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재의 국제금융 인사이트]
남북전쟁으로 경제 대국 일군 美
中 침공→삼류 국가로 추락 의미
내부의 불만 잠재우기 위한 전쟁

초등학교 다닐 때 우등상을 받고 그 기념으로 선생님이 링컨 전기 한 권을 사 주셨다. 나는 링컨의 이야기에 푹 빠졌다. 배로 짐을 옮기다 강에 빠진 친구를 구하는 모습, 밤새 독학으로 공부해 변호사가 되는 모습, 대통령이 되고 수수하게 측근들을 대하는 모습이 모두 멋있었다.
미국에 유학 온 첫해에 가족과 함께 수도 워싱턴을 방문했다. 시내 한가운데 오벨리스크 형태로 우뚝 선 워싱턴 기념탑과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의 웅장함에 말을 잃었다. 그러나 더욱 인상적으로 다가온 것은 워싱턴 중심부 내셔널 몰의 서쪽 끝에 자리한 링컨 기념관이었다.
고대 로마의 신전 양식을 본떠 만든 기념관 앞 계단에 앉으니 엄숙함이 절로 느껴졌다. 의자에 앉은 모습의 6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링컨의 동상에서는 위압감이 뿜어져 나왔다. 석양 무렵 기념관 앞의 계단에 앉아 미국인에게 링컨이 어떤 의미가 갖는지를 생각해 봤다.
아마도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이 한국인에게 가지는 의미 그 이상을 링컨은 미국인에게 가지는 듯했다. 어떤 의미로는 신격화된 듯했다. 링컨 대통령은 물론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반인륜적인 노예 해방을 성취하고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미합중국을 보존했다.
그런데 링컨의 위대함은 거기에 머물지 않는다. 그는 향후 미국을 세계 최대의 경제 대국으로 자리매김할 초석을 놓는다. 바로 내셔널뱅크(national bank) 시스템을 확립하고 대륙횡단철도(transcontinental railway) 건설에 착수한 것이었다.
1836년 제2차 미합중국 은행(Bank of the United States)이 문을 닫은 이후 큰 혼란이 미국 은행시스템에 찾아왔다. 중앙은행이 없어지자 각 주 정부가 인가한 일반은행이 은행권의 일종인 뱅크노트(banknote)를 지폐로 찍어내 대출했다. 이들 은행에 대한 관리·감독도 매우 부실했다.
한 주에서 발행한 지폐를 다른 주에 들고 가서 쓰려고 하면 불이익을 당해야 했다. 지폐의 가치가 깎이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화폐 발행을 남발해 파산하거나 사기를 치는 경우도 속출했다. 그래서 이 시기를 은행들이 들고양이처럼 날뛰는 ‘와일드캣(wildcat)’ 시대라 했다.
이런 혼돈 속에서 1861년 남북전쟁이 터졌다. 당시 미국의 남부 주들은 노예 노동에 의지해 생산한 목화를 영국 면방직 업자에게 수출하면서 경제를 떠받치고 있었다. 자유무역이 유리했다. 그런 환경에서 링컨은 관세를 세 배 가까이 올렸다. 남부 주들의 불만이 커졌다.
거기다 링컨이 노예 해방을 선호하게 되자 남부 주들이 연방 탈퇴를 선언했다. 이들이 자신들의 영역에서 기어코 연방 군대를 철수시키려 하자 전쟁이 터진 것이었다. 개전 초기에는 로버트 리와 같이 유능한 지휘관을 확보한 남부군에게 유리한 전황이 펼쳐졌다.
북군이 전쟁에 이기기 위해서는 전비의 확충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고심 끝에 링컨은 연방 재무부 산하에 통화감독국(OCC)을 설립하고 내셔널뱅크 설립을 인가하게 했다. 내셔널뱅크를 통해 그린백(greenbacks)을 발행해 전비를 조달했다. 그린백은 이자가 지급되지 않았으므로 화폐와 마찬가지였다. 연방정부가 민간은행인 내셔널뱅크 발행 그린백을 보증했다.
