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나는 조손가정 사실상 무방비 대처
부모 이혼·사망으로 조부모가 아이 돌봐
청소년과 고령층 전부, 경제 활동 불가능
정보 습득 떨어져 지원 사업 있는지 몰라

말도 못하고 글도 모르는 외할머니와 일곱살 도시 아이 상우가 난생 처음 동고동락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 '집으로'. 해당 영화는 '조손가정'의 실상을 보여 주는 영화로 평가받고 있다. /영화 '집으로' 스틸컷
말도 못하고 글도 모르는 외할머니와 일곱살 도시 아이 상우가 난생 처음 동고동락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 '집으로'. 해당 영화는 '조손가정'의 실상을 보여 주는 영화로 평가받고 있다. /영화 '집으로' 스틸컷

# 중학생 외손자와 함께 살아가는 80대 노부부는 정부에서 운영하는 가족역량지원사업 서비스를 받기 위해 관련 부서에 전화를 걸었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경제 활동은 전혀 할 수 없는 상황. 30만~50만원이라도 받기 위해 부푼 마음으로 전화를 걸었지만 돌아오는 상담원 대답은 "앱 깔거나 인터넷으로 신청하시면 돼요"가 전부였다. 

사회적 관심이 절실한 소외계층은 정부의 탁상행정에 한 번 더 좌절한다. 지원 사업이 버젓이 있는데도 신청할 방법을 몰라 다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도 얹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29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해 보면 조손가정은 최근 한국 사회가 마주한 고령화 시대에 가정 해체까지 이어진 대표적 사례다. 만 18세 이하와 65세 이상이 한 구성원인 가정을 조손가정이라 부른다. 이들 가정의 가장 큰 문제는 경제 상황이다. 정상적인 경제활동이 가능한 인원이 가족 중 단 한 명도 없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최근 7년여간 조손가정은 매년 증가 추세다. 2015년 약 11만 3100가구에서 2017년 16만 2100여 가구, 지난해엔 약 21만 가구가 조손가정으로 조사됐다. 오는 2030년엔 조손가정이 국내에 27만여 가구, 2035년에는 약 32만 가구로 늘어날 전망이다. 

어릴 적 부모의 이혼, 사망 등으로 인해 친할머니 혹은 외할아버지 등 조부모와 함께 살아가는 청소년은 경제 활동을 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나이가 많은 조부모가 병에 걸리면 직접 돌봐야 하고 조부모는 힘든 몸을 이끌고 돈을 벌 수도 없는 등 정상적인 경제 활동을 할 수 없는 여건에 놓여 있다. 

지난해 조손가정 월평균 소득은 110만원가량인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 하위 20%인 1분위 가정 기준 생계급여와 기초연금을 모두 합친 규모다. 그나마 전과 비교해 나아진 수준이다. 2017년 조손가정 월평균 소득은 100만원도 채 안 되는 97만원 수준이었다. 

이마저도 못 벌어들이는 일명 저소득 조손가정 비중도 늘었다. 2017년 월 85만원도 못 버는 조손가정 비중은 전체 조손가정 중 8.2%였지만 2021년 9.2%로 약 1% 증가했다. 

폐지 줍는 할머니 / 연합뉴스
폐지 줍는 할머니 / 연합뉴스

조손가정은 심리적 압박감도 일반 가정에 비해 상당하다. 나이가 있는 조부모가 손자 혹은 손녀의 돌봄 문제로 받는 스트레스는 상당하다. '당장 내가 죽으면 이 아이들은 누가 돌보나'하는 고민이 심리적 압박감으로 이어진다. 2020년 한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연구진이 조손가정의 심리적 변화를 분석한 결과 국내 조손가정의 72%가 '자살충동'을 느꼈고 81%는 우울감을 느낀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8월엔 대구에서 90대 조부모와 함께 거주했던 10대 형제가 친할머니를 살해하는 불상사도 발생했다. 구성원 간 나이 차이가 워낙 많은 조손가정 내에서 발생하는 가정사를 지역사회가 미리 막지 못해 발생한 참사였다. 

더 큰 문제는 정부에서 지원하는 사업이 있어도 이를 모르거나 신청하는 방법을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란 점이다. 조손가정은 정보 습득력이 상대적으로 열악하기 때문이다. 65세 이상 조부모가 스마트폰이나 인터넷 등에 익숙하지 않고 거동이 불편한 경우도 많아 직접 지원 사업을 신청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힘들다. 

신정찬 한국아동복지협회 회장은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조손가정 조부모가 정부에서 지원하는 사업을 일일이 찾아서 신청하는 것은 현장에선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라며 "주민센터 등에 직접 찾아가서 신청하는 방법도 있지만 대부분 건강이 안 좋거나 걷기 힘든 경우가 많고 특히 요즘엔 인터넷 등으로 신청하는 경우가 많은데 조손가정에서 IT에 익숙한 사람을 찾기도 힘들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조손가정을 돌보는 관련 정부 기관이 직접 지자체를 통해 관할 구역 조손가정을 조사하고 찾아가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문 돌봄' 시스템이 정착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일각에서 나온다. 

하지만 정부에선 개인정보 보호 규정을 이유로 힘들다는 입장이다. 가족역량지원사업을 지난해 진행한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본지에 "직접 조손가정을 찾아 대리 지원 등 업무를 진행하기 위해선 개인정보를 침해해야 가능하다"며 "물론 지역사회 단체 등을 통한 방문 돌봄 서비스도 진행하고 있지만, 디테일한 정부 지원 사업 등을 정부가 대신해 진행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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