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고령화로 일손 부족 심화
이민자 개방하면 2.1%까지 기대

지난 2022년 10월 21일 오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2 외국인 유학생 채용박람회'를 찾은 유학생이 부스를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022년 10월 21일 오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2 외국인 유학생 채용박람회'를 찾은 유학생이 부스를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 경상북도 포항시의 한 조선업 하도급 업체에서 일하는 인도네시아 출신 근로자 A씨는 2018년부터 5년 동안 일하며 경력을 쌓고 있다. 그러나 올해 초 A씨는 비전문취업(E-9) 비자의 유효기간이 만료됐다. E-9 비자는 최대 4년 10개월 동안 체류할 수 있는 비자 종류로, 이후에는 본국으로 돌아가 다시 한국에 입국하기 위해 복잡한 절차를 밟아야 한다. 몇몇 사람들은 재입국을 시도하기도 하지만 현지에서의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성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A씨는 숙련 기능 인력(E-7-4) 비자로 변경하려 시도했으나, 224점 중 74점을 넘지 못해 합격하지 못했다.

E-7-4 비자는 한 번 직장에서 일하기 시작하면 무기한으로 한국에 체류할 수 있는 사실상의 영주권 비자로 간주된다. 올해 법무부가 선발 인원을 증가시켰다고 하긴 했지만, 연간 5000명으로 제한되어 있다. 이 비자를 받기 위해 연간 소득, 숙련도, 학력, 연령, 한국어 능력 등을 종합한 점수로 숙련 인력을 선발하기 때문에 '바늘구멍' 비자로 불린다. 평가 기준이 엄격하기 때문에 매년 1000명 미만의 사람만 합격한다. 전체 E-7-4 비자 소지자는 작년 말 현재로서 5219명뿐이다.

A씨가 일하고 있는 업체 대표인 윤씨는 "우리가 원하는 사람을 고용하고 싶다. 그들은 우리가 원하는 역할을 할 수 있는 능력과 인건비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에게 '점수가 부족하니 나가라'고 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정부의 장기체류 비자 발급 조건이 너무 엄격해 10명 중 2명만 합격하는 수준"이라고 불평했다. 따라서 정주형 고숙련 인력을 확보하기가 시급한 상황에서, 정부의 높은 기준이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한 인구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는 가운데, 외국인 이민 허용 확대 정책이 인구 대책의 유일한 해결책이란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인구 감소와 국가 경제 경쟁력 하락 위기 앞에서 미국, 일본, 유럽 등 주요 선진국처럼 이민 문호를 열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24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해 보면 세계적으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주춤했던 이민률이 지난해부터 다시 빠르게 회복세를 타고 있다. 미국 정부에서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2022년 기준 외국인 창업 비율이 자국인보다 80% 더 높게 나타났다. 캐나다는 2023~2025년 150만명의 외국인을 받아들이는 계획을 세웠고 독일은 최근 외국인의 시민권 신청을 위한 거주 기간을 8년에서 5년으로 줄이는 정책을 발표했다.

이민 확대에 따른 경제적 효과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현재 인구구조 변화가 지속될 경우 국내 잠재성장률이 급격히 낮아져 2050년대 후반부터 1% 미만으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잠재성장률을 결정하는 변수 중 하나인 노동투입의 경제성장 기여도는 2026년에 마이너스로 전환돼 2060년에는 마이너스 0.87%까지 떨어질 것으로 추정했다.

잠재성장률 1% 포인트를 높이는데 필요한 이민자수는 2015년 166만 500명, 2030년 926만 7500명, 2050년 1479만 1700명, 2060년 1722만 4400명일 것으로 보고서는 추정치를 내놨다.

반면 이민자 유입을 통해 필요한 생산가능인구수가 유지될 경우 국내 경제성장률은 2020년 3.4%, 2030년 3.1%, 2050년 2.5%, 2060년 2.1%로 현 상황에서 예상되는 기존 2060년 경제성장률 추정치 0.7%보다 1% 포인트 가량 높을 것으로 전망했다. 

국내에서는 현재 정부 차원에서 체계적인 이민 정책이 부족한 상황이다. 사회 전반적으로 이민 문제에 대한 공론화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온다.

임채완 재외동포연구원장은 국내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이민 정책과 관련한 조직이나 법률에서 외국인정책이라는 용어가 일반적인 상황은 우리 사회에서 이민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기 어려운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낸다"고 말했다.

