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물로 여기는 것이 스토킹 시작
가해자 면피용 불과한 반의사불벌죄
허민숙 "스토킹 범죄 해결책은 평등"
유튜브 채널 '여경TV'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의 충격이 채 아물기도 전인 지난해 9월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스토킹 처벌법 시행으로부터 만 1년을 바라보던 순간이었다. 법으로조차 막을 수 없었던 스토킹 비극 사건에 대해 "남녀 간 불평등이 원인"이라고 외치는 이가 있다.
여성경제신문은 지난달 14일 여성학 전문가 허민숙 씨를 만나 대한민국의 스토킹 범죄 민낯과 근본적인 해결 방법에 대해 알아봤다. 허씨는 미국 오하이오주립대학교에서 여성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서울대 여성연구소의 선임 연구원과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소에서 연구 교수를 지낸 바 있다.
허씨는 현재 국회에서 입법조사관으로 재직 중이며, 여성가족부 소관인 가족·청소년 문제를 담당하고 있다. 이 외에도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자문을 맡는 등 본인의 전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ㅡ 여성학을 전공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1992년에 발생했던 김보은, 김진관 사건이 여성학을 전공하게 된 계기가 됐습니다. 국민 모두에게 충격적이었지만 특히 20대인 저에게 매우 충격적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약 12년 동안 김보은 씨를 강간한 계부를 그의 남자친구인 김진관 씨가 살해한 사건으로 이후에 이 사건을 계기로 성폭력 관련 특례법이 제정됐다.)
ㅡ 스토킹 범죄의 원인은 뭔가요.
"연인이나 부부로 만났다면 좋은 것과 슬픈 것들을 공유하고 나누는 동반자입니다. 하지만 스토킹 범죄는 마치 서열을 가지고 누군가는 명령·지배·통제하고 누군가는 복종·수긍하는 관계 속에 있는 게 원인이죠.
만약에 정말 평등한 관계여서 상대방을 존중하는 자라면 자기가 원하지 않는 이별을 당했다고 하더라도 그걸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이걸 못 받아들이는 자들은 '네가 감히 나한테 이별을 통보하니 처벌하겠다'고 나오죠."
ㅡ 신당역 살인 사건 외에도 스토킹의 피해자가 여성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 이유는.
"성별 권력관계 때문입니다. 남성들이 자신과 사귀던 상대에게 이별을 통보했다고 해서 살해를 당하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혹은 남성들이 이별을 통보하고서 그 후에 굉장히 불안해하거나 죽는 거 아니냐는 경각심을 가지고 생활하는 경우는 드물죠.
왜 여성들이 압도적인 피해자가 되는지 살펴보면, 스토킹 범죄는 친밀한 관계의 여성에 대해 '내 소유이기에 내 말을 들어야 하고, 내가 통제권을 가지고 있다'는 남성의 인식에서 발생합니다. 이게 남녀가 평등하지 않은 사회라는 것을 얘기하는 거죠."
ㅡ 한국 여성의 지위는 어떠한가요.
"한국 사회가 성적으로 평등한 사회인지 판단했을 때 오히려 역차별인 사회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관련 지표와 여러 여성이 피해자가 되는 범죄에 대한 처벌 등을 살펴볼 때 우리나라가 성 평등한 사회라고 얘기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공식적으로 세계경제포럼에서 매년 조사하고 있는 성 격차 지수에서 우리나라가 항상 대기권 밖이었다가 이번에 99위를 차지했습니다. 이런 객관적인 지표로도 우리나라가 성 평등한 국가라고 하기 어렵죠."

ㅡ 스토킹 처벌법의 반의사불벌죄는 폐지되어야 하나요.
"반의사불벌죄는 피해자가 고소 유무를 결정하도록 하여 가해자가 피해자를 협박할 수 있도록 하는 문을 열어놓았습니다. '고소 취하하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면서 이제 피해자를 협박하는 용도로 사용되던 문제가 많은 독소 조항이었죠. 따라서 반의사불벌죄가 폐지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무엇보다 스토킹 범죄의 핵심은 가해자를 제재하는 거죠. 피해자를 보호한답시고 스마트워치를 지급하고, 피해자에게 조심하라고 당부하는 것보다는 가해자를 처벌하고 훈계하는 게 매우 중요합니다.
지금까지 여성들이 피해자가 됐던 데이트 폭력은 법도 없고, 가정폭력 같은 경우에도 반의사불벌죄가 그대로 살아 있어 가해자를 제대로 처벌하지 않았습니다. 가해자를 처벌하지 않으면 '내가 그렇게 심각한 일을 저지른 게 아니구나'라는 잘못된 메시지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 차원에서라도 관용은 없어야 합니다. 친밀한 관계에서 일어난 일이라면 더 심각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원칙을 세워야 합니다."
ㅡ 스토킹 범죄 예방법이 있나요.
"어떻게 딱 알고서 스토킹 가해자를 안 만날 수 있냐는 질문을 많이 하지만, 알 수 없습니다. 처음에는 호감을 가지고 다가오기에 굉장히 친절하고 배려 깊게 잘해주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 통제 자체를 어떤 애정의 표현으로 착각하기도 합니다. '네가 걱정돼서 그래', '네가 염려돼서 그래', '너를 보호하고 싶어' 이런 식으로 상대방을 통제하죠.
근데 이런 통제는 어떤 경우라도 해서는 안 됩니다. 본인에게 일어나는 일은 본인이 결정해야 한다고 자녀들을 양육하는 게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자기 일을 다른 사람이 결정하지 않도록 또한 보살핌이나 보호의 이름으로 나의 일상의 통제권을 누군가가 뺏어가지 않도록 자녀에게 어린 시절부터 교육해야 합니다."
ㅡ 스토킹 범죄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있다면.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도 피해자를 보호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지만 가장 근원적인 목표 지점이자 우리가 달려야 할 지향점은 결국 평등한 사회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여성 혐오를 가진 남성들이 과하게 대표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치 모든 20대 남성이 여성에게 적대적인 걸로 여겨지는 것이 우려됩니다. 현실에서 여성들을 존중하면서 함께 공존하려는 젊은 청년들이 매우 많은데, 이들을 별로 주목하지 않고 여성을 혐오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도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ㅡ 앞으로의 계획은.
"사실 계획이 별로 없습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살아와 보니까 계획이라는 것이 별로 중요하지 않더군요. 무엇보다 삶이 계획대로 되지도 않았고요. 하지만 늘 마음속에 품고 있는 생각은 지금 나에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해야겠다는 것입니다. 그게 나의 삶의 방식이고, 이것이 계획이라면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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