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수 조치 직전 폐업해 감시망 회피
미환수 피해액 건보공단 재정 누수
건보공단 '특별사법경찰권' 도입해야

챗GPT를 활용, AI가 그린 '불법 사무장병원' 이미지 /챗GPT
챗GPT를 활용, AI가 그린 '불법 사무장병원' 이미지 /챗GPT

정부가 ‘사무장 병원’으로 인한 3조원에 달하는 재정 누수 액을 막는데 팔을 걷는다. 5년간 장기 계류됐던 특별사법경찰권(특사경) 제도 입법으로 불법 병원 개업을 근절하겠다는 것이다. 

사무장 병원은 의사 면허만 대여받아 불법으로 병원을 개업해 가족에게 토지, 건물 명의를 증여하는 방식으로 재산을 은닉 및 체납했다. 결국 건강보험 재정 누수를 촉진한다는 점에서 꾸준히 문제가 제기돼 왔다. 

27일 국민건강보험공단 등에 따르면 2023년 3월 기준으로 불법 사무장병원 피해 금액은 매년 증가해 현재 3조4500억원(1695개 기관)에 달한다. 피해액 회수율은 6.4%에 불과하다. 

2009년부터 2021년까지 전국 1698곳 사무장병원 중 폐업한 곳은 1635곳으로 전체의 96.3%를 차지한다. 불법 개설 의심 기관으로 수사 중인 곳 중 환수 결정 이전에 폐업한 기관은 1404곳으로 전체의 85.9%다. 혐의가 있는 기관이 폐업하게 되면 추후 징수에 영향을 준다.

불법 사무장병원 개설 가담자들은 불법 편취한 요양급여비용 환수를 피하고자 위장 이혼, 재산 증여 등 온갖 편법을 통해 재산을 빼돌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15년 전 이혼한 배우자를 재산은닉에 이용하기도 했다. 불법 사무장병원 불법 행위를 조사해 보면, 수사 결과 통보 이전에 폐업한 기관이 통보 이후에 폐업한 기관보다 64.7% 더 높은 불법 행위를 저지른 것으로 분석됐다. 이렇게 환수 조치하지 못한 금액이 고스란히 건보공단 재정 누수로 연결된다는 것. 

건보공단 관계자는 본지와 통화에서 "불법 개설 기관에 가담한 사무장병원 운영자는 검찰에 송치되거나 법원에 기소되기 전, 기관을 폐업하고 재산을 처분하거나 은닉해 공단에서 압류할 자산이 없어 징수가 어려워지게 하는 수법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수사기관의 사무장병원에 대한 수사 기간은 평균 11.8개월(최대 4년 5개월)이다. 장기간 수사 중 폐업 등의 사유로 불법 개설 기관이 영업 중 얻은 부당 이득금 징수가 어려워져 재정적 손실이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불법 개설 기관에 대한 신속한 수사 종결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이 건보공단 측 입장이다.

최근에는 생협이나 의료법인을 통한 명의대여, 전문병원 경영 지원 회사(MSO, Management Service Organization)를 이용한 사무장병원 우회 개설 등으로 불법 개설 수법과 규모가 점점 복잡하고 대형화되어 적발에 전문적인 능력이 요구되고 있다.

공단은 신속하고 정확한 수사를 통해 재정 누수를 조기 차단하는 방안으로 특사경 도입을 논의하고 있다. 특사경은 특별한 사항에 한정하여 수사권을 갖는 사법경찰을 뜻한다. 공단 관계자는 "특사경 도입 시 수사 착수 후 단 3개월 만에 환수 처분이 가능해지며 불법 개설 기관이 청구하는 진료비 지급을 차단하고 추가적인 재정 누수를 방지할 수 있다"면서 "추산에 따르면 재정 절감 규모는 연간 약 2000억원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특사경 제도 도입 5년간 ‘지지부진’
尹 정부 재정 건전성 강화→입법 순풍

2018년 12월 송기헌 전 의원이 공단의 특사경 제도 도입을 위한 법안을 국회에 발의한 바 있다. 법안 심사 후 20대 국회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됐고, 현재는 제21대 국회에서도 국회 법사위에서 장기계류 상태에 놓여있다. 그러나 공단은 특사경 도입을 위해 보완 법안을 발의해 사무장병원 근절을 위한 다양한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지지부진했던 특사경 도입은 올해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보건복지부의 입장 변화가 가장 크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복지부는 건보공단 특사경 법제화에 대해 미온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정권 교체 후 찬성 쪽으로 의견을 바꾼 모양새다. 윤석열 정부의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 강화'의 방향성과 맞아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복지부는 최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 공개한 건강보험 지속가능성 제고 방안에도 불법 개설 및 부당 청구 기관 관리를 강화하겠다는 계획을 추가했다.

건보공단 측은 공단 특사경 도입 시 전문성도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공단 관계자는 "건보공단은 2014년부터 9년 동안 사무장병원 등을 조사해 온 현장 경험이 있다"면서 "2019년부터 전직 수사관 8명을 채용해 형법, 형사소송법, 인권 보호 절차 등 수사에 대한 교육훈련으로 조사 직원의 수사 전문성도 향상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건보공단은 피조사자의 인권침해 방지와 수사 절차를 준수하기 위해 건보공단 특사경 인권 보호지침과 건보공단 특사경 직무 규정을 만들어 복지부 장관 승인 후 운영할 예정이다.

이상일 국민건강보험공단 급여상임이사는 "사무장 병원과 면허 대여 약국은 불법 개설 기관으로 과잉 진료를 통해 국민 건강을 위협하고 건강보험 재정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앞으로 공단은 특사경 제도 도입과 함께 불법 개설 기관의 예방, 적발, 수사 협조, 부당이득금 환수 노력 등을 강화하여 건전한 의료 환경을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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