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주류 리버럴과 인적교류 전혀 없어
헤리티지도 바이든 정부에선 비주류
교포와 만남도 4·15 부정선거론 중심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 1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주미대한제국공사관에 방문해 공사관 내부를 둘러보고 있다. /제공=국민의힘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 1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주미대한제국공사관에 방문해 공사관 내부를 둘러보고 있다. /제공=국민의힘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5박 7일의 일정으로 미국 정치권과의 교류에 나섰지만 이념 편향적 모임 일색의 스케줄만으로 리버럴(liberal: 진보적, 민주당) 성향의 바이든 정부와의 네트워크를 강화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된다.

11일 국민의힘에 따르면 김 대표는 전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미국으로 출국했다. 이철규 사무총장과 유상범·강민국 수석대변인, 구자근 당 대표 비서실장, 김석기 당 재외동포위원장, 이재영 등 주요 당직자들이 동행했다.

한국 시각으로 이날 새벽 워싱턴 DC에 도착한 김 대표는 한국전 참전 용사 기념비에 헌화한 뒤 이틀간의 워싱턴 일정을 소화한다. 이어 16일까지 뉴욕과 로스앤젤레스(LA) 등을 방문해 미국 정관계 인사, 교민들을 만난 뒤 귀국한다는 스케줄이다.

먼저 김 대표와 만남이 예정된 주요 인사는 커트 캠벨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인도·태평양 조정관, 마이클 맥콜 하원 외교위원장(공화), 밥 메넨데스 상원 외교위원장(민주) 등으로 파악된다.

윤석열 대통령 미국 국빈 방문 성과인 '워싱턴 선언' 후속 조치 논의를 위한 자리다. 그러나 이를 제외한 5박 7일의 일정 가운데 많은 부분이 국민의힘 지지층과의 정치 행사에만 초점이 맞춰져 워싱턴 정가를 비롯한 바이든 정부와 교감을 이룰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 1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한국전 참전비를 찾아 참배 및 헌화하고 있다. /제공=국민의힘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 1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한국전 참전비를 찾아 참배 및 헌화하고 있다. /제공=국민의힘

특히 김 대표가 방미 기간 접촉할 단체 인사 가운데 한국과 미국의 부정선거를 주장해 온 인물이 대거 포함된 것은 논란의 소지가 있어 보인다. 김 대표를 초청해 오는 14일 LA 옥스퍼드 팔레스 호텔에서 동포 정책 간담회를 주최하는 국제자유주권총연대 소속 신숙희 공동대표는 지난 2020년 극우 유튜버 이봉규TV에 나와 트럼프 대통령에게 4·15 총선이 부정선거라는 주장을 담은 편지를 써서 보냈다고 해 논란이 된 인물이다.

또 신 대표와 함께 국제자유주권총연대 공동대표를 맡은 배창준·허상기·김형동·마영애 씨도 지난해 7월 28일 대법원이 민경욱 인천연수을구 및 나동연 경남 양산을구 낙선자의 4·15 총선 선고 무효 소송을 기각한 것을 규탄하는 성명서에 참가한 대표적인 4·15 부정선거 음모론자다.

미국 워싱턴DC 매사추세츠가에 위치한 피터슨연구소 입구.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미국 워싱턴DC 매사추세츠가에 위치한 피터슨연구소 입구.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지근 거리 브루킹스·피터슨 연구소 패싱
바이든 핵심 브레인과 접촉할 기회 놓쳐

김 대표의 이번 방미 목적은 그동안 끊어진 미국 정치권과의 네트워크를 부활시키겠다는 목적이지만 미국의 다양한 싱크탱크와의 미팅 일정조차도 이념적으로 기울어져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 대표는 이튿날엔 보수주의 성향의 싱크탱크인 헤리티지 재단 관계자들과 만나 한반도 상황에 대해 의견을 나눌 예정이다. 그럼에도 워싱턴 매사추세츠가(街) 지근 거리에 포진한 중도 및 리버럴 성향의 싱크탱크와 접촉할 계획은 없어 보인다.

