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협의체
박진, 방중서 우려 해소에 집중
전문가 "불이익 대비 단계적 접근해야"

박진 외교부 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4일 캄보디아 프놈펜 소카호텔에서 열린 아세안+3(한중일) 외교장관회의에서 기념촬영을 마친 뒤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진 외교부 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4일 캄보디아 프놈펜 소카호텔에서 열린 아세안+3(한중일) 외교장관회의에서 기념촬영을 마친 뒤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주도의 반도체 공급망 협의체인 ‘칩4’ 예비회의에 참석하겠다는 의사를 최근 미국 측에 전달하면서 정부의 외교 능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최근 고조되는 미중 갈등 국면에서 한국이 균형외교를 통해 국익을 도모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칩4(Chip4)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지난 3월 한국과 일본, 대만 3개국에 제안한 반도체 공급망 협의체다. 국내 반도체 산업은 미국과 일본 기업의 반도체 원천 기술과 생산설비 등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반도체 산업 육성은 정부가 경제난 극복 방안으로 제시한 바 있어 국제 교류를 통한 첨단 기술 확보가 필요한 상황이다.

정부는 일단 칩4 예비회의에 참여하기로 했지만, 중국의 반발을 고려해 칩4가 중국 등 특정 국가를 배제하는 모임이 되지 않도록 신중히 접근한다는 방침이다. 

한중수교 30주년을 맞이해 중국으로 출국한 박진 외교부 장관은 9일 칭다오에서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회담 및 만찬을 갖고 칩4를 비롯해 고도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대만해협 등 현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한다.

박 장관은 칩4와 관련 중국에 특정 국가를 공급망에서 배제하려는 의도가 아니라고 설득하는 데 주력할 전망이다. 그는 전날 출국 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만약 중국의 우려가 있다면 그것을 해소할 수 있도록 제가 설명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중국 측은 지역 및 글로벌 정세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최근 대만 방문과 이에 따른 역내 긴장 고조 상황을 거론할 가능성이 있다. 다만 한국은 일본 등과 다르게 대통령이 직접 펠로시 의장을 만나지 않았기 때문에, 회담 분위기는 화기애애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칩4 참여 여부를 두고 고심을 거듭하는 것은 벌써부터 중국의 견제가 거세기 때문이다. 중국은 사실상 자국을 배제하기 위한 동맹으로 규정하고 한국의 참여 여부에 대해 촉각을 세우고 있다. 미국은 반도체 설계 분야 최강국이지만 중국은 한국의 최대 반도체 수출국이다.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달 26일 정례 브리핑에서 "산업망과 공급망의 개방 협력을 강화하고 파편화를 방지하는 게 각국과 세계에 유리하다"며 "중국은 인위적으로 국제무역 규칙을 파괴하며 전 세계 시장을 갈라놓는 것을 반대한다"고 주장했다.

한편으로는 중국 관영 영자지 글로벌타임스가 이날 게재한 '한국이 독립적이고 자주적 외교를 지향하면 자연히 존중받는다'는 제목의 사설에선 입장 선회가 읽힌다. 

글로벌타임스는 한국의 칩4 가입에 대해 "부득이 미국이 짠 소그룹에 합류해야 한다면 한국이 균형을 잡고 시정하는 역할을 하기를 국제사회는 기대한다"며 "이는 한국의 독특한 가치를 체현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달 말이나 다음 달 초 열릴 것으로 보이는 칩4 예비회의에서는 세부 의제나 참여 수준 등이 구체적으로 조율될 전망이다.

전문가는 한국의 칩4 가입에 대해 신중함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우리나라의 대중국(홍콩 포함) 반도체 수출액은 지난해 기준 770억 달러로, 전체 반도체 수출에서 60%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재흥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이날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우리 반도체 수출의 상당액이 중국이기 때문에 이렇게 빨리 서두른 게 맞는지 의문"이라며 "조금 시간을 갖고 전반적인 걸 고려해 가면서 '스텝 바이 스텝'으로 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칩4에 가입한다고 하면 대중국 반도체 수출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그런 경제적 불이익에 대한 고려가 얼마만큼 있었는지 중요한데, 예를 들어 무역 보복이라든지 그 시장을 잃었을 때에 대한 대비책을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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