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만기의 은퇴생활백서]
아름다운 화음은 제1 바이올린만으론 불가능
누군가는 제2 바이올린 연주자가 되어주어야
건물 지을 땐 대들보도 주춧돌도 모두 필요해
중심에 선 사람이 꼭 기억해야 할 것
세계적인 교향악단 지휘자인 레오나르드 번슈타인에게 어떤 사람이 물었다. "선생님, 수많은 악기 중에서 가장 다루기 힘든 악기는 무엇입니까?" 그러자 번슈타인은 가볍게 웃으며 이렇게 얘기했다.
"가장 다루기 힘든 악기는 다름 아닌 제2 바이올린입니다. 제1 바이올린을 훌륭하게 연주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하지만 제1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사람과 똑같은 열정을 가지고 제2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사람은 참으로 구하기 어렵습니다. 제1 연주자는 많아도 그와 함께 아름다운 화음을 이루어 줄 제2 연주자는 너무나 적습니다. 만약 아무도 제2 연주자가 되어 주지 않는다면 아름다운 음악이란 영원히 불가능한 것이죠."

은퇴 후 이웃에 사는 성당 교우가 내가 과거에 드럼을 친 걸 알고 동호인 몇 사람과 록밴드 결성을 권유했다. 그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의 권유로 밴드를 결성하여 60년대 록밴드 음악을 즐겨 연주했다.
우리 밴드의 구성은 1st기타, 2nd기타, Bass기타, 드럼으로 이루어졌다. 1st기타를 제외한 나머지 악기는 제2 바이올린처럼 제1 바이올린을 지원한다고 볼 수 있다. 가장 어려운 악기는 역시 1st기타다. 그러나 번스타인이 지적했듯이 다른 악기의 지원이 없으면 훌륭한 화음은 이룰 수 없다.
어느 날 한 사람이 단원들에게 미국 컨트리 음악의 하나인 블루그래스 음악에 도전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의했다. 그리곤 내게 콘트라베이스를 권했다. 블루그래스 음악은 대개 기타, 만돌린, 밴조, 콘트라베이스 등으로 이루어진다. 다른 사람들이야 기타를 연주했으니 유사한 악기를 익히는 게 어려움이 없겠지만 드럼을 치던 내가 멜로디 악기를 한다는 게 문제였다. 얼마 후 전공자에게 개인 지도를 받으며 콘트라베이스를 연습하기 시작했다.
어느 악기인들 쉬운 악기가 없겠지만 크기가 커서 그렇지 콘트라베이스는 다른 악기에 비해 그리 어려운 편은 아니다. 물론 그것도 잘하려면 쉬운 게 아니겠지만. 그 후부터 나는 그들과 함께 컨트리 음악도 정기적으로 연주했다. 사실 콘트라베이스는 컨트리 음악에서 중심을 이루는 악기는 아니다. 그래서 그런지 많은 사람이 콘트라베이스를 선호하진 않는다. 위치도 주력 악기의 뒤에 서서 연주한다.

그러나 콘트라베이스가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를 비교하면 그 차이가 크다. 한마디로 맛이 다른 것이다. 물론 멜로디를 연주하기보단 주로 리듬을 담당하다 보니 어느 때는 좀 따분하다. 그러나 다른 악기들이 콘트라베이스의 리듬에 맞추어 속도를 조절하기도 하고 또 자기들의 기량을 겨루는 것을 보면 그런대로 보람도 느낀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이리라. 너나 할 것 없이 중심에만 서려 하지만 사회는 그런 사람들만 모여선 이룰 수 없다. 하나의 건물을 지을 때 대들보도 필요하고 기둥을 받쳐주는 주춧돌도 필요하듯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더라도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사회를 구성하는 중요한 사람들이다.
중심에 선 사람도 자기 곁에 사람이 있음으로써 그가 비로소 빛날 수 있음을 기억하고 주위 사람에게 고마움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주위에 있는 사람도 모두가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맡은 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비로소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최근 비대위를 구성하려는 어느 정당 정치인에게 들려주고 싶은 에피소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