박다솜 변호사는 "우리는 이주를 원하는 우수 인재에게 '실제 특허를 받았는지', '현재 임금 수준은 얼마인지' 등 입증 서류를 많이 요구하는데 실질적 혁신성을 평가해 이주를 허용하는 네덜란드 등에 비해 관료주의적"이라며 "한국 농·어업에 관심이 있어 지역특화형 비자를 받으려는 외국인이 학력이나 한국어 능력 기준을 미묘한 차이로 못 맞춰 이주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법무부는 올해부터 국내에서 공부한 외국의 과학·기술 우수 인재들이 학위를 취득한 뒤 한국 국적을 수월하게 취득할 수 있도록 하는 '과학기술 우수인재 영주·귀화 패스트트랙'을 시행하는 등 이민 정책 다변화를 꽤하고 있다. 하지만 혁신적인 정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예를 들어 캐나다는 대학 졸업 후 1년 이상 현지 기업에서 근무하면 영주권을 부여하는 '경력이민제도'를 시행 중이며, 미국에는 실리콘밸리 등 외국 벤처기업 창업주를 대상으로 영주권을 발급하는 '창업 이민제도' 등 보다 쉽게 이민의 문을 두드릴 수 있는 창구가 있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관계자는 "사실 외국인 이민 희망자의 미래 잠재적 가능성에 투자를 하는 게 기타 선진국 이민 정책의 흐름이다"면서도 "다만 아직 국내에선 잠재적 가치보단 이 사람을 받아들였을 때의 현재 이익과 문제점 등에 집중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내 외국인 체류 비자 종류만 봐도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라며 "평가 기준이 엄격한 탓에 국내에 체류하면 이익이 될 수 있는 우수 인재를 외국에 다 뺐기고 있는 실정"이라고 비판했다. 

전북대 졸업한 외국인 유학생들. /연합뉴스
전북대 졸업한 외국인 유학생들. /연합뉴스

한국에서 키운 우수 외국인 인재
비자 허들 높인 덕에 뺏기는 추세

외국인 노동자 문제뿐만 아니라 일반 영주권(F-5 비자) 역시 해외 이민 선진국에 비해 어려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매년 F-5 비자를 받는 사람은 일반적으로 7000~8000명 정도다. 이 비자를 받기 위해서는 첫 번째 관문인 5년 이상 체류 조건을 충족시켜야 하며, 출입국 관리법 및 관련 법률을 위반하지 않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한국어 시험을 통과하더라도 소득과 자산 기준을 충족시켜야 한다.

게다가 영주권을 신청한 후 최소 6개월의 심사 기간이 소요된다. 이민 정책 연구원에 따르면 영주권을 취득한 사람 중 56%는 재외동포이며, 귀화자 중 48%는 혼인귀화자다. 그만큼 외국인에게 한국 이민은 넘기 힘든 어려운 벽인 셈이다.

문제는 F-5 비자를 한 번 받으면 국내 의무 체류 기간이나 포기 절차가 없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비자를 유지하면서 국내에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무늬만 이민자'가 늘어나고 있다고 지적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5월에 체류 기간이 만료된 후 계속 체류를 희망하는 외국인은 전체의 88.6%를 차지하며 그 중에서는 체류 기간 연장(52.3%)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았다.

이상돈 한국 직업능력 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과거에는 외국인의 비자 전환 심사를 까다롭게 했던 이유는 내국인 일자리를 위협할 우려가 크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라며 "그러나 지금은 좀 더 유연한 심사 절차를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체류자격 변경의 높은 기준은 오히려 불법 체류를 부추기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 대표는 "비자 연장이나 전환 심사에서 떨어진 외국인 근로자 중 많은 사람이 불법 체류자가 되는데, 차라리 정부에서 체류 기간을 연장하거나 장기체류 비자 전환 비율을 높이면 합법적인 근로자로 남아서 관리가 더 쉬울 것"이라고 언급했다.

현재 2023년 3월 현재 우리나라의 불법 체류자 수는 총 41만 4045명으로 전체 체류 외국인 중 17.5%를 차지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이민정책 관계자는 "이민 행정은 컨트롤타워 없이 법무부, 고용노동부, 해양수산부 등 여러 부처 및 지방자치 단체로 분산되어 있어 저효율 이민 행정이 지속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국내 경제 활동 인구가 줄어들고 있는 추세에서 적극적인 이민정책 개방을 통해 경제 활성화, 저출산 문제 등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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