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만기의 은퇴생활백서]
요양원에 가지 않으려면
노후 계획 단단히 세워야

90대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신 지인이 있는데 거동이 어려운 모습을 보고 올 때마다 마음이 좋지 않다고 호소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어머니처럼 연명하고 싶지 않다고 한다.

물론 자식으로선 어머니에게 차마 그런 말을 하진 않는다. 그러나 만약 그도 나이가 든다면 지금의 어머니처럼 요양원에 갈지도 모를 일이다. 그의 자식이 마찬가지로 그를 요양원에 입원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하지 않으려면 지금부터라도 가족에게 자신의 의견을 전하고 노후 계획을 단단히 세워야 한다.

이웃 중에 100세 노인이 있다. 언젠가 그의 아들이 아버지의 손을 잡고 산책하는 걸 보고 노인의 나이를 물었더니 100세라고 해서 알았다. 지난해만 해도 걸음걸이가 괜찮았는데 올해는 걸음도 느리고 보폭도 눈에 띄게 적어졌다. 그래도 100세 노인이 이렇게 외출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하루는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아들에게 '아버지가 장수하셔서 좋겠어요'라고 덕담을 보냈더니 그가 그렇지 않다고 한다. 이제는 그만 가셨으면 좋겠다는 그의 표정에서 나이 든 어르신을 집에서 봉양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느낄 수 있었다. 아마 노인도 조만간 요양원에 입원할 가능성이 크다.

 

요양원에서 생을 마감하지 않으려면 지금부터라도 가족에게 자신의 의견을 전하고 노후 계획을 단단히 세워야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요양원에서 생을 마감하지 않으려면 지금부터라도 가족에게 자신의 의견을 전하고 노후 계획을 단단히 세워야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요양원에 입원하는 자체가 나쁘다는 건 아니다. 다만 영리를 목적으로 운영하다 보니 시설이 낙후된 곳이 많고 훈련된 인원도 모자라 일부 요양원은 노인이 거주하기 불편한 게 사실이다. 요양원 직원이 거동이 어려운 노인에게 밥을 급히 먹이다가 질식사한 일도 있다. 물론 시설이 좋은 국공립 요양시설도 있긴 하다. 그러나 그 수가 너무 적어 입원하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와 같다.

오래전 중동 건설현장에 나가 모래바람 속에서 돈을 벌어 우리나라를 중진국으로 도약시키고 아프리카에서 TV를 팔아 가족을 먹여 살렸던 우리 어른들의 마지막을 이렇게 보내드려야 할까. 부모님이라 생각하지 말고 나는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고 싶은가를 상상하면 답을 쉽게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은 어떤 죽음을 원하고 있을까.

서울대병원 윤영호 교수팀이 환자 1001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환자들은 다른 사람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죽음, 가족 친지와 함께 하는 죽음, 주변 정리가 마무리된 죽음, 고통받지 않는 죽음 등을 좋은 죽음으로 꼽았다. 집에서 봉양을 받는 환자나 요양원에 입원한 환자들 역시 위와 같은 소망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이와 같은 죽음을 선택하기가 쉽지 않다. 자칫하다 자살방조죄로 입건될 수도 있다.

 

서울대병원 윤영호 교수팀이 환자 1001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환자들은 다른 사람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죽음, 가족 친지와 함께 하는 죽음, 주변 정리가 마무리된 죽음, 고통받지 않는 죽음 등을 좋은 죽음으로 꼽았다. /게티이미지뱅크
서울대병원 윤영호 교수팀이 환자 1001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환자들은 다른 사람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죽음, 가족 친지와 함께 하는 죽음, 주변 정리가 마무리된 죽음, 고통받지 않는 죽음 등을 좋은 죽음으로 꼽았다. /게티이미지뱅크

