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화폐박물관 전시회
남성 사회 전유물인 화폐 속 인물
화폐 속 소수의 여성 업적 재조명
선덕여왕·유관순, 기념주화에 등장

올해 5월 7일까지 한국은행 화폐박물관에서 '화폐 속 여성들의 빛나는 발걸음' 기획 전시회가 진행된다. 이 전시회를 통해 정치인, 인권운동가, 과학자, 예술가, 독립운동가, 문학가 등 여성 인물들의 업적을 엿볼 수 있다. /김혜선 기자
올해 5월 7일까지 한국은행 화폐박물관에서 '화폐 속 여성들의 빛나는 발걸음' 기획 전시회가 진행된다. 이 전시회를 통해 정치인, 인권운동가, 과학자, 예술가, 독립운동가, 문학가 등 여성 인물들의 업적을 엿볼 수 있다. /김혜선 기자

"화폐 속 인물은 오랜 시간 동안 남성의 전유물이었고, 여성은 극히 소수였다. 그러나 남성 중심 사회에서도 역사가 기록하고 기억할 수밖에 없었던 빛나는 여성 인물들이 있었다. 정치적 지도자 말고도 인권운동가, 과학자, 예술가, 독립운동가, 문학가 등 다양한 분야의 여성 인물들을 망라한다. 그녀들의 빛나는 발걸음을 되짚어봄으로써 자라나는 새싹이 화폐의 주인공이 되는 멋진 꿈을 가꾸길 기대해본다."

- 한국은행 화폐박물관장

주머니에 잠든 지갑 속 화폐를 꺼내보자. 화폐 속 많은 남성 중에서 여성 인물은 오직 한 명이다. 과연 한국을 상징할 여성이 한 명뿐인가. 화폐에서 여성을 찾아보기 힘든 건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은행은 화폐박물관에서 올해 5월까지 무료로 '화폐 속 여성들의 빛나는 발걸음' 기획전시회를 진행한다. 이 전시회는 정치·예술·과학 분야를 넘나들어 역사적인 업적을 남긴 여성들을 재조명했다.

전시회를 관람하고 있는 아이의 모습 /김혜선 기자
전시회를 관람하고 있는 아이의 모습 /김혜선 기자

여성경제신문과 만난 장인석 한국은행 화폐박물관 학예연구사는 "딸에게 화폐 속 여성 인물에 대해 소개하면서 다른 아이도 알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전시회 기획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아이들에게 쉽게 전달될 수 있도록 유명인과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을 적절히 조화시키고, 전시실 전체를 포토존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이어 여성만 조명한 이유로 "대부분이 남성 중심 사회고, 점차 여성 인권이 신장하면서 화폐에 여성들이 등장할 수 있었다"며 "실제로 중동지역 국가의 화폐에는 여성 인물이 등장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신인선. 신사임당이란 이름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그는 5만원권의 주인공이다. 현재 통용되는 한국 화폐 속 인물 중 유일한 여성이기도 하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예술가로 꼽혀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도 시·그림 등을 꽃피운 팔방미인이었다.

'대한민국 반만년역사 기념주화'의 2500원화의 금화(왼쪽)과 50원화의 은화(오른쪽)의 모습. 각각 선덕여왕과 유관순 열사의 모습이 담겼다. /한국은행 화폐박물관 제공
'대한민국 반만년역사 기념주화'의 2500원화의 금화(왼쪽)과 50원화의 은화(오른쪽)의 모습. 각각 선덕여왕과 유관순 열사의 모습이 담겼다. /한국은행 화폐박물관 제공

하지만 한국 화폐 속 여성은 신사임당만 있지 않았다. 한국 최초의 여왕인 선덕여왕과 독립운동가인 유관순도 등장했다. 이들은 각각 '대한민국 반만년역사 기념주화'에서 2500원화의 금화와 50원화의 은화에서 살펴볼 수 있다. 선덕여왕 기념주화에는 재위 기간과 경주 동궐 등이, 유관순 기념주화에는 태극기를 들고서 독립운동하는 모습이 담겼다.

