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자금 시장 위축 기업 재무 악화 가속
롯데그룹‧한화손보‧티웨이‧아시아나 근심
거래소, 내달부터 상장사 퇴출 기준 완화

채권시장 경색으로 회사 자금줄이 말라붙자 대기업과 상장사도 비상이다. 내년 경기 침체로 영업활동이 위축되면 재무 상황이 더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구조조정도 본격화될 전망이다.
21일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앞으로 경기침체에 따라 영업활동을 통한 현금 유입이 줄어들고 자금시장 경색으로 외부자금 조달이 어려워지면 구조조정 대상 기업들이 늘어날 것"이라며 "내년 2∼3분기가 본격적으로 한계 기업들이 발생하는 고비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시장에선 경기 침체로 영업활동이 위축되면 기업 재무 상황이 더 나빠질 것으로 보고 있다. 내년부터 본격화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상장사들도 미리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미 단기자금 시장 위축으로 기업들의 재무 악화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는 우려는 이전부터 불거졌다.
최근 롯데그룹은 부동산시장 위축과 단기 자금시장 악화 속에 인수·합병(M&A) 자금 마련까지 겹쳐 재무 부담이 커지면서 우려를 낳고 있다. 자금경색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계열사 하나가 그룹 전체를 경영난에 빠지게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롯데케미칼이 대표적인 예다. 롯데건설에 6000억원을 지원하면서 자금 부담이 생겼고 지난 18일 1조1000억원 규모의 주주 배정 방식의 유상증자를 결정했다고 공시했다. 롯데케미칼은 2조7000억원 규모의 일진머티리얼즈 인수 자금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롯데건설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상환을 앞두고 계열사들과 은행에서 1조5000억원가량을 확보했다. 최대 주주인 롯데케미칼은 5800억원가량을 투입했고 롯데케미칼의 연결 자회사인 롯데정밀화학도 건설에 3000억원을 빌려준 상황이다.

앞서 나이스신용평가는 롯데케미칼과 롯데지주, 롯데렌탈, 롯데캐피탈의 장기 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Negative)으로 조정했다.
코스피 상장사도 불안 자본잠식 우려 ‘비상’
한화손보·티웨이·아시아나 잠식률 50% 넘어
중대형 기업 중심의 코스피 상장사 중에서도 3분기 기준으로 부분 자본잠식 상태에 놓인 곳들이 나와 우려를 더한다. 거래소가 유가증권시장(코스피) 상장사들이 제출한 3분기 사업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3분기 말 기준 9개 상장사의 자본이 일부 잠식된 것으로 집계됐다.
거래소 관리종목 지정 등 기준에서 자본잠식 항목은 최근 사업연도 말 기준으로 자본금의 100분의 50 이상이 잠식된 경우에 해당한다. 종속회사가 있는 법인은 연결 재무제표상 자본금과 자본총계(비지배지분 제외)를 기준으로 요건을 적용한다.
한화손해보험은 3분기 말 기준으로 보면 자본금은 7737억원, 지배지분 자본총계는 513억원으로 표면적으로 93.3%가 잠식된 것으로 계산됐다. 비지배지분을 포함한 자본총계는 1662억원이다.
그러나 연말이 아닌 3분기 기준인 데다 채권 재분류에 따른 착시 효과라고 회사 측은 해명했다. 한화손보 측은 "채권 재분류 영향으로 금리가 상승해 자본 잠식으로 보이는 회계상 착시 효과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이어 “3분기 833억원의 순이익을 올린 데다 기초여건(펀더멘털)도 견조한 상황이다. 현재 사옥 매각과 후순위채 발행, 증자를 추진하고 있다”며 “내년에 국제회계기준(IFRS17)을 적용하면 자기자본은 3분기 기준 3조760억원으로 늘어나 자본 상황은 더 좋아질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국내 항공사 재무 상황도 악화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여행객 급감의 타격이 여전한 것. 티웨이항공은 3분기 기준으로 자본금 961억원, 개별 자본총계가 318억원으로 자본이 66.9%가량 잠식된 것으로 집계됐다. 또 연결 기준으로 323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아시아나항공도 에어부산과 에어서울을 포함한 연결 기준으로 3분기 기준 자본 잠식률은 57.3%, 부채비율은 1만298%에 각각 이른다. 완전 자본잠식은 아니지만, 자회사 부채가 쌓이면서 4분기에도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외에도 유가증권시장에서 KR모터스(38.49%), 티비에이치글로벌(30.89%), 금호타이어(13.41%), HJ중공업(6.96%), 평화산업(5.41%), 아센디오(3.52%) 등 상장사도 일부 자본 잠식 상태로 나타났다.
투자자 보호 위한 상장사 퇴출 기준 합리화
다음 달부터 적용‧‧‧심사 통해 구제 기회 줘
기업 경영난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한국거래소는 기업 부담 완화와 투자자 보호를 위한 방안을 추진해 왔다. 이에 다음 달 초부터 상장사 퇴출 기준 합리화 방안을 적용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재무 관련 상장폐지 사유가 발생한 기업은 이달까지는 형식적 퇴출 대상이 되지만 다음 달부터는 실질 심사를 통해 상장적격성을 인정받으면 구제 기회를 얻게 된다.
개정안에서 상장적격성 실질 심사 대상 사유로 바뀐 퇴출 기준은 유가증권시장의 경우 △2년 연속 자본잠식률 50% 이상 △2년 연속 매출액 50억원 미만 등 2가지다.
코스닥시장은 △2회 연속 자본잠식률 50% 이상 △2회 연속 자기자본 10억원 미만 △2년 연속 매출액 30억원 미만 △2회 연속 자기자본 50% 초과 세전 손실 발생 등 4가지다.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여성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금리가 가장 큰 문제인데, 금리 자체를 기업부채나 가계부채 때문에 미국만큼 올리긴 역부족이다”라며 “한국은행은 물가와 자금이탈을 막기 위해 금리를 올리고 있지만 부작용도 상당히 크기 때문에 금리인상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라고 제언했다.
이어 “환율변동에 대한 보험 가입률을 올리거나 채권시장안정 펀드도 확대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며 “기업금융구제를 위해 대출한도를 지금의 105% 한도에서(은행권/ 비은행권 110%) 조금 더 올려, 기업이 자금을 운용하는데 숨통을 트여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