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재의 국제금융 인사이트]
무차별적인 학자금 대출 탕감
코로나19 종료 시점에도 지속
등록금 면제는 바이든의 소신
"대학=의무교육? 결정 어려워"

EBS 다큐멘터리를 봤다. 호주 위의 섬나라 파푸아뉴기니의 원주민 카로스족 아이들은 아침이면 기다란 노를 하나씩 들고 카누에 오른다. 두세 시간 강을 거슬러 올라가며 노를 젓는다. 아름다운 세틱 강가의 바람이 산들거린다. 아이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하다.
네팔의 다딩마을 아이들은 아침이면 무거운 밧줄을 하나씩 들고 집을 나선다. 이윽고 희뿌연 황토빛 트리슐리 강이 이들을 막아선다. 물살이 거세 위협적이기도 하다. 이 강에 다리는 어디에도 없다. 긴 쇠줄만 있을 뿐이다. 그 줄에 매달린 상자에 앉아 아슬아슬하게 강을 건넌다.
KBS 파노라마는 흰 눈에 뒤덮인 거대한 히말라야산맥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산 깊숙이 인도 잔스카 지역의 차 마을이 있다. 전형적인 고산족의 오지마을이다. 눈이 추적추적 내리는데 아이들이 아빠와 함께 짐을 챙겨 먼 여행을 떠난다. 길이 막혀 계곡을 따라 며칠을 가야 한다.
이 다큐멘터리는 모두 학교 가는 길을 보여준다. 네팔과 인도 아이들은 거의 목숨을 걸고 공부하러 먼 길을 떠난다. 맹모삼천지교나 한석봉의 어머니 이야기를 굳이 하지 않더라도 아이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려는 부모의 마음은 어디나 한결같다.
물론 부모에게는 자녀를 양육하고 가르칠 책임이 있다. 국가와 사회도 자라나는 세대에 대한 교육 기회를 제공할 의무를 진다. 그런데 질문이 생긴다. 대체 어느 수준까지의 의무교육을 국가는 제공해야 할까? 또 부모는 어느 수준까지 아이들의 교육을 책임져야 할까?
우리나라에서 초등교육이 의무화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6·25 전쟁이 끝난 직후부터다. 당시 정부는 전란으로 국토가 피폐했지만 학교만은 제대로 지으려고 했다. 초가집들 사이로 2층 콘크리트 학교 건물이 자리 잡았다. 모두 가르쳐야 한다고 해 학교 이름도 국민학교라 했다.
중학교 의무교육이 시행된 것은 1985년부터다. 그 이전에는 필자도 꼬박꼬박 공납금을 납부해야 했다. 당시 하루 벌어 하루 살아야 하는 서민에게는 중학교 학비도 부담스러웠다. 고등학교 의무교육은 2021년도 와서야 전면 시행되었다. 과거에는 학비 마련을 위해 도시에 와서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학교에 다니거나 야학을 하는 학생도 많았다.
미국도 시민 교육에 열과 성을 다하는 국가 중 하나다. 미국의 의무교육시스템을 K-12라 한다. 유치원부터 12학년인 고3까지 공립학교는 아이들의 교육을 책임진다. 학비는 무료이고 교재도 제공된다. 저소득층 아이는 점심도 무료로 할 수 있다.
미국의 공립교육시스템이 확립된 것은 18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각 주 정부가 세금을 거둬 학교를 세우고 거주민에게 무료로 교육 기회를 제공했다. 링컨 대통령은 국가가 토지를 제공해 대학 설립을 도왔고 1960년대까지 주 정부는 주립대 학생들에게 등록금을 거두지 않았다.
1960년대 린든 B. 존슨 대통령의 종합적 사회복지프로그램인 '그레이트 소사이어티' 시행 후 대학 입학생 숫자가 급등하자 각 주정부는 고민에 빠졌다. 늘어난 대학 교육 수요를 감당하려면 상당폭 세금 인상이 불가피했다. 결국 주립대학도 학비를 거두기 시작했다.
그 이후 미 대학의 등록금은 수직상승했다. 1980년 등록금 평균은 5000달러 수준이었다. 최근 미 대학 등록금은 최근 사립대가 4만4000달러, 주립대가 1만 달러에서 2만8000달러 사이의 수준으로 늘어났다. 불과 20년 전과 비교해도 2.3배 이상 올랐다.

대학 학자금 비용이 커지자 1972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샐리메이(Sallie Mae, Student Loan Marketing Association)라고 하는 정부 유관 기관을 설립해 학자금 대출 프로그램을 시행했다. 그 이후 연방정부가 제공하는 학자금 대출의 범위는 확대돼 왔다.
