판에 개입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지난해 9월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사법행정권의 최고 책임자인 피고인들이 재판에 개입하여 법관의 도리를 심각하게 훼손한 초유의 사건"이라며 양 전 대법원장에게 징역 7년, 박 전 대법관에게 징역 5년, 고 전 대법관에게 징역 4년을 각각 구형했다.

이 밖에도 자신의 뜻에 반하는 판사들을 '물의 야기 법관'으로 분류해 관리하고, 특정 법관 모임의 와해를 시도했다는 의혹도 있었다. 또 헌법재판소를 견제하기 위해 헌재 파견 법관을 활용해 내부 정보 등을 보고하도록 했다는 혐의도 받았다.

이 결과 문재인 정부 중반기인 2019년 2월 사법부 수장이 처음으로 구속 기소되는 초유의 일이 발생했다. 당시 수사는 윤석열 대통령(당시 서울중앙지검장) 산하 제3차장검사였던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맡았다. 당시 검찰이 공소장에 적시한 범죄 사실만 47개였다.

하지만 양 전 대법원장은 "공소장은 한 편의 소설"이라고 항변해 왔다. 그는 최후진술에서 "사법부에 대한 정치세력의 음험한 공격이 이 사건의 배경이고 검찰이 수사라는 명목으로 그 첨병 역할을 했다"며 사건의 본질을 검찰의 '수사권 남용'으로 규정한 바 있다.

법조계에선 사법농단의 수장으로 지목된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무죄가 선고되면서 무고(誣告)로 점철된 검찰의 무리한 수사에 비판의 화살이 돌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양 전 대법원장이 구속 기소된 4년 11개월, 1810일 동안 290회가 넘는 공판을 받았다. 이날 법원은 법원행정처장을 지낸 박병대, 고영한 전 대법관에게도 무죄를 선고했다.

'역대 최장기 재판'이란 기록을 남긴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무죄 판단에 대해 검찰의 상고 여부가 관건으로 떠올랐다. 만약 검찰이 이번 판결에 불응한다면 고법과 대법원을 거쳐 확정판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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