'대한민국 반만년역사 기념주화'는 1971년 3월 발행된 한국 최초 기념주화다. 세종대왕, 박정희 전 대통령, 이순신 장군 등의 초상도 들어갔다. 차관 목적으로 비밀리에 해외에서만 발행되었기에 희귀하며, 오늘날 수집가 사이에서 3500만원에 거래될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화폐에 남녀평등 담은 호주 은행
남녀 배치에 앞뒷면 구분도 안 해
코라손, 아시아 최초 여성 대통령
남편은 한국전쟁 참전 종군 기자

호주 화폐에는 한 면에 남성 인물이라면 다른 면에는 반드시 여성 인물이 들어간다. 위 지폐는 50달러 지폐로 호주 최초 여성 국회의원인 에디스 코완이 담겼다. 다른 면에는 호주 원주민 출신 발명가 겸 작가로 활동한 데이비드 유네이폰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한국은행 화폐박물관 제공
호주 화폐에는 한 면에 남성 인물이라면 다른 면에는 반드시 여성 인물이 들어간다. 위 지폐는 50달러 지폐로 호주 최초 여성 국회의원인 에디스 코완이 담겼다. 다른 면에는 호주 원주민 출신 발명가 겸 작가로 활동한 데이비드 유네이폰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한국은행 화폐박물관 제공

전 세계에서 화폐 속 남녀평등을 가장 많이 실현한 국가는 호주다. 호주중앙은행은 지폐 한 면에 남성 인물이 들어가면 다른 면에는 반드시 여성 인물을 넣고 있다.

이 중 눈여겨볼 인물은 50달러 지폐에 들어간 호주 최초 여성 국회의원 에디스 코완이다. 그는 호주 최초로 사회복지 용어를 도입했으며, 여성 참정권 운동 외에도 공교육·어린이 권리·유아 보건 등에 힘썼다. 지폐에는 코완이 설립한 여성전문병원(King Edward Memorial Hospital)도 있다.

호주는 5달러를 제외하고 지폐의 앞뒷면을 구분하지 않고 있다. 5달러에는 엘리자베스 2세의 초상이 담겼기 때문이다. 그는 70년 동안 영연방을 다스려온 영국 최장수 군주다. 엘리자베스 2세의 초상은 영국 영란은행 말고도 호주·캐나다 등 20여 국가의 화폐에 등장하고 있다. 다만, 지난해 그가 서거함에 따라 아들인 찰스 3세로 바꾸거나 다른 인물이 들어갈 예정이다.

필리핀의 500페소 신권에서 코라손·베니그노 아키노 부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구권은 남편 베니그노 아키노의 초상만 담겼다. 구권은 2015년까지 통용되다 신권으로 교체됐다. /한국은행 화폐박물관 제공
필리핀의 500페소 신권에서 코라손·베니그노 아키노 부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구권은 남편 베니그노 아키노의 초상만 담겼다. 구권은 2015년까지 통용되다 신권으로 교체됐다. /한국은행 화폐박물관 제공

필리핀의 500페소 신권에는 부부의 초상이 나란히 들어가 있다. 아키노 부부로 아내인 코라손 아키노는 필리핀의 첫 민선 대통령이자 아시아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다. 동시에 마르코스 독재 정권을 종식시킨 민주화 운동가이기도 하다. 그는 헌법을 개정해 자유 선거제를 부활시켰고, 민주화를 이뤄냈다.

남편인 베니그노 아키노는 한국과 인연이 많다. 우선 한국전쟁에 종군 기자로 참전한 바 있다. 500페소 구권에는 당시 아키노의 참전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독재정권을 피해 미국에 망명한 시절 만난 김대중 전 대통령과 친분이 깊었다. 이때 아키노가 김 전 대통령에게 선물한 타자기도 지폐에 새겨져 있다. 현재 이 타자기는 연세대학교 김대중 도서관에 전시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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