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례 15년만 깨져···최연장자 기준 제시
조상 추모에 아들·딸 역할 차이 없어
대법 "성차별 금지한 헌법 정신 승계"

"제사 주재자는 먼저 공동상속인들 사이의 협의에 의해 정한다. 하지만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에는 그 지위를 유지할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은 한 장남 또는 장손자 등 남성 상속인이 제사 주재자가 된다."
- 2008년 11원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2018다248626)
유족 간 협의가 없으면 가장 가까운 직계비속 가운데 최연장자가 제사 주재자를 맡아야 한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남성을 제사 주재자로 정했던 기존 법원 판례가 15년 만에 뒤집혔다.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A씨 유족 간 벌어진 인도 소송에서 '제사용 재산 승계에서 남성과 여성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파기 환송했다.
앞서 A씨는 배우자 간 딸 2명이 있었으며 다른 여성과의 혼외관계로 아들을 뒀다. 이후 A씨가 사망하자 혼외자 생모가 A씨의 배우자와 딸들과는 합의하지 않은 채 고인의 유해를 경기도 파주시의 추모 공원 납골당에 안치했다.
이에 배우자와 딸들이 '추모할 권리를 되찾고 싶다'며 유해를 돌려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민법상 고인의 유해와 분묘 등 제사용 재산은 제사 주재자에게 있으며 기존 판례상 아들이 제사 주재 우선권을 가진다. 이 사건 1·2심 법원 판결은 판례를 적용해 배우자와 딸들의 청구를 기각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기존 판례가 더 이상 조리(이성을 토대로 한 규범)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장남·장손자 등 남성 상속인을 제사 주재자로 우선하는 것은 성별에 의한 차별을 금지한 헌법 정신에 합치하지 않는다"며 "제사용 재산의 승계에서 남성 상속인과 여성 상속인을 차별할 정당한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다만 유족 간 협의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 법원이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제사 주재자에 적합한 자를 판단해야 한다.
대법원 관계자는 "종래 부계혈족 중심의 가계 계승을 중시한 적장자 우선의 관념에서 벗어나 헌법상 개인의 존엄 및 양성평등 이념과 현대사회의 변화된 보편적 법의식에 합치하게 됐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