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 공개 43명 중 32명이 수도권 사건 피의자
'응보적 처벌 취급 우려'···"대중 관심도에 달려"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신상이 공개된 피의자의 74%는 수도권에서 발생한 사건의 피의자다. /연합뉴스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신상이 공개된 피의자의 74%는 수도권에서 발생한 사건의 피의자다. /연합뉴스

2010년 신설된 특례법에 따라 시도경찰청은 강력범죄 사건 피의자의 얼굴과 이름, 나이 등을 공개할 수 있다. 하지만 신상 공개가 결정된 사건의 대다수가 수도권에서 발생한 것으로 드러나 모호한 공개 기준이 논란이다.

당국에 따르면 2023년 12월 29일 기준으로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특강법) 제8조의2에 따라 경찰 수사 단계서 얼굴과 이름 등의 신상이 공개된 피의자는 43명이다. 2023년에만 9명이 신상 공개 대상에 포함됐다.

특강법에 따르면 검사와 사법경찰관은 △범행 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특정강력범죄 사건일 경우 △피의자가 그 죄를 범했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을 경우 △국민의 알권리 보장, 피의자의 재범 방지 및 범죄예방 등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할 경우 △피의자가 「청소년보호법」 제2조 제1호의 청소년에 해당하지 않을 경우의 4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할 때 신상 공개를 결정할 수 있다. 상기한 조건을 모두 충족하더라도 신상 공개 여부는 경찰 재량에 달렸다. 특정강력범죄에는 살인, 약취·유인 및 인신매매, 강간과 추행, 강도 등의 범행이 포함된다.

여성경제신문 분석 결과 43명 중 32명은 서울과 경기, 인천에서 발생한 사건의 피의자로 전체의 74%를 차지했다. 지난 8월 신림동 공원에서 발생한 강간살인 사건의 최윤종, 3월 발생한 언주역 납치 살해 사건 피의자 5인방 등이 이에 해당한다.

반면 수도권이 아닌 지역에서 벌어진 사건의 피의자는 11명뿐이었다. 지난 5월 부산에서 또래 여성을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정유정과 뒤늦게 밝혀진 '화성 연쇄살인 사건' 범인 이춘재, 미성년자를 성폭행 후 살해한 '어금니 아빠' 이영학 등 대중적으로 알려진 사건의 피의자들이 신상 공개 대상이 됐다.

피의자의 신상이 공개된 사건의 대부분이 수도권에서 발생했다는 점을 토대로 특강법이 규정하는 신상 공개 조건이 모호하다는 지적을 피해 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수도권에서 발생한 신상 공개 대상 사건과 범죄 수법과 피해 정도가 비슷하더라도 지방에서 벌어졌을 시에는 신상 공개 결정이 내려지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일례로 지난 7월과 8월에 경찰은 신림역과 서현역에서 발생한 '묻지마 칼부림' 사건의 피의자 최원종과 조선의 신상 공개를 결정했지만 두 사건 직후 영천에서 발생한 칼부림 살인 사건의 피의자에게는 신상 공개 처분을 내리지 않았다.

이에 앞서 2022년 천안에서는 50대 남성이 일면식 없는 부부에게 흉기를 휘둘러 사망하게 한 사건이 있었으나 이 사건 역시 피의자의 신상이 공개되지 않았다.

특강법이 제정된 2010년 이후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선고받은 범죄자 중 경찰에 의한 신상 공개가 이뤄지지 않은 범죄자도 있다. 지난 2015년 대구에서 배관수리공으로 위장해 헤어진 연인의 부모를 살해한 장재진은 죄질이 극악해 이례적으로 무기징역이 아닌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신상 공개 대상에 들지 않았다. 장씨의 신상은 경찰이 아닌 언론에 의해 알려졌다.

이처럼 신상 공개 기준이 일률적으로 적용되지 않는 것에 대해 전문가는 우려를 표했다. 법조계 관계자 J씨는 "결국 여론과 관심도에 따라 신상 공개 여부가 결정되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신상 공개 결정이) 대중의 분노를 달래기 위한 응보적 처벌로 취급되고 있는 건 아닌가 검토가 필요한 때"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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