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실협상 속 지도부·예결위원 등 지역구 예산 증액

24일 새벽 국회 본회의에서 2023년도 예산안이 의결 통과된 뒤 본회의장 문이 닫히고 있다. /연합뉴스
24일 새벽 국회 본회의에서 2023년도 예산안이 의결 통과된 뒤 본회의장 문이 닫히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의 첫 예산안이 법정시한을 22일 넘긴 지난 24일 새벽 국회 문턱을 넘었다. 2014년 국회선진화법 시행 이후 ‘최장 지각 처리’라는 오명을 기록한 가운데, 여야 지도부 및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들에게 지역구 예산 몰아주기가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이날 국회에서 확정된 내년도 예산의 총지출 규모는 638조7000억원으로 정부안(639조원)보다 3000억원 줄었다. 국회 심사 이후 정부 예산안이 감액된 것은 2020년 이후 3년 만이다. 

반면 여야 실세 의원들은 정부안에 없던 지역구 예산을 챙겼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올라온 예산안 수정안에 따르면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충남 공주·부여·청양)은 세종시와 공주역을 잇는 광역 BRT(간선급행버스) 구축 사업에 정부안 43억8000만원에서 14억원을 추가 확보했다. 동아시아 역사도시 진흥원 건립 12억5000만원 등 정부안에 없던 신규 예산도 다수 확보했다. 

예결위 여당 간사인 이철규 국민의힘 의원(강원 동해시·태백시·삼척시·정선군)은 동해신항(석탄부두) 관련 예산을 당초 정부안 360억9800만원보다 5억원 증액했다.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충남 서산시·태안군)은 대산~당진 고속도로 건설 예산 80억원을 확보했다. 

이른바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핵심 관계자)들의 지역구 예산도 정부안보다 늘었다.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강원 강릉시)은 지역구 내 하수관로 정비에 총 25억원을 확보했고,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부산 사상구)은 두 건의 재해위험지구 정비 사업 예산을 정부안보다 23억4500만원 증액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예외는 아니다. 위성곤 원내정책수석부대표(제주 서귀포시)는 정부안에 없던 서귀포시의 유기성 바이오가스화 사업 예산으로 62억2200만원을 추가했다. 예결위 야당 간사인 박정 의원(경기 파주시을)도 정부가 편성하지 않은 파주 음악전용공연장 건립 예산 30억원을 확보했다. 

이처럼 여야 주요 의원들의 지역구 증액 행렬이 이어지면서 ‘지역 민원’이 몰리는 국토교통부와 환경부 관련 지역 증액예산만 각각 3505억원, 1438억원에 달했다. 

일부 의원들이 지역 예산을 확보했다는 홍보자료를 내놓고 있지만, 예산이 어떤 과정을 거쳐 배정됐는지는 불투명하다. 예결위 소위는 지난 11월 17~29일 8차례 회의를 열었지만 ‘감액 심사’도 마치지 못한 채 활동을 끝냈다. 이후 증액 심사는 회의록조차 없는 2+2 협의체, 여야 원내대표 비공개 회동 등 밀실 협상을 통해 이뤄졌기에 ‘쪽지 예산’이 되풀이됐을 가능성이 높다. 

국회혁신자문위원회가 지난 2020년 5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쪽지예산’이란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의원들이 자신의 지역구 예산 증액을 위해 민원을 적은 ‘쪽지’를 건네서 예산에 반영하는 것을 의미한다. ‘소(小)소위’는 회의 기록이 남지 않아 논의 과정을 알 수 없기에 사업 타당성 자체를 검증받을 수 없는 쪽지 예산의 창구로 통했다. 

여야의 밀실 소소위는 해마다 반복되고 있다. 지난해의 경우 소소위를 통해 정부 원안에 없는 사업이 76개 추가됐다. 이 중 지역의 도로와 철도 사업 같은 사회기반시설(SOC) 사업은 16개로 사업당 평균 175억6000만원씩 증액됐다. 예산이 100억원씩 똑같이 불어난 도로·철도 사업도 7개다.

당시 양당 원내대표의 지역구 예산도 증가했다.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의원(경기 구리)의 지역구 사업인 태릉~구리 광역도로 건설에는 38억원이 새로 편성됐으며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울산 남구) 지역구에는 울산 석유화학단지 통합파이프랙 구축에 17억원이 새로 편성됐다.

매년 반복되는 밀실 협상과 쪽지 예산을 근절하기 위해 2020년 문희상 당시 국회의장이 발의한 국회법 개정안에 “소위원회가 아닌 회의 형태로 예산안을 심사할 수 없도록 한다”는 내용을 담았지만 20대 국회 회기가 끝나면서 폐기됐다. 더불어민주당이 21대 국회 들어 다시 마련한 ‘일하는 국회법’(국회법 개정안) 초안에는 소소위 회의록을 공개하는 내용이 포함됐으나 이마저도 최종안에는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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