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략전쟁 승리 염원했던 친일 화가
100원권 이순신의 화폐영정 참여에
문체부, 3년째 지지부진한 교체 논의
김승수 "빠른 시일 내 발표·조치해야"

한국은행 화폐박물관에 전시된 화폐 위에 놓인 100원짜리 동전 /연합뉴스
한국은행 화폐박물관에 전시된 화폐 위에 놓인 100원짜리 동전 /연합뉴스

국내 100원짜리 동전에는 이순신 장군의 영정이 각인돼 있다. 그런데 영정을 그린 화가 장우성은 과거 친일 행적으로 논란이 된 바 있는 작가다. 친일 작가가 그린 작품을 표준영정에서 지정 해제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자 문화체육관광부도 이를 검토하기 시작했으나 3년째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이 와중에 친일 작가가 그린 표준영정의 저작재산권도 작가의 후손에게 있다는 법률 해석이 나와 친일 작가 작품을 표준영정에서 해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30일 김승수 국민의힘 국회의원은 '이순신 표준영정 저작재산권 관련 법률자문' 결과 충무공 이순신 표준영정 저작재산권자가 장우성 작가의 상속인으로 판단된다고 전했다. 따라서 현충사관리소가 표준영정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저작재산권자의 동의가 필요하다. 해당 표준영정은 국내 주화 100원권에도 사용되고 있다.

표준영정은 문체부 장관이 화폐나 교과서 등에 실리는 역대 위인들의 용모를 표준으로 지정한 인물화를 의미한다. 1973년 문체부가 표준영정제도를 두어 역사적 인물 초상화의 표준을 지정했다. 표준영정제도는 5000원 구권 속 율곡 이이의 모습이 서구적인 이목구비를 가져 야기된 논란에서 시작됐다. 

당시 국내 제조 기술로는 은행권 원판을 제작할 수 없어 영국의 토마스 데라루(Thomas De La Rue) 제조회사에 5000원권을 의뢰했다. 공식적인 이이 초상화의 부재로 영국 회사가 그 초상을 재현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정서와 기준으로 이이의 모습을 서구적으로 표현했다.

1972년에 발행된 5000원 구권과 현재 발행되고 있는 5000원권의 모습. 5000원 구권에서 서구적인 이목구비를 가진 율곡 이이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한국은행 화폐박물관
1972년에 발행된 5000원 구권과 현재 발행되고 있는 5000원권의 모습. 5000원 구권에서 서구적인 이목구비를 가진 율곡 이이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한국은행 화폐박물관

표준영정제도는 2020년 표준영정으로 지정된 역사적 인물의 초상화 작가가 친일 활동한 것이 지적되자, 표준영정 및 화폐의 인물화인 화폐영정까지의 교체 논의가 시작됐다. 하지만 문체부는 논의가 시작된 지 약 3년째 결정을 내지 못한 상황이다.

문체부 관계자는 여성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표준영정 해제 사유에 해당하는지에 대해 그리고 사회적 파급효과를 종합적으로 검토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3년째 논의 중이다)"라며 "(표준영정 해제 관련) 심의위원회의 일정은 연초라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국내 화폐를 발행하는 한국은행은 문체부의 결정만을 기다리는 상황이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지정 해제 여부가 결정되지 않았기에 (해당 사안에 대해)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문체부가 논란이 된 표준영정을 교체 결정한다면, 한국은행은 화폐 도안을 바꿀 수밖에 없다.

100원권의 장우성 작가 외에도 현재 5000원, 1만원, 5만원권의 역사적 인물 표준영정 작가도 친일 행적이 논란이 되고 있다. 각각 율곡이이는 김은호 작가, 세종대왕은 김기창 작가, 신사임당은 김은호 작가가 그 표준영정을 그렸다.

친일화가 작품으로 논란된 주화 및 화폐 /게티이미지뱅크
친일화가 작품으로 논란된 주화 및 화폐 /게티이미지뱅크

이중 김기창, 김은호 작가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에 이름이 올랐다. 이 보고서는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간한 보고서로, 친일반민족행위 조사 및 연구, 결정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김기창 작가는 징병제·지원병제 실시 기념 작품 및 일제 지배정책과 침략전쟁에 협력하는 잡지 표지화 그림 제작 등의 이유로, 김은호 작가는 침략전쟁 수행을 위한 국방 헌금 모집 선전 및 조선미술가협회 평의원으로 태평양전쟁을 선전해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결정됐다. 

특히 김은호 작가의 경우 1936년 후소회(後素會)를 조직해 제자들을 양성했는데, 그중 한 명이 1000원권 퇴계이황의 표준영정 및 화폐영정을 제작한 이유태 작가다. 5000원과 5만원권의 화폐영정을 그린 이종상 작가도 김은호 작가의 제자다. 월간조선에 실린 이종상 작가 인터뷰에 따르면 화폐영정을 제작할 수 있었던 데는 스승인 김은호 작가의 추천이 있었다.

민족문제연구소에 따르면 장우성 작가는 조선총독부가 주관한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했으며, 이후 추천작가가 돼 조선인 최초로 답사한 바 있다. 이외에도 일제강점기 말 반도총후미술전람회에 일본의 전쟁 승리를 기원하는 불상 '부동명왕(不動明王)'을 응모하려 했으나 운반 중 비에 젖어 출품을 포기했다.

이에 김승수 의원은 "현재 문체부가 표준영정을 모두 전수조사하고 있는 만큼, 빠른 시일 내 모든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그에 맞는 조치를 취해 민족의 얼을 바로 세우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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