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만기의 은퇴생활백서]
30대에 세상 떠난 여성의 소원은
"나도 한번 늙어보고 싶다"
하루하루 감사하며 묵묵히 살아 갈 일

한 농부가 열심히 노력해서 마침내 부자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일을 그만하고 좀 쉬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아뿔싸 그날 밤 저승사자가 찾아온 겁니다. 그는 갑작스러운 사태에 당황해서 신에게 따졌습니다. 미리 알려주지도 않고 이렇게 갑자기 저를 데려가면 어쩌냐고요. 자신은 그동안 일만 하다가 이제부터 좀 쉬려고 했는데 너무 억울하다고 하면서요. 신은 그에게 벌써 오래전부터 예고를 했다고 반문합니다. 내가 너의 머리를 세게 했고, 눈을 흐리게 했으며, 주름도 깊이 파이게 하는 등 미리 알려주었다는 겁니다.

위의 이야기가 꼭 부자에게만 한하겠습니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오랫동안 직장생활을 마치고 비로소 느긋이 인생 2막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에게도 올 수가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갑자기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의 부고가 종종 올라오곤 합니다. 의학의 발달로 평균수명이 늘어나 누구나 팔십까지는 살 줄 알았는데 주위를 둘러보면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암으로 투병하는 친구도 평균수명까진 큰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고 고백합니다.

부자가 자신의 곳간을 채우고, 휴식을 기다릴 때 그의 시간은 끝난다. /게티이미지뱅크
부자가 자신의 곳간을 채우고, 휴식을 기다릴 때 그의 시간은 끝난다. /게티이미지뱅크

그런데 80은커녕 30대에 세상을 떠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대장암 말기 진단을 받고 36세의 나이로 숨진 영국 극작가 샬롯 키틀리가 그런 경우입니다. 그에게 닥친 상황을 보면 평균수명을 살지 못했다고 툴툴거릴 일도 아닙니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블로그에 삶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하는 감동적인 글을 게재했습니다.

"살고 싶은 나날이 저리 많은데 저한테는 허락되지 않네요. 내 아이들 커가는 모습도 보고 싶고, 남편에게 못된 마누라도 되면서 늙어보고 싶은데 그럴 시간을 안 줍니다"라며 글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6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고 22개월 살았습니다. 그렇게 1년을 보너스로 얻은 덕에 아들의 초등학교 입학 첫날 학교에 데려다주는 기쁨을 품고 갈 수 있게 됐습니다. 또 녀석의 첫 번째 흔들거리던 이가 빠진 기념으로 자전거를 사주러 갔을 때는 정말 행복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아들의 초등학교 입학 첫날 학교에 데려다주는 기쁨을 품고 갑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아들의 초등학교 입학 첫날 학교에 데려다주는 기쁨을 품고 갑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이어 "중년의 복부 비만, 늘어나는 허리둘레 한번 가져봤으면 좋겠습니다. 하얗게 센 머리카락 한번 뽑아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만큼 살아남는다는 이야기니까요. 나도 한번 늙어보고 싶습니다"라는 소망을 전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부디 삶을 즐기면서 사세요. 두 손으로 삶을 꼭 붙드세요. 여러분이 부럽습니다"라며 글을 마쳤습니다.

아직 30대에 불과한 그의 소원에 비추어보면 지금까지 늙어온 것만 해도 감사할 일입니다. 새해가 돼서 그런지 요즘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생각이 많습니다. 오래전 기자들이 가톨릭의 장익 주교를 인터뷰하다가 젊은이들을 위하여 한 말씀 해달라고 청탁한 적이 있습니다. 장 주교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잠시 후 어느 스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겠다며 이렇게 답했습니다.

'그냥 살아.'

여기서 어느 스님은 조계종 종정을 역임했던 서암 홍근 스님입니다. 스님이 돌아가실 때 제자들에게 남긴 게송이 바로 그 말이었습니다. 책을 보니 13세기 가톨릭의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도 신자들에게 유사한 얘기를 남겼습니다. 종교는 달라도 영성이 높은 사람들의 생각은 같은가 봅니다.

어느 스님의 말씀, 그냥 살라. /게티이미지뱅크
어느 스님의 말씀, 그냥 살라. /게티이미지뱅크

그보다 훨씬 전에 이와 같은 질문에 답을 구한 사람이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4000 년 전 기록으로만 남아 있는 수메르 왕조의 길가메시 서사시가 그것입니다. 길가메시는 온갖 부를 누리다가 가까운 친구의 죽음을 보고 그도 죽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 인간이 신처럼 죽지 않는 방법이 있는지 신을 찾아갑니다. 혹시 사람도 불로장생할 수 있는 약이 있나 하는 생각을 가지고요. 우여곡절 끝에 신을 만나지만 결국 약은 구하지 못하고 신으로부터 인간은 어쩔 수 없으니 그냥 살라는 답을 얻고 돌아옵니다.

먼저 살았던 어른들의 말씀을 들어 보면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너무 애쓸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을 찾으려고 애를 쓰다가 자칫 삶 자체를 놓칠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심오한 문제는 불가사의한 그대로 놔두고 그저 하루하루 범사에 감사하며 주어진 삶을 그냥 묵묵히 살아가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참고로 아래는 12세기 이슬람의 현인이 쓴 글입니다.

"젊은 날 성현들을 찾아다니며 이것저것 높은 말씀 들어봤건만 언제나 같은 문을 출입했을 뿐 나 자신 깨우친 것 하나도 없었네. 성현들과 더불어 지혜를 씨뿌리고 내 손수 공들여 가꾸어 보았지만 마침 거둔 것은 다음 한 마디. 나, 물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가노라."

 

관련기사

저작권자 © 여성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