지난 5월 안규백 국회의원이 조력존엄사법을 발의했다. 내용인즉 호스피스·완화 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을 일부 개정하여 우리나라에서도 위와 같은 죽음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런 법률 개정안이 언론에 공개되자 종교계에서는 즉각 우려를 나타내며 법 제정에 반대의 뜻을 표명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는 "인간 생명은 마지막 순간까지 스스로이든 타인에 의해서든 침해할 수 없는 신성함을 지니고 있음"을 강조하고 "말기 환자의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줄이고, 존엄하고 품위 있는 임종을 돕기 위해 필요한 것은 공동체의 관심과 돌봄이지 생명을 단축하는 행위가 아니다"라며 비판했다.​ 생명위원회는 이 법안에는 가족에게 경제적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원하지 않는 결정'을 초래하는 등의 오남용이나 부작용의 위험도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가 말기 환자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한 대안으로 호스피스와 완화의료 지원을 확대해 환자가 고통 없이 마지막 순간까지 인격적 돌봄을 받을 수 있도록 정책과 법률을 만들기를 촉구한다고 했다.​

과거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을 제정할 때도 늘 대두되는 것이 호스피스 완화의료의 확대다. 천주교 측 뿐만 아니고 말기 환자를 케어하는 여러 관계자가 이를 주장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여론이 공염불에 그치고 있다. 지난 정부에서 대대적인 건보 보장률 확대로 MRI·초음파 진료비가 1조8000억원이 넘는데 반해 호스피스 지원 예산은 90억원대에 불과한 것이 이를 말해 준다. 최근에는 그나마 부족한 호스피스 병동을 코로나 진료를 위한 시설로 용도를 바꾸어 호스피스 진료가 더욱 어렵게 되었다.

 

지난 5월 안규백 국회의원이 조력존엄사법을 발의하자 천주교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는 "인간 생명은 마지막 순간까지 스스로이든 타인에 의해서든 침해할 수 없는 신성함을 지니고 있음"을 강조하고 "말기 환자의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줄이고, 존엄하고 품위 있는 임종을 돕기 위해 필요한 것은 공동체의 관심과 돌봄이지 생명을 단축하는 행위가 아니다"라며 비판했다.​ /게티이미지뱅크
지난 5월 안규백 국회의원이 조력존엄사법을 발의하자 천주교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는 "인간 생명은 마지막 순간까지 스스로이든 타인에 의해서든 침해할 수 없는 신성함을 지니고 있음"을 강조하고 "말기 환자의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줄이고, 존엄하고 품위 있는 임종을 돕기 위해 필요한 것은 공동체의 관심과 돌봄이지 생명을 단축하는 행위가 아니다"라며 비판했다.​ /게티이미지뱅크

호스피스 완화의료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공감하지만 이런 상황을 보면 짧은 기간에 호스피스 완화의료가 확대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러는 와중에 지금도 많은 환자가 현행 의료 시스템에서 고통을 받으며 죽어가고 있다. 그러므로 조력존엄사가 우선이냐, 호스피스 완화의료 지원이 우선이냐를 가릴 것이 아니라 두 가지 대안을 동시에 추진할 것을 제안한다.

일부 사람들은 조력존엄사가 도입되면 그 부작용으로 천주교 생명위원회의 주장처럼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이 원하지 않는 결정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그러나 조력존엄사와 유사한 안락사를 도입한 미국의 사례를 보면 학력이 높고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백인이 훨씬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그러므로 부작용을 우려하는 지적은 기우임을 알 수 있다.

풍진 세상을 살아가는 일도 쉽지 않지만 죽는 일도 어렵다. 세상에 태어날 때 주위 사람의 도움을 받는 것처럼 죽어갈 때도 역시 주위의 도움이 필요하다. 남의 일로만 여기고 막연히 뒤로 미룰 일이 아니라 나라면 어떤 죽음을 원할까를 생각해보고 서로 탁자를 맞대고 이 문제를 논의해야 할 때다. 생을 마무리해야 하는 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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