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은미의 보석상자] (4)
지인의 보석이 소환한 따뜻한 추억
아버지 이쑤시개, 내겐 소중한 보물
감정가보단 보석 담은 기억이 가치
이쑤시개가 있었다. 아버지의 유물인 재킷 호주머니 속에서 나왔다. 코끝이 찡해졌다. 2015년 2월 세상을 떠난 아버지에게 이쑤시개는 필수품이었다. 나무로 된 기성품 끝부분을 칼로 잘라 손수 원하는 모양을 만들어 쓰실 정도였다. 일요일 아침이면 식탁에 앉아 이쑤시개를 제작하곤 하셨는데 외출할 때는 항상 본인의 전용 이쑤시개를 휴대하셨다.
작고 보잘것없는 이쑤시개 하나가 필자에게 수많은 감정과 기억들을 소환했다. 수십 년 만에 장롱 서랍에서 패물을 꺼내본 지인도 비슷한 기분이었을 것이다. 보석을 소장하게 된 계기는 77년 인생을 살아온 지인에게 잔잔했던 일상 중 특별하고 소중한 추억들과 연결되어 있었다.

당초 지인은 보석을 값비싼 세팅 비용을 들여서 주얼리로 만들어 착용할지, 자녀들에게 나석으로 나눠 줄지, 어떤 등급인지 알고 결정하고 싶다고 했다. 지인의 보석은 모두 나석이었다. 나석은 연마된 상태의, 주얼리에 세팅되기 이전의 보석을 말한다. 나석을 세팅해서 반지, 목걸이 등으로 만든 것이 주얼리다.

하지만 비취라 믿었지만 비취가 아닌 보석 4개. 최상질이라 믿었지만 하급으로 판명 난 호주에서 사온 오팔 1개. 나머지 자수정 2개도 크기가 작아 가치가 높지 않았다. 보석 전문감정기관의 감정 결과, 애지중지 장롱 서랍에 간직해왔던 보석은 모두 수준 미달이었다. 이제 지인에게는 어떤 선택이 있을까.

나석은 디자인에 따라 무한한 변신이 가능하다. 아무리 최상급의 보석이라도 디자인이 떨어진다면 보석의 아름다움은 제대로 빛을 발하지 못한다. 반대로 질이 낮은 보석이라도 디자인을 잘해낸다면 아름다움과 가치를 배가시킬 수 있다.
실제로 주얼리 세팅은 하나의 돌을 작품으로 탄생시키는 과정이다. 디자인에서부터 금속을 깎고 다듬어 보석을 물려 실물을 구현해 내는 과정을 통해 주얼리로 만들어 져야 비로소 착용이 가능하게 된다.
이때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있다. 어떤 디자인으로 할 것인지는 물론 목걸이, 반지 등 어떤 품목으로 만들 것인지, 다른 보석을 추가해서 장식할 것인지, 어떤 금속으로 마무리할 것인지 등을 판단해야 한다. 디자인에 따라 비용이 달라지므로 전문가와 상의가 필요하다.

보석은 재테크 수단이기도 하다. 보석은 크기가 작고 외부 충격에 강해 보관과 이동이 용이하다. 또한 자녀에게 물려줄 때 증여세, 상속세를 피할 수 있다. 실제로 일부 부유층과 보석 컬렉터들은 착용 목적이 아닌 재산 증식과 투자의 목적으로 보석을 수집한다.
지인의 보석은 재산적인 가치는 아주 낮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대로 다시 태어나게 할 수는 있다. 비취 4개, 오팔 1개, 자수정 2개는 자녀들에겐 부의 대물림이라기 보다는 감성적인 가족의 유산으로 대물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보석의 등급은 실망스러운 결과지만 활용가치가 없진 않다.
과연 지인에게 시장에서 매겨지는 금액이 보석 가치의 전부를 말해주는 것일까?
보석감정원에서 최첨단 장비를 통해 드러난 감별 결과가 보석 가치의 전부일까?
앞서 예로 든 이쑤시개와는 비할 수 없는 소중한 순간이 담긴 귀한 패물이다. 금액으로 매길 수 없는 가치도 있다. 일상을 뒤로 하고 공기 좋고 풍경 좋은 호주 여행에서의, 남편의 선물이라는 무형의 가치 말이다. 바가지를 쓴 것은 분명하지만 행복했던 순간을 담고 있는 소중한 ‘돌’은 이 세상에서 다른 어떤 돌에도 없다. 그 ‘돌’이 유일하다.
어떤 선택을 하든 70대 후반인 지인에겐 또 하나의 추억이 되지 않을까.