우선 미국에서 학생이 대학에 입학하면 연방교육부는 모든 학생에게 이메일을 보내 팹사(FAFSA, free application for federal student aid)라고 불리는 학자금 지원 신청서를 작성하게 한다. 지원 시에는 부모와 본인의 납세 기록을 첨부하도록 한다.
그러면 대학은 전년도 납세 기록에 기반해 가정의 등록금 부담 여력을 산정한다. 가구당 소득이 일정 수준 이하인 가정의 학생은 연방정부가 제공하는 장학금을 신청할 수 있다. 펠 그랜트(Pell Grants)라고 불리는 장학금이 대표적이다. 이 장학금은 되갚을 필요가 없다.
대학도 학생의 가정 형편을 감안해 장학금을 제공한다. 연방정부와 대학에서 받은 장학금이 부족할 경우 학생은 연방정부로부터 학자금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이 연방정부 대출금으로도 부족하면 민간 금융회사로부터 대출받기도 한다.
한편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주 정부의 재정이 악화하고 정부의 보조금이 줄어들자 대학들은 등록금을 가파르게 인상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대학 학자금 대출도 많이 증가했다. 연방정부 학자금 대출은 금융위기 전인 2007년 4분기 1200억 달러에서 금년 1분기 1조5000억 달러로 15년간 12배 증가했다. 민간 대출을 합한 총규모는 1조8000억 달러다.
학자금 대출을 갚아야 하는 미국인의 숫자는 4500만명이 넘는다. 1인당 3만 달러의 학자금 빚이 있는 셈이다. 미국 가계가 짊어지고 있는 빚은 학자금 대출만이 아니다. 12조 달러의 주택모기지론이 있고 자동차론도 1조5000억 달러에 달한다.
대출 원리금 상환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빚을 갚다 보면 쓸 돈이 남아돌지 않는다. 결국 이자율이 높은 신용카드 대출에 의지하게 된다. 최근 카드 빚은 급등해 1조 달러에 육박하고 있다. 연체율도 크게 오르고 있다. 문제가 심각해질 경우 은행의 건전성까지 위협받게 된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고자 바이든 행정부는 학자금 대출 탕감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그는 작년 우선 펠 그랜트를 받은 학자금 대출자에게는 1만 달러까지, 그 외 부부합산 가계소득 25만 달러 미만인 학자금 대출자에게는 2만 달러까지 연방 대출금을 탕감하도록 지시했다.
이 탕감 프로그램이 시행되면 총 4300만명에게 4000억 달러의 빚 탕감 혜택이 돌아가게 된다. 그런데 야당인 공화당의 일부 정치인이 이 정책에 반기를 들었다. 이들은 소송을 제기했고 6월 말 연방대법원은 대통령 맘대로 빚을 탕감한 것은 위헌이라 판정했다.
대법원은 바이든 행정부가 '히어로법(HEROES Act)'이라는 국가 비상시 경기 부흥 수단을 담은 법령에 의거해 학자금 대출을 탕감했는데 이미 코로나 팬데믹 비상사태가 끝난 현시점에서 이 법을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입장이었다.
그러자 바이든 행정부는 교육부 장관에게 연방 대출금 포기 권한을 부여한 고등교육법(HEA)을 적용해 다시 학자금 대출 탕감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물론 공화당은 반발하고 있다. 그 법을 적용하더라도 거액의 대출금 포기에는 의회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이 같은 대형 빚 탕감 프로그램이 아니더라도 바이든은 이미 다른 모든 수단을 동원해 학자금 대출을 슬금슬금 포기해 왔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1년 58억 달러의 학자금 대출을 탕감했고 그 이후에는 대출금 상환을 일시 유예했다. 최근에는 80만명에게 390억 달러의 대출금을 탕감했다. 바이든 정부 출범 후 탕감한 학자금 대출 규모는 1166억 달러에 달한다.
바이든이 이렇게 하는 이유는 사회복지 차원도 있지만 이제 대학 교육도 의무교육의 범위에 해당한다는 소신에 의한 것이다. 가능하면 그는 모든 4년제 대학 등록금을 면제하고자 한다. 그러나 대학 교육이 의무교육인지 여부는 쉽게 결론 내리기 어렵다. 학자금을 탕감하더라도 신용도와 재무 상황을 살펴 개별적으로 심사해 결정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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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재 가드너웹대학교 경영학교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종합금융회사에서 외환딜러 국제투자업무를 7년간 담당했고 예금보험공사에서 6년간 근무했다. 미국에서 유학하여 코넬대에서 응용경제학석사, 루이지애나주립대에서 경영학박사 (파이낸스)를 취득했다. 2012년부터 노스캐롤라이나주 가드너웹대학교에서 재무·금융을 가르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