미국은 정권마다 대세를 좌우하는 싱크탱크가 바뀐다. 우파에서부터 좌파에 이르기까지 은퇴한 대사, 교수, 언론인, 작가, 사상가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이들의 목소리는 행정부 정책에 반영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존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교수 등 일부 보수 인사의 아이디어에 의존해 북한 김정은 정권을 비롯한 독재정권과의 양자주의 정책을 추구해온 반면 바이든 행정부에서는 다자주의 경제안보 정책을 구상한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와 브루킹스연구소가 대세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2018년 브루킹스연구소가 주최한 한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조 바이든 대통령이 2018년 브루킹스연구소가 주최한 한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물론 실무적으론 헤리티지재단과 전략국제연구센터(CSIS)가 바이든 정책을 보완하는 균형추 역할을 하지만 순수 자유주의(libertarian) 연구 단체인 케이토연구소(CATO)마저 극우로 분류되는 미국의 현실에서 김 대표가 헤리티지만을 접촉하는 것은 바이든 행정부의 성향과 기조를 간과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리버럴 싱크탱크와 함께 바이든 행정부를 움직이는 힘은 뉴욕 월스트리트 엘리트 그룹인데 그 중심엔 래리 핑크 블랙록 회장이 있다. 지난 4월 친트럼프 성향의 폭스뉴스 간판 앵커 터커 칼슨의 갑작스러운 해임에도 폭스지분 15.1%를 소유한 블랙록이 뒤에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폭스그룹의 사주 루퍼트 머독의 아들인 제임스 머독 뉴스코퍼레이션 최고경영자(CEO) 역시 공개적으로 바이든을 지지하고 유대인 단체인 반명예훼손연맹(ADL)과 함께 극우 음모론자 터커 제거를 위해 연대할 만큼 반트럼프 성향이 강하다.

2015년 7월 미국을 방문한 김무성 대표는 한국전 참전용사와 가족, 주미 재향군인회 회원들과 만찬을 함께한 자리에서 수행 인사들과 함께 큰절로 인사를 전했다. /연합뉴스
2015년 7월 미국을 방문한 김무성 대표는 한국전 참전용사와 가족, 주미 재향군인회 회원들과 만찬을 함께한 자리에서 수행 인사들과 함께 큰절로 인사를 전했다. /연합뉴스

美 땅만 밝으면 흥분하는 국민의힘
尹 NATO 방문 메시지 퇴색 우려도

홍준표, 황교안 당 대표 체제 내내 친트럼프 성향으로 기울어진 국민의힘 인사들은 미국만 방문하면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최근 이로 인해 당원권 정지 조치를 받은 김재원 최고위원은 지난 3월 25일 미국의 한 보수단체가 주최한 강연에서 “전광훈 목사가 우파 진영은 전부 천하 통일했다"고 말해 논란을 빚었다. 

즉 윤석열 대통령이 같은 기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유럽으로 출국한 시점 이 같은 국민의힘의 행태가 반복된다면 주목도를 분산시킬 우려가 있다. 특히 김 대표가 나토 해체를 주장해 온 친트럼프 성향 인사들과 접촉한다면 메시지가 퇴색될 가능성이 크다.

김기현 대표가 보수정당 대표 자격으로 미국을 공식 방문하는 것은 김무성 전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대표 이후 8년 만이다. 김무성 전 대표가 미국 군수업체인 록히드 마틴사 관계자에게 "F-22기 전투기를 얼마든지 사겠다"고 한 발언이 대표적 논란이었다. 

행정부와 보조를 맞추는 것보다 방미 이벤트를 당의 선거에 활용하려는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방문보다 앞선 시점 김 전 대표는 "중국보다 미국이 먼저"라는 정부의 외교적 입지를 좁히는 발언을 해 논란을 샀다. 또 교민들에겐 "종북좌파들의 준동을 막는 유일한 방법은 우리 새누리당이 선거에서 계속 이겨서 정권을 재창출하는 데 있다"고도 했다.

저작권자 © 여성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