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이상 지켜온 강변역 명물
소음과 악취 민원에 정비 결정
허가제 요건 충족 노점 드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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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경제신문이 연재하는 [청년이 보는 세상] 이번 편은 고려대에 개설된 '고려대 미디어 아카데미(KUMA)' 7기 수강생들이 작성한 기사입니다. 여성경제신문은 쿠마를 지도하는 박재영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와 수강생들의 동의 하에 기사를 [청세]에 게재합니다. [편집자 주] |
뼈대만 남은 컨테이너 위로 헤진 천막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가게를 둘러서 쳐놓은 빨간 안전선 테이프 너머를 들여다보면 불 꺼진 내부에 목제 테이블과 플라스틱 의자들이 나뒹군다. 횡단보도 옆 컨테이너에는 부서진 석재가 한 무더기 쌓여 있고, 어디선가 아직도 음식 냄새가 완전히 가시지 않은 채 은근하게 풍겨왔다. 철거되기까지 하루를 앞둔 7월 5일 노점들의 모습이다.

“앞으로 먹고 살길이 막막하네요. 몸이 아파서 다른 일을 구하기도 어려운데······."
취재에 응한 노점상 A씨(72)가 연신 눈가를 훔치며 말했다. 그는 1988년부터 강변역 포장마차 거리에서 분식 노점을 운영했다. 무려 35년간 같은 자리에서 일하며 두 아이를 키웠다.
A씨는 “과태료 물어가며 운영해 온 가게가 하루아침에 없어지는 걸 보니 기가 막힌다”고 했다. A씨의 노점 역시 이번 철거 대상에 들어갔다.
서울시 광진구에 자리한 ‘강변역 포장마차 거리’가 사라진다. 떡볶이, 닭강정 등 분식과 안주를 판매하는 노점들이 늘어서 있던 거리는 매일 저녁 손님들로 북적였다. 간단히 끼니를 해결하려는 학생부터 퇴근 이후 식사에 반주를 곁들이는 직장인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이곳을 찾았다. 노점 대부분이 20년 이상 자리를 지켜온 만큼, 포장마차 거리는 많은 이들이 추억을 간직한 강변역의 명물이었다.
오가는 시민들은 철거 소식에 섭섭한 마음을 드러냈다. 오상택 씨(32)는 “포장마차 거리가 버스 정류장 바로 앞에 있어서 배고플 때 요깃거리 하기가 편했는데 사라진다니 아쉬운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이지민 씨(21)는 “이곳은 어렸을 때부터 자주 드나들었던 추억의 장소”라며“학업을 위해 잠시 본가를 떠난 사이에 사라진 것을 보고 실망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러나 버스정류장과 주택가에 가까운 노점들이 꾸준히 민원의 대상이 되어온 것도 사실이다. 강변역 주변에 있는 포장마차는 50여개로, 대부분 무허가 노점이다. 작년에 인근 아파트 주민 500여명이 포장마차 거리를 철거해달라고 연대 민원을 넣었다.
광진구청은 지난 7월 초 공동주택가에 인접한 무허가 노점들을 우선적으로 철거했다. 동서울터미널을 비롯해 그 외 지역에 있는 노점들도 단계적으로 정리할 예정이다. 수십 년간 지켜온 자리를 떠나게 된 노점상들은 당장 생계를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A씨는 “포장마차 장사로 평생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았다”며 “지원금 한 푼 없이 빈손으로 쫓겨나게 생겼다”고 말했다.
광진구청 가로정비팀 도경환 주무관은 “위생 관리가 어렵고 소음과 악취 문제도 많아 정비를 진행하게 됐다”면서 “원칙상 무허가 노점 운영이 불법이기 때문에 노점상분들에게 보상해 드리고 싶어도 할 방법이 없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2019년부터 ‘거리가게 허가제’ 사업으로 무허가 노점과 시민의 상생을 도모하고 있다. 일정 요건을 갖춘 거리가게에 도로점용 허가를 내주어 노점상들에게는 생존권을, 시민들에게는 쾌적한 거리를 보장하는 제도다.
그러나 허가 요건을 충족하는 노점이 드물고, 사업 시행에 있어 노점상보다 주민의 목소리가 우선시되는 등 현실적인 한계가 뚜렷하다. 광진구청 역시 강변역 포장마차 거리에 허가제 사업을 적용하려 했으나 아파트 주민들과 합의에 이르지 못해 철거를 진행하게 됐다.
남아 있는 몇몇 노점상은 불안한 가운데 영업을 이어가고 있다. 25년간 분식 노점을 운영해 온 박모 씨(60대)는 “생계가 걸려 있으니 마음이 불안하다”고 말했다. 언제까지 포장마차를 유지할 수 있을지 확실치 않은 상태다. 그는 “서울시가 규정한 기준에 따라 정식 노점으로 허가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며 “지자체에서 없애달라고 하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강변역 1번 출구 쪽에서 30년간 간단한 식사와 안주를 판매한 이해숙 씨(59)는 “포장마차에서만 느낄 수 있는 정취가 있어서 포차 거리가 시민들에게 사랑받아 왔다”며 “철거된 노점들을 보면 너무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이곳은 우리가 싸워서 지켜온 자리입니다. 내가 내 사정으로 장사를 못하게 될 때까지만 여기서 먹고살게 해줬으면 좋겠어요.” 이 씨의 말이다.

현재 일부 무허가 노점이 철거된 자리에는 그동안 노점 컨테이너에 가려졌던 가로수가 훤히 드러났다. 인근 주민인 50대 최모 씨는 “미관을 해치던 노점들이 철거되어 거리가 안전하고 깨끗해졌다”며 “넓어진 공간이 어떻게 활용될지 기대된다”고 말했다. 광진구청은 노점이 사라진 거리를 주민들의 품으로 돌려줄 방안을 구상 중이다.
노점이 철거되기 하루 전, A씨가 부른 고물상은 만 원권 세 장을 건네주고 가게 세간살이를 전부 트럭에 실어 갔다. 지난 30년의 값어치라기엔 터무니없이 적었다. “겨우 3만원이 말이 되냐”며 눈가를 훔친 A씨는 늦은 시간까지 포장마차 거리를 떠나지 못했다.
이지은 고려대학교 미디어학부 4학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