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향기 풍기는 시장 골목길
백종원, 현대보다는 옛것을 택해
"전통시장 부활로 지방소멸 해결"

대형마트의 등장에 전통시장이 하나둘 자취를 감추고 있다. 3만㎡(약 9000평)라는 전국에서 가장 큰 전통시장을 가진 충청남도 예산군의 예산시장도 대형마트(농협 하나로·GS마트)는 당해내지 못했다. 급기야 예산 군민까지도 줄어들자,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이사가 이른바 '예산시장 살리기 프로젝트'에 나섰다.
지난 12일 여성경제신문이 찾은 예산시장은 옛 간판과 전봇대가 늘어선 골목길이 반기고 있었다. 덕산으로 여행 가는 길에 예산시장을 찾은 방문객들은 시장의 묘미로 80~90년대의 정겨운 시장 이미지를 꼽았다. 이들은 "옛날 생각이 새록새록 떠오르도록 잘 꾸민 것 같다"며 "나중에 가족여행으로 한 번 더 오고 싶다"고 전했다.
카메라를 들게 만드는 사진 맛집에 부산에서 온 방문객도 있었다. 갓 걸음마를 뗀 자녀와 시장을 찾은 이들은 "시장 분위기가 특이한 것 같아서 일부러 들렀다"며 "시장이 깔끔해 특히 마음에 든다"고 했다. 정식으로 상설시장을 운영한 지 3일밖에 안 됐지만, 벌써 입소문으로 시장을 찾는 방문객이 늘어나고 있었다.

사실 지금의 예산 상설시장 일대는 주차장으로 바꾸고 주상복합에 시장을 마련할 계획이었다. 이상식 예산시장 상인회 사무국장은 "백종원 대표가 현대식 시장들은 많이 망하고 있으니 옛 추억을 만들 수 있는 시장을 기획했다"며 "백 대표가 가지고 있던 옛날 간판들을 복원해서 다시 달았다"고 밝혔다.
'예산시장 살리기 프로젝트'는 백 대표가 2017년부터 장시간 공들여 기획한 사업이다. 예산시장 상인회에 따르면 더본코리아는 시장 내 폐점한 점포 10개를 매입했고, 시장 전반의 리모델링 등 제반 비용을 제공했다.
특히 백 대표는 삼국(국밥·국화·국수)이 유명한 예산시장의 브랜드를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조세제 예산시장 상인회장은 "예산 시장의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백종원 대표가 각 지역의 국밥이 유명한 시장을 탐방했다"며 "위생적인 문제가 있던 예산시장의 국밥을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했다"고 전했다.
폐점포 인수해 군민 상점으로 탈바꿈
타지 생활 감수한 선봉국수 청년 사장
프로→기초, 다시 시작한 예산 토박이
백 대표는 매입한 점포에 선봉국수·신광정육점·골목양조장·시장닭볶음 등의 상점을 영업해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고자 했다. 상점을 운영할 사장은 공모를 통해 직접 선정했다. 본지가 만난 사장들은 본업에 최선을 다해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이민선 선봉국수 사장(여·21세)은 이번 '예산시장 살리기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위해 약 1년 6개월을 더 공들였던 지원자였다. 이번 프로젝트가 예산군 거주자로 한정되다 보니, 지원 자격을 충족시키기 위해 연고지 없는 곳에서 홀로 생활을 감행한 것.
그는 "더본에서 2년간 서포터즈로 활동하면서 '예산시장 살리기 프로젝트'를 알게 됐다"고 했다. 그는 "조리학과에 다니면서 내 가게를 개점하는 게 목표였다"며 "장사하는 것도 배우고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아서 프로젝트에 지원하게 됐다"고 밝혔다.
서울에 있는 가족과 떨어져 있지만, "주변 상인들이 많이 챙겨줘서 어려운 점은 없다"고 웃어 보였다. 영업 2시간 전부터 준비하고, 장사 시작 후에는 몰리는 손님들에 일손이 부족할 지경이지만 꿋꿋이 국수를 마는 그의 뒷모습에서 진심이 전해졌다.

예산군 토박이 양정모 신광정육점 사장(남·45세)은 이전에도 횟집 등을 운영했던 이른바 '프로'다. 그런 양 사장조차도 '예산시장 살리기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장사의 기초부터 다시 다져야 했다. 그는 "다른 체인점들의 컨설팅보다 더 체계적이고, 장사 노하우 지원을 풍부하게 해주고 있다"며 "(영업 시작한 지금도) 일대일로 관리해주고 평가하고 있다"고 했다.
신광정육점은 시장 한가운데에 있다. 그러다 보니 양사장은 지난 3일간 시장 방문객이 확실하게 증가한 걸 체감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시장 분위기가 좋고, 다른 곳보다는 가격이 저렴해 사람들이 몰리는 것 같다"며 "사람이 많아 준비한 재료가 모두 동났었다. 주말에는 지원군이 와서 도와주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깔끔해진 시장에 활력 되찾자
반발하던 기존 상인도 만족
대기업과 소상공인 공생의 장
'예산시장 살리기 프로젝트' 초반에는 기존 상인들의 반발이 거세 사업 진행에 어려움이 많았다. 이상식 사무국장은 "개인이 운영하는 시장이다 보니 협조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그나마 상인회랑 예산군, 더본이 소통하면서 노력하다 보니 상인들이 시장의 변화를 인정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상인들은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니, 시장의 분위기가 활력을 되찾았다는 반응이다. 40년간 이불가게를 운영해 온 이평자 씨(여·72세)는 "오고가는 아이들과 사람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며 "주변 상인들의 반응도 다 좋다"고 전했다.
백종원표 골목 시장이 개업한 지 3일이 채 되지 않았지만, 상권이 살아났다는 걸 체감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특히 먹거리 상권이 많이 좋아졌다"며 "백종원 씨로 인해 찜닭도 홍보가 많이 되다보니 사람들도 많이 온다"고 했다.
반면 시장 리모델링 때 상점의 특징이 반영되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도 나왔다. 건어물을 취급하는 안흥순 대흥상회 사장(여·71세)은 "리모델링 이후 전에는 골목이 환했는데, 지금은 컴컴하다"며 "우리 같은 건어물 상점은 환해야 하는데, 컴컴하면 누가 여기 와서 물건을 사느냐"고 호소했다. 본래의 백색등이 주광등으로 바뀌면서 건어물의 질이 떨어져 보인다는 것.

그런데도 안 사장은 시장의 변화를 반기고 있었다. 그는 "예산시장의 리모델링 사업 덕분에 상점의 출입문이 바뀌었다"며 시장 환경이 점점 나아졌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대기업과 시장 소상공인의 상생 첫걸음을 뗀 '예산시장 살리기 프로젝트'는 예산군에서도 관심을 가지는 사업 중 하나다. 예산군청의 '2023년 예산상설시장 오픈스페이스 조성사업'에 따르면 '예산시장 살리기 프로젝트'에만 총 36억원의 사업비(국비 5억·충청도비 5억·예산군비 26억)가 소요됐다.
12일 예산상설시장이 '2022 특성화 첫걸음 기반조성사업'에 최종 선정되기도 했다. 이에 예산시장은 활력을 되찾아 더 많은 사람이 찾는 시장으로 변모해 나아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