그러고는 지폐를 발행한 주 정부 인가 은행들을 탄압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발행한 지폐에 대하여 10%에 달하는 고율의 세금을 부과했다. 이렇게 내셔널뱅크 시스템이 갖추어지고 전비 마련에 성공하면서 북부 연방군이 승리할 수 있는 기반이 닦였다. 오늘날 JP모건 등 미국 대부분의 대형 은행은 내셔널뱅크에 속한다.
여기에 더해 링컨은 대륙횡단철도 건설에 박차를 가했다. 전쟁 중임에도 철도 건설에 아낌없는 지원을 베풀었다. 산업화한 동부와 개척이 한창 진행 중인 서부를 연결해 엄청난 시너지를 창출하려는 의도였다. 이로써 링컨은 미 대륙을 철로로 거미줄같이 연결해 보급에서 우위를 차지함으로써 전쟁 승리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안타깝게도 링컨은 전쟁이 막 끝난 1865년 남부 입장에 동조한 극단주의자 존 윌크스 부스가 쏜 총탄에 맞아 목숨을 거두고 말았다. 암살자의 배후에는 내셔널뱅크와 그린백에 반대하는 국제자본이 도사리고 있다는 음모론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링컨은 유명을 달리했지만 미 경제는 호황을 구가했다. 남북전쟁의 특수로 많은 사업가가 큰돈을 벌고 또 재투자하면서 경제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성장을 이끈 것은 철도산업이었다. 철도 건설이 후방연관효과를 일으키면서 부동산을 비롯한 숱한 산업에 고용 붐이 일었다.
이후 석유가 석탄을 대체할 연료로 떠올랐다. 록펠러는 정유산업을 독점하며 사상 최고의 부자가 됐다. 밴더빌트는 정제된 석유를 선박과 철도로 실어 나르면서 또 엄청난 부를 쌓았다. 카네기는 철도와 각종 설비에 쓰일 강철을 제련해 재벌이 됐다. JP모건은 이들과 협력해 금융계의 큰손으로 떠올랐다. 미국은 서서히 초강대국으로 등장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세계 금융계를 장악한 기축통화국은 여전히 영국이었다. 수백 년간 쌓은 부를 미국에 투자해 큰돈을 벌고 있었던 것도 로스차일드를 비롯한 런던의 금융인들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1914년 오스트리아 왕세자가 암살되면서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세계를 지배하던 유럽이 사생결단의 전쟁을 벌였다. 1000만명의 젊은이가 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유럽은 전쟁으로 초토화되었다. 그러나 대륙의 정세에서 한 걸음 떨어져 있었던 미국은 큰 피해를 보지 않았다. 오히려 유럽대륙에 전쟁 물자를 공급하면서 부를 축적했다.
그렇게 제1차 대전으로 세계 경제의 주도권은 영국에서 미국으로 완전히 넘어갔다. 영국이 정세를 되돌리려 노력했지만 허사였다. 대륙의 분쟁에 관여하지 않고 조용히 내실을 키워 거인이 된 미국의 힘을 더 이상 따라잡을 수 없었다.
한편 최근 중화민족의 부흥을 부르짖으며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던 중국이 흔들리고 있다. 제로 코로나의 후유증과 부동산 거품 붕괴로 경제가 침몰하고 있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를 정도로 금융위기의 조짐이 완연하다. 실업률이 폭발적으로 높아져 사회 불안이 증폭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시진핑 정권이 내부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대만을 침공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과연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면 중국은 남북전쟁과 같은 경제성장의 전기를 얻게 될 것인가 아니면 제1차 대전의 유럽과 같이 몰락의 전주곡이 시작될 것인가? 중국은 내실을 기르는 도광양회를 너무 섣부르게 져버렸다. 대만 침공 후 중국에게서 남북전쟁의 결과를 기대하기 힘든 이유다. 오히려 1차 대전 후의 오스만 제국처럼 삼류 국가로 전락할 가능성이 더 크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성재 가드너웹대학교 경영학교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