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적 감액' 합의했던 지난해와 달리
野 권력기관 예산 칼질에 집중할 전망
쌍특검 전초전 성격 수정안 통과 유력

내년도 예산안과 쌍특검법 처리를 위한 본회의가 임박하면서 전운이 고조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28일 쌍특검법안(김건희 여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대장동 50억 클럽 사건) 처리를 예고한 가운데, 오는 20일 본회의에 상정될 민주당의 수정 예산안이 국민의힘엔 또다른 '회색 코뿔소'로 떠올랐다.
18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민주당이 자체적으로 감액을 추진 중인 예산의 규모는 지난해의 두배를 넘는 5조원에 달한다. 홍익표 원내대표는 여당과 합의하지 못할 경우 단독 수정안을 처리하겠다는 입장을 수차례 밝힌 바 있다.
지난 2023년도 예산안은 2014년 국회 선진화법이 도입된 이후 가장 늦은 시점인 12월 24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당시 민주당은 거대 야당이 새정부 예산을 발목을 잡는다는 비판을 의식해 정부 예산안 639조원에서 3000억원을 기술적으로 감액한 638억7000억원을 최종 예산으로 확정해 국민의힘과 극적 합의를 연출했다.
다만 내년도 예산안은 합의 실패의 책임을 거대 야당에 떠넘기려 해도 민주당이 "기술적인 합의가 아닌 불요불급한 예산만을 집중적으로 골라 감액을 추진하겠다"는 전략이어서, 국민의힘이 "야당이 무리한 증액을 요구하다 합의가 불발됐다"는 변명을 내놓기 어려운 상황이다.
민주당은 지난 11월 6일 '2024년 예산안 심사 방향 기자간담회'에서 "정부 예산을 과감히 감액할 것"이라는 원칙을 이미 밝혔다. 지난 8년래 최대 수준인 고위공무원 인건비 인상(2.5%)분과 함께 대통령비서실·법무부·감사원 등 관서의 업무추진비와 특정 경비가 집중 타깃이다.
예비비도 대규모 삭감 대상이다. 정부는 올해 4조6000억원이던 예비비 예산을 내년에는 4000억원(8.7%) 늘려 5조원을 편성해 국회에 제출했다. 이에 민주당은 예비비 규모가 지나치게 많다며 2조원 삭감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는 사전적인 추가경정예산 성격인 예비비를 사상 최대 규모로 증액하면서도 전체 예산은 '총지출 확대는 어렵다'는 기조 아래 3.4%로 추산되는 올해 물가 상승률에도 못미치는 총지출 656조9000억원 규모(전년 대비 2.8% 증가)의 사실상의 감액 예산을 편성했다.
민주당 집계에 따르면 예비비와 별도로 내년도 예산안에서 대통령비서실, 법무부, 감사원 등 권력기관의 업무추진비와 특정업무경비가 가장 많이 증액됐다. 이개호 정책위의장은 "정밀 검토를 통해 4조7000억원 정도의 감액 대상 사업을 발굴해놨다"고 말했다. 여기 더해 고위공무원단 인건비 증액분까지 무효화하면 감액 규모는 5조원을 훌쩍 넘을 전망이다.

증액 포기한 민주당 감액 명분 충분
야당이 여당 기다려온 특수한 상황
김진표 28일로 기한 정해 중재할까?
민주당이 5조원을 감액하더라도 문재인 정부가 편성한 2022년 예산안 604.4조원보다 50조원이 더 들어가는 슈퍼예산이다. 정부가 3조1000억원(10%) 삭감한 내년 연구개발(R&D) 예산을 민주당의 요구를 받아들여 1조5000억원 증액하는 방식으로 국민의힘이 합의를 이끌어 내려해도, 민주당이 권력기관 예산 삭감에 확고한 의지를 보이고 있어 통할지는 미지수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강훈식 의원은 YTN 라디오 '뉴스킹 박지훈입니다'에 출연해 "보통은 잘못한 것을 감액하고 하고 싶은 사업을 증액하는 것인데, 이번엔 증액을 포기한 감액 수정안까지 준비하고 있다"며 윤석열 정부가 아파하는 부분을 집중적으로 칼질하겠다는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민주당이 선심성, 현금살포성의 무리한 예산 증액을 요구하고 있다"는 추경호 전 경제부총리의 주장도 힘을 받지 못하고 있다. 또 국민의힘이 내부적 문제로 한동훈·원희룡 친위 체제 구축을 위한 당협위원장 연석회의로 집중도가 분산되면서, 오히려 여당이 쌍특검과 국정조사 추진을 빌미 삼아 민생 예산안 처리를 미뤄온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역대 국회에서 예산안이 여야 합의 없이 처리된 사례는 없다. 이에 김진표 의장이 지난해처럼 28일을 예산안(정부안 또는 민주당 수정안) 처리 기한으로 못박으며 중재에 나설 것으로 보이지만 이번은 야당이 여당을 기다려온 상황이란 점이 과거와는 다르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20일 본회의도 윤 대통령 해외순방 때문에 미뤄진데다 예산소위에선 증액 심사는 하지도 못했다"며 "더는 기다릴 수 없어 자체 수정안을 김진표 국회의장과 정부·여당에 전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제출한 수정안은 정부안과 함께 본회의에서 각각 표결에 부쳐질 전망이다. 특히 28일은 쌍특검 표결이 예정된 날이라 여야의 합의가 물건너 가고 국회 재적 과반(167석)을 가진 민주당의 자체 수정안이 내년도 예산이 될 가능성이 어느때보다 높다. 대통령은 이렇게 국회를 통과한 예산에 대해선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