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경제신문이 연재하는 [청년이 보는 세상] 이번 편은 고려대에 개설된 '고려대 미디어 아카데미(KUMA)' 7기 수강생들이 작성한 기사입니다. 여성경제신문은 쿠마를 지도하는 박재영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와 수강생들의 동의하에 기사를 [청세]에 게재합니다. [편집자 주]

서울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6번 출구를 나서면 세 명 남짓이 함께 걸을 만한 산책길이 나타난다. 마포구 주민들이 강아지와 산책을 하고 잠시 무더위를 식히고 가는 도심 속 작은 공간, 바로 ‘경의선 책거리’다. 홍대입구역에서 와우교까지 270m에 이어져 있는 경의선 책거리는 2016년 10월부터 마포구가 복합문화공간으로 조성한 책 테마 거리다. 경의선 책거리 산책길에선 아이들 웃음소리가 가득하지만, 책거리 부스들은 고요하기만 하다.

책거리 부스 내부는 텅 빈 채 ‘6월 18일부터 철수 예정입니다’란 문구가 붙어있다. /이현주
책거리 부스 내부는 텅 빈 채 ‘6월 18일부터 철수 예정입니다’란 문구가 붙어있다. /이현주

마포구청이 홍대입구역 인근에 ‘레드로드 관광특구’ 조성을 계획하면서 7년간 운영됐던 경의선 책거리가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운영 종료 과정에서 외부 위탁 업체인 관리사무국이 부스 운영자들에게 계약 해지를 뒤늦게 통보하며 갈등이 불거졌다. 마포구청과 계약한 책거리 운영 기간이 지나며 관리국은 떠나버렸고 부스 운영자들만이 남아있다.

“계약 종료되는 거요? 당연히 몰랐죠.” 서양화가 이동현(65) 씨는 경의선 책거리 초입에 위치한 8번 부스에서 미술 수업을 진행한다. 매달 테마를 선정해 작가들의 그림도 전시한다. 함께 전시를 기획하는 상주 작가와 테마에 따라 섭외를 하는 외부 작가의 그림이 전시되는 공간이다. 이 씨는 외부 작가 9명을 섭외한 지 일주일 후, 계약이 해지된다는 통보를 받았다.

마포구는 올해 2월 말, 책거리 사업을 관리하는 위탁 업체 BM에 계약 해지를 요청하며 6월 30일까지 건물을 비워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BM은 5월 25일이 돼서야 부스 운영자들에게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책거리 부스 운영이 중단될 것을 미리 알았음에도 3개월이 지나서야 운영자들에게 알린 것이다.

예상치 못한 통보에 운영자들은 위탁 업체에 항의했지만, 담당 직원은 회사를 떠나버린 뒤였다. BM 측은 책거리 사업 위탁 기간이 종료됐고 사업 담당자가 떠나 해줄 말이 없다는 입장이다. 현재 책거리 내 위치한 관리사무국은 텅 빈 채 문이 잠겨있다.

관리국 건물뿐 아니라 일부 부스도 이미 비어있다. 책거리 중반부에 위치한 3번 부스 출입문엔 ‘6월 18일부터 철수 예정입니다’라는 안내판이 붙었다. 내부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9개의 부스 중 4곳은 짐이 모두 빠진 상황이다. 남은 5곳 중 일부는 내부에 가구와 장식은 남아있었지만, 불이 꺼진 채 사람은 없었다. 9개 부스 중 문을 연 건 8번 부스와 5번 부스, 단 두 곳뿐이다.

조형 작가 구기윤(43) 씨는 책거리 5번 부스에서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테마로 한 인형 전시와 인형 공방을 운영한다. 작년 10월, 부스에 들어오면서 BM과 8개월간 계약했다. 당시 BM 팀장은 구두로 계약의 1년 연장을 약속했다. 20개월간 부스 운영이 가능하다 여겼던 구기윤 씨는 3천만 원을 들여 부스 내부를 꾸몄다. 5월엔 인형 제작을 배우고 싶다며 찾아온 학생의 수업도 진행했다. 인형 한 개를 완성하는 데까지 3개월가량이 걸리지만, 계약을 연장할 것이란 생각에 학생을 받았다.

경의선 책거리 5번 부스 앞에 '본 매장은 6월 30일까지 정상운영됩니다’란 문구가 붙어있다. /이현주
경의선 책거리 5번 부스 앞에 '본 매장은 6월 30일까지 정상운영됩니다’란 문구가 붙어있다. /이현주

하지만 갑작스러운 계약 해지 통보로 인형 제작 수업을 급히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다. 구기윤 씨는 “계약 연장을 고려해 학생을 받았다”라며 “계약이 끝날 줄 알았다면 인테리어에 큰돈을 투자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청 내에서도 부스 운영자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입장이다. 마포구청은 BM과 계약을 한 것이지, 부스 운영자들과 직접적으로 계약을 한 것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기존엔 마포구청 문화예술과가 책거리를 맡아 관리해왔지만 7월 1일 자로 관광정책과로 이관된 점 역시 상황을 복잡하게 만든다. 책거리 사업의 책임 소재가 바뀌면서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말이 반복되는 실정이다.

관리업체와 마포구청 사이에서 책거리 운영자의 한숨은 깊어간다. 아직까지 문을 열고 있는 부스 운영자들은 갈등이 해결될 때까지 부스에 남겠다는 입장이다. 구기윤 씨는 “지금 갈등 조정 중이라 아직 부스 정리를 못 하고 있다”며 “지금 당장 짐을 뺄 곳도 마땅치 않은 상황”이라 밝혔다.

이현주 고려